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종교와 국가-교황님과 이대통령의 미국 방문

rejungna 2008. 4. 18. 07:43

 

 

 

 

 (Washington D.C. 의 National Park 에서 17일 미사하시는 모습)

 

나에게 정신적, 상징적과 실질적인 의미를 주고 영향을 미치는 두 분이 미국을 방문하고 계시다.

다름아닌 교황 베네딕트 16세와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분들은 같은 날 4월 14일에 각각 5박6일과 4박5일의 일정으로 오셨다고 한다.

 

지금의 나의 삶의 배경, 문화, 사고, 가치관에 눈에 보이지않는 정신적인 영향을 마치고 있는 종교

나의 성장기를 보냈으며, 낳아주신 엄마가 아직도 계시는 국가의 수장이신 두 분이 같은 날에 오셨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내 존재에 큰 영향을 끼친 종교와 국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Who are you?" 란 질문을 하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아마 나를 가장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대답은 이럴 것이다.

"나는 한국의 피를 받은 미국 LA 서 사는 사람입니다. 종교로는 천주교를 믿으며, 가정이 있고,

직업은... 이고, ... 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답을 해야할 경우에는...

부언으로 언제 미국에 왔으며, 교육, 직업 변천사, 가족의 소개, 즉 이력서를 나열하면 될 것이고,

흥미를 끌고 싶은 경우라면 나의 취미를 곁들여서 상대방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 나 자신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LA 에 살면서 catholic 을 믿는 Korean-American 이다.

한국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25년간을 한국서 한국식으로만 살았지만

이곳에 살다보니 편의에 의해서 후에 미국 국적을 획득했다. 한국 국적은 자동으로 말소되어 버렸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의 신분상의 이유로 제외국민 거소증을 갖고있기도 하다.

 

태어나는 곳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사는 곳은 선택할 수 있다보니 한국계 미국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뜻에 밀려서 정신없이 이 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쌓이는 세월과 함께 이제는 미국을 나의 일부 내지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종교도 대학 2학년에 직장암에 걸리셨던 아버지와 함께 입교를 하신 엄마의 성화에 종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었다.

지금껏 살면서 여러 번이나 종교를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무엇인가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었다.

이제는 가슴 속 깊이 감사하며 종교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종교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숨이 막히는 탁한 공기 중에 갑자기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치고 방황할 때에 손을 뻗어서 잡을 수 있는 대상을 준다. 그리고 매달린다. 그냥 나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내 가족을, 엄마를, 내 친구를, 내 형제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상처를 가끔 준다.

아주 큰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받은 상처는 오래가며 아물어도 흔적을 남긴다. 

이 상처를 삶의 댓가라고 받아들이면서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종교다.

그러므로 종교 덕에 좀 더 넓고 열린 마음을 갖을 수 있어서 좋다.

 

두 개의 나라는 나를 어떻게 살아가도록 만들었을까?

미국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또 나중에 이 곳에 묻힌다고 해도, 나는 완전한 미국인이 될 수는 없다.

또 완벽한 미국인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되는 것은 싫다.

한국은 내 부모와 형제를 주었으며, 풍물, 문화, 생활상, 사고 방식, 교육으로 나에게 벗어날 수 없는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지금 나에게 그러한 영향을 주고있다.

내 자식들이 사랑하고 계속 살기를 원하는 나라이며, 나의 생활 터전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그들과 교역을 하려면 제일 면저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한다고 한다.

부모 형제와 오손도손 살면서, 친구들과 깨�아지는 수많은 날들을 함께하면서

한국의 문화는 나에게 녹아들었다. 뜨거운 쇠물처럼 재빨리 파고들어서 내가 피할 수도 없게 말이다.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는 내 피와 살이 되었고 나의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 시절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격스러움의 벅찬 느낌을 갖는다.

여기 살면서, 애들에게 배우고 동료들에게 배우고, 이웃과 친해지고, 또 다른 한국 교포들과 만남을 갖으면서

나는 미국 문화의 영향에 젖고있다.

작은 물방울이 한방울한방울씩 바위에 구멍을 내듯이...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느껴본다.

머리와 가슴 속에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기 보다는 서로 섞이고 있는 것을 느낀다.

융합되어지고 뒤섞여서 어느 한쪽도 더 도드라지 않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제는 한국에 가면 한국인으로, 이곳에 살면 미국인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점점 globalize을 외치고 Internet 으로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으니 아마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나의 본연의 모습과 실체가 아쉽고 지난 시절과 그 시대적인 추억들이 무척이나 그리울 때가 있다.

왠지 엣날에는 낭만이 더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럴 때면 그나마 LA 에 사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두 문화를 다 취할 수가 있으니, 한국과 가깝게 미국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으니,

많은 복을 받았나보다.^^*

 

 

 

 

New York Stock Exchange 에서

 

 반기문 UN 총장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