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거나 좋은 것들

만해 한용운의 설탄절 마음

rejungna 2007. 12. 6. 11:05

나룻배와 행인

 

by 한  용  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 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깊은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만해 한용운님의 너무도 간결한 시입니다.

불교에 출가하셨고 독립 운동가이셨기에

많이들 이 "나룻배와 행인"을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나라의 해방을 꿈꾸는 희망을 적은 것으로 풀이하지요.

 

그러나 나는 왜람되게 이 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사랑의 본질인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인내와 희생을 나룻배와 행인의 관계를 이용하여 나타낸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마치 성탄절의 산타가 선물을 주기만 하면서 큰 웃음으로 기뻐하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나와 당신과의 관계, 당신과 나와의 관계가 너무 일방적입니다.

서글프게도, 한 쪽이 희생하고 감내하기에 그 사랑이 유지되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랑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도 사랑이며, 줄 대상이 있기에 주는 이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특히 어머니와 아내들이 보여주셨던 사랑같이도 느껴집니다.

자식과 남편을 위하여 한없이 참고, 애쓰고, 아픔과 슬픔을 감추면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수고를 하셨던

어머니들이 품으셨던 사랑과 비슷합니다. 

 

아니, 아내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멀리서 아내의 동태를 살피면서 편안한지를 알아보고픈 남정네들의 아내를 향한 무언의 사랑과도 비슷합니다.

 

또, 연인 사이인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그를 향해 간직한 예쁜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물만 건너면 돌아 보지도 않는 야속한 님이지만

언제고 다시 오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남녀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줄 때에 보석처럼 빛나지 않습니까!

 

나는 나룻배와 행인의 관계에서 한 해를 끝맺게 하는 주는 사랑, 산타의 마음을 엿볼수 있어 좋습니다.

 

 

 

묵묵히 벽면에 붙어 있다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내밀기 위해서

열 한달을 기다려온 달랑 한 장 남은 calender 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때가 되었군요!

벌~써 2007 년 끝이 보입니다..

눈 한 번 깜박이는 사이에 일 년 한 해가 역사 저 뒤 편으로 사라지려고 합니다.

만해 한용운님이 1900 년대 초에 표현하셨던 사랑이 머물고 있는 역사의 한 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은 지나고 나면 너무 빨리 가버린 것 같아 허무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한 순간 한순간 잘 마무리하려고 애썼기에

떠나가는 한 해에 대해 매듭없는 마음으로 보내는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가십시요. 365 일간 당신 곁을 지킬 수 있어서 고마웠으며, 한 해 만큼 나를 성장케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내 년 2008 년 새 해는 좀 더 밝고, 맑고, 따뜻한 나날로 내 곁에 와 주십시요.

이 글을 읽는, 내 blog 에 와 주신 모든 분들 곁에도 그런 모습으로 와주세요.

나와 가족, 이웃의 행복이 샘솟도록 애쓰겠습니다.

 

 

LA 에 있는 shopping center 인 THe Grove 의 년말을 준비하는 분주함을 담아 두었었습니다.

이미 추수 감사절 전에, 만해 한용운님이 주시려는 사랑의 성탄이 가게의 진열 유리창에 제일 먼저 왔습니다.

 

분주함 속에서 기쁨과 감사를 미리 나누고 싶은 여유로운 마음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