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LA의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rejungna 2009. 12. 16. 11:15

LA에서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하늘에서 내리는 가 이들 사이에 있다. 눈 없는 지역이라서 비가 눈 노릇을 하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LA 에 비가 오면 우리는 겨울이 왔음을 안다. 비가 멈추고 다시 새파란 하늘에 눈부신 태양이 떠도, 소매를 걷고 싶을 만큼

낮기온이 올라가도 우리는 겨울이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매달려있던 초록색의 잎들이 단풍잎이 되어 마침내 떨어져서

여전히 파란 잔디밭에 엉성하게 이리저리 굴러 다녀도 우리는 가을이 아니고 겨울이리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는 정말 비가 많이 왔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쏟아졌다. 잔디, 흑바닥, 시멘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듯다보면

이렇게 내 머리 하나를 가릴 수 있고 내 몸이 추위에 오돌오돌 떨지않게 막아주는 집을 가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잔디, 수목과 꽃들이 한껏한껏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내 배까지 불러와서 좋았다.

 

 

 

 

겨울비가 멈추고 나니...

파란 잔디에 구성없이 뒹글던 누런 낙엽들은 비와 정원사들의 청소기에 밀려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마치 동장군의 위엄에

완전하게 옷을 벗은 겨울 나무처럼 제 몸에서 떨어진 분신들을 세월의 시간 속으로 던져버린 듯이 말끔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LA 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존재해있음을 암시하는 나무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눈이 즐겁다!

 

 

11월 LA의 가을 같지 않은 가을이 좋다. 그리고 12월의 가을같은 겨울도 좋다. 내가 살았던 고향 한국의 11월, 12월은 춥지만,

이곳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차가운 날씨가 주는 신선함과 낮의 따뜻함이 만나서 이쪽저쪽도 아닌 계절이다. 그래서 내키는대로

마음이 가을이면 가을이라고 우기면 되고 마음이 찬 겨울이면 겨울이라고 우기면 된다. 

 

 

또, LA의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추수감사절이 있다.

이 날에 우리 집안 식구들은 동서네 집에 모인다. 나에게 한명뿐인 동서이며 한살 적은 손아래 동서는 마음이 넉넉하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잘따른다. 나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작은 올케보다 언니라고 부르는 동서의 호칭이 더 마음에 든다.

우리 집 안에서 추수감사절 상차림은 항상 동서의 몫이다.

 

동서는 나와 나누어서 시부모를 모시기도 했다. 사실, 일하던 나에 비해서 더 길게 시부모님을 모셨었다. 가끔 짜증이 나거나

속이 상해 입이 쑥나오기도 하였고 부부싸음을 하기도 하였지만 큰불평 없이 작은 며느리 노릇을 한 착한 동서이다.

그래서 나는 동서에 대해서 항상 고마운 마음과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면서 지내며, 가능한 동서의 부탁은 다 들어준다.

그렇다고 우리가 따로 만나서 특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관심사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동서는 일을 하지 않는 날에도 여러 번 외출한다. "집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 보다 튀어나가는 것이 더 좋아요!"

반대로 나는 일이 없으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위아래 층을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다가 차 한잔 들고 읽을 것을 들고

내가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서 뭉개는 것을 좋아한다. 어쨋든, 확실한 것은 내 인생에서 동서는 내가 받은 큰 복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올해 추수감사절에 동서가 마련한 음식이다.

갈비, 닭찜, 묵, 마파 두부, 케챱 떢볶이, 만두 튀김, 시금치 무침, honey baked ham,김치, 깎두기, 동치미)

 

가을이나 겨울 보다는 여름같은 마음을 지닌 동서는 내가 여행을 떠나면 우리 식구들의 식사도 가끔 챙겨준다. 나도 그렇게 하지만,

항상 동서가 더 많이 한다. 아주 푸근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우리 집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부른다고 한다.

 

동서는 내년 일월에 한국 친정 방문을 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그 집에 남아있는 식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할 것이다. 하지만 난 동서의 음식 솜씨를 따라가지 못한다. 나의 음식 솜씨는 나의 아들과 딸만 알아주는 솜씨이다. 어쩌다

대박을 터뜨려서 다른 이들의 칭찬을 옴팍받기도 하지만 자주 생기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 솜씨로 내 몫의 가족 모임 식사를

용감하게 준비하며 절대 기죽지 않는다. 무척 기대하는 얼굴로 맛이 어떤지를 물어보기도 한다.ㅋㅋㅋ

 

LA의 가을과 겨울 사이는 스콘(scone)과 펌킨 파이와 스프, 그리고 블루베리 팬케익이 있다.

이 달콤한 것들을 즐기기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콘의 맛을 겨우 작년 1월의 Mexico Riviera(멕시코 리비에라)

크루즈 여행에서 배웠다. 과자도 아니고 빵도 아니지만 빵에 더 가까운 스콘을 유럽인들은 오후 차를 마시면서 즐긴다고 한다.

밀가루에 온갖 과일, 넛 종류, 생강, 마늘 등등을 넣어서 오븐에 구워 만든다. 스콘은 중세 때에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때는 스콘을 돌 오븐에서 구웠던 모양이다. 스콘의 scone 은 돌이라는 stone 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니까.

나는 많은 종류의 스콘 중에서 ginger scone(생강 스콘)의 맛과 향이 너무 좋~다. 생강 스콘의 냄새가 은근하게 풍기는 빵가게를

그냥 지나가는 것은 극도의 절제력을 요구한다.

 

생강 스콘(ginger scone)의 도도한 모습은 계절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준다.

 

펌킨 파이를 만들기 위해서 끓인 펌킨을 파이 껍질에 붓고있다.

 

계절 사이의 빈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또 다른 음식은 불루베리 팬케익(blueberry pancake)이다.

단음식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시럽 보다는 뻐터를 발라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LA의 가을과 겨울 사이는 그리 길지 않다.

곧 크리스마스가 오면 명실공히 겨울이기 때문이다. 12월 말은 비가 오지 않아도 겨울이라고 확신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탄절을 겨울에 맞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이 틈새의 시간을 따스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을 생각하니 기분도 따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