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께 바칩니다!
토요일 8월 23일은 그리운 아버지의 제사 날입니다.
양력으로 날짜를 세면 9월 8일이지만, 제사는 음력으로 모신다니까 조금 빠르게 인사를 드려야 하는군요.
나는 이 곳서 성당에서 아버지를 위하여 미사를 드리지만 그래도 많이많이 아쉽습니다.
무엇인가를 아버지를 위해서 더 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뿐입니다.
지상에서 계실 때에 그토록 보고싶어 하셨던 할머니와 작은 아버지의 영혼들과 하늘에서 행복하시기를 바라면서요.
서쪽의 서울을 그리면서 갈망하는 눈빛으로 높이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하늘이 파랗지가 않고 하얀 색깔이군요.
그 하얀 색 속에 아버지의 하얀 머리카락이 얼굴없이 빙글빙글 떠돌고 있습니다.
왜 얼굴을 나에게 보여주시지 않는건가요? 섭섭하게도...
아버지의 머리칼들은 자유롭고 여유로이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사각형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그 곳서 저를 내려다 보시나요? 이 딸이 보이세요?
조금만 더 땅에서 나를 봐주시지...
그렇게 좋아하시던 미국의 내 집에 또 오셔서 넓은 대자연과 푸른 수풀과 아름다운 꽃들 속에서 여러번 더 행복해 하시지...
어차피 가셔야 할 하늘나라인데 지상의 인연들과의 줄을 좀 더 길게 잡아 당기셨어야지요.
내가 친정 집의 아버지 방에서 가져온, 꼼꼼하게 연별로 정돈되어진, 많은 나라를 여행하시면서 찍은 사진들을 담은 앨범들이
딸이 쓰던 이층 방의 선반 한쪽을 무겁게 채우고 있습니다.
아침 나절에 앨범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뵈었어요. 뵌지 4년이 지나서 희미하게 남아있던 여러 모습들은
그 앨범 속에 변함없이 차곡차곡 쌓아져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 속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웃기만 하시는가요?
마지막 병상에서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스위스의 만녈설 빙하가 녹아흐르는 바로 그 폭포 앞에 서계신 때로 부터
꼭 10년만 더 사셨네요. 10년간의 시간만이 주어졌다고 그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게 패기있고 건강하시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셨는데요.
아프신 아버지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버지께 한탄조로 말했었지요.
아버지께 아무 것도 해드린 것이 없이 항상 받기만 했었다구요.
아버지는 정색을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너는 나에게 아주 커다란 기쁨을 주었단다."
그 그리운 모습들을 보면서 내 눈 속에 아버지를 다시 집어넣었습니다.
다시금 내 가슴 속은 아버지와의 찐한 추억으로 가득 찼으며
머릿 속은 오래된 기억들로 새롭게 각인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중에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제 삶의 이정표가 되고 지친 삶의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
많은 사랑을 주시고, 모든 것을 거저 주셨던 아버지께 그러한 사랑을 미치도록 목말라하면서 두편의 시를 바칩니다.
늦기 전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라는 것을 깨우쳐주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제 인생이 더 풍만하고 충만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꼭 지켜봐주시고 힘이 되어 주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이 한 목숨 다하는 날까지
사랑하여도 좋은 나의 사람아
봄,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
그 모든 날들이 다 지나도록
사랑하여도 좋을 나의 사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내 눈에 항상 있고
내 가슴에 있어
내 심장과 함께 뛰어
늘~ 그리움으로 가득하게 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날마다 보고 싶고
날마다 부르고 싶고
늘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어
사랑하는 날들이 평생이라고 하여도
더 사랑하고 싶고
또다시 사랑하고 싶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오래된 가을>
By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가에 나가 혼자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 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2004년 9월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렸던 그 해 일월의 구정 제사상입니다.
이 날의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온 정성과 온 마음으로 제사를 모셨습니다.
마침 이 때에 한국을 방문했던 저는 아버지가 적립선 암에 걸리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식구들은 미국에 사는 나와 막내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입니다.
아버지가 60살 정도에 찍으신 사진인데 너무 젊은 모습이라서 후의 돌아가셨을 적의 연세에 맞추기 위해서
사진을 약간 고쳤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신 것을 알고 나서, 또 고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나서
다시 2004년 3월 초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함께 산보나가시기 전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싫다고 하셨지만 저는 자꾸자꾸 찍고 싶었어요.
표정이 어딘지 씁씁하지요?
나는 이때 아버지와 분당의 중앙공원으로 같이 산보를 나가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시고 박식하신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아버지에게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못 드렸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자신의 병이 거의 고칠 수 없는 단계라는 것을 모르셨었습니다.
의사인 동생이 담당 의사 분들에게 부탁해서 사실을 알리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죠.
결국 가짜의 실가닥 같은 희망을 가지시도록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한동안 저는 이것에 대해서 크게 자책을 했습니다.
왜 용감하지 못했었나 하고요. 강하게 식구들에게 주장을 하지 못했었나 하구요.
사려깊은 결정이 아버지가 인생을 마무리하실 시간과 기회를 빼았은 셈이죠.
나라면... 나에게 마지막이 가깝다는 진단이 내려진다면... 그 시간을 알고 싶습니다.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충분히... 천천히... 아름답게...
아버지와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미국적인 나무라고 할 수 있는 palm tree 를 아버지의 영전에 바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