상처와 초원의 빛이여!
이틀 전에 부엌서 저녁 반찬을 위한 생선을 자르다가 검지 손 가락을 세바늘 꼬매는 상처를 입었다.
순간적으로 "이건 심하게 베이었구나"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괜찮겠지" 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약을 바르고 붕대로 동여 맺지만 피가 계속 흘러내리는 통에
결국은 밤에 병원의 emergency room 을 방문했다.
세 시간만에 다 끝났지만,
거의 두 시간을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LA 밤의 응급실에 온 환자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보았다.
팔목에 상처를 입고 온 홍콩 출신 학생의 여자 친구, 꼭 한국 학생 같아서 한국어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물었었다.
몸을 계속해서 떠는 마약 중독자와 같은 백인 여자, 계속 큰 소리로 흐느낀다.
술에 취한듯 이상한 말을 가끔 해대는 흑인 남자, 머리가 예수님같은 모습인데 산발이다.
배가 아파서 어쩔즐을 모르는 흑인 여자, 왠지 이상한 느낌을 주지만 해끼칠 사람같아 보이지 않는다.
야간 모자란 듯하면서도 착해보이는 히스패닉 소년, 옆에서 함께 기다리는 엄마가 참 좋은 엄마 같았다.
무표정하게 손을 모은 채로 TV만 응시하는 히스패닉 청년...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냥 나가버리는 백인 대학생 두 명. 한 학생이 입은 티셔츠가 내 딸이 다니던 미국 동부의 한 학교와
같은 학교 학생이거나 그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런데, 왜 왔을까?
자칭 갖가지 문제를 안은 환자들은 계속 들어 오고 나간다.
이 들은 정녕 몸만이 아퍼서 이 밤에 응급실에 온 것일까?
나는 이들에게서 들어난 상처보다 더 질기고 가슴을 애워파고 있는 속의 상처를 보았다.
빨리 의사의 치료를 받고 싶어서 안달나던 나 처럼, 이 들의 마음과 몸도 기다림과 아픔에 지치고 고통스러울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처"란 말을 생각해보았다.
저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다룰까?
그리고 그 상처들을 오랜 시간 동안 안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 사건들, 사물들이 있고, 또 내가 상처를 준 대상들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을 이제 객관적인 눈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랑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완전하게 회복 되지않은 삶의 상처가 가끔 튀어나오곤 하지만 이들로 인해서 커진 내 마음과 생각을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는 나에게 슬그머니 미소가 나왔다.
소중한 이 세상의 삶의 가치를 확신시켜 주고, 나의 좁은 마음을 조금이지만 넓혀준 나의 상처들 덕분에
지금의 나는 좀 더 여유로와 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 웃을 줄도 안다.
그리고 나를 더 사랑할 줄도 안다.
자신도 모르게 보통의 사람들 보다 더 상처와 친숙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남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내보이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상대의 눈에 고여있는 그 우수의
눈매를 애써 무시하는 듯한 당당함을 보이기도 한다.
살을 애는듯한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로 가슴을 쥐어짜기도 한다.
너보다는 내가 상처를 받는 것이 더 좋다고 애써 위로하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묵묵히 들여다 보기도 한다.
상처는 남기에, 자국을 남기기에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추억처럼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남겨진 상처는 슬픔을 주지 않는다.
다만, 남겨진 상처 위에 또 다른 새 상처가 바로 생기지 않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나는 11월 10일에 타계한 미국 작가인 Norman Mailer (1923 - 2007)는 상처란 말과 아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격하고 열정적이고 신랄한 성격으로 수없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받은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생을 들여다 보면 말 그대로 영광과 오욕, 높음과 낮음, 기쁨과 아픔의 삶이었다.
긍정적인 말보다는 비판적인 말로 동시대의 어떤 작가보다 대중의 존경과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5 번 이혼을 했고, 1960 년에는 칼로 부인이 거의 죽을 정도로 찌르기도 했다. 여자들을 "아기나 낳는 저질의 낮은 종족"으로
폄하하기를 즐겨서 feminist 들에게 가장 조롱을 받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도 독장적이고 창조적이며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그는 Pulizer Prize 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자신을 헤밍웨이와 비교했으며 여러 장르를, 특히 fiction and nonfiction을 넘나드는 뛰어난 작가 활동을 하였다.
이차 세계 대전 후의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에세이스트, 리포터이였지만,
뉴욕 시장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4개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한 아주 특이한 인물이었다.
상처란 단어를 생각을 하면서
25살의 젊은이로 이렇게 당당하던 Harvard 대학생의 얼굴에
세월의 연륜이 쌓여 그 생각과 깊이가 얼굴에 새겨진 것을 복잡한 마음으로 들여다 보았다.
누구에게도 그러하듯이 말이다.
(윗 사진은 1948 년 25살의 나이로 이차 세계 대전의 경험을 쓴 첫번째 집필인 "The Naked and the Dead" 에 실린 그의 사진이며,
아랫 사진은 1960년의 사진으로 그가 엄청 큰 상처를 입혔던 부인과 함께한 사진이다.)
젊은 날의 사랑의 상처를 아주 아름답게 그린 영화인 "초원의 빛" 이란 오래된 영화가 생각난다.
거장 엘리아 카잔 감독과 아름다운 배우 웨런 비티와 나탈리 우드가 주연한 영화로 내 가슴에 사랑에 대한 연민과 꿈을 주었다.
어린 날의 마음에 사랑을 잘 이해는 못하지만 아름답고도 아픈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였다.
문득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분인 영국의 William Wordsworths 의 "Splendor in Grass" (초원의 빛)이란 시가 떠오른다.
낭만주의 이기에, 꿈이 있기에, 서정적이기에, 감미로운 글을 쓰기에,
그리고 자연을 인간 생명의 근원이며 실존과 진리의 근본이라는 생각을 갖는 시인이기에 그를 사랑한다.
Splendor in the Grass(초원의 빛) - William Wordsworth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여기 적힌 먹빛이 마름해 버리는 날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여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은들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을지라
존재의 영원함은
인간의 고통을 이겨낸
사색으로 부터 나오는 것
죽음도 이겨내는 신념 속에서
철학적 정신으로 영원히 지속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