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윤동주)과 Happy Christmas
한 해를 보낼 때마다 고향을 떠난 시간이 점점 길어짐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나이 한 살 더 먹어감은 그만큼
이곳 LA 사람으로 다져지고 있음을 말한다. 몇 장의 달력을 버렸는지 세고싶지 않을 만큼의 세월 동안을 LA 공기로 호흡하고, 이곳서
자란 배추로 김치를 담아 먹고, 가을이면 LA 풍토가 키운 감과 석류를 따먹으며, 사시사철 캘리포니아 농부가 키운 커다랗고 달콤한
배를 살가운 마음으로 맛보지만 가끔 빈 듯한 속에 야릇한 감정이 된다.
조금 전에 또 하나의 성탄 파티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우리 동네
주민회 이사들의 파티라 모두 자리잡은 미국인들 뿐이어서 그들의 직업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 만큼이나 화려했다. 선한 눈망울로 미소짓고 살갑게
대화를 나누며 잘 구어진 달달한 햄, 샐러드, 빵, 그린 빈, 감자 그라땡을
와인과 함께 씹어도 왠지 거리감이 있었다. 그들이 이 땅에서 태어나서
40, 5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그들이
부모와조상들과 함께 공유하는 역사를 진정으로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일까?
함께 웃어도 진정 함께 웃는 웃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있게 뻗지 못햇던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 영어는 broken이며, 내 발음은 딱딱하고, 내 표현은 직설적이다.
잠시 대화가 멈출 때에 성탄파티를 위해서 적당하게 잘 꾸며진 집안을
둘러보았다. 거리가 내다보이는 거실의 커다란 창문 앞에 놓인 키큰
번쩍이는 성탄나무는 자리를 잘 잡고 모임의 성격을 잘 대변하고 있었다.
문설주마다 길게 장식된 소나무 가지는 솔방울과 함께 그윽한 향기를 코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산타 장식은 착한
어린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벽난로 위에 매달린 온갖 무늬의 양말들은 이 집 주인의 자녀 숫자 만큼으로 열지어 서서
성탄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식탁에 놓인 빨간 양초는 우아한 여인 처럼 아름답고 매끄럽게 느껴졌다. 방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성탄꽃
포인세티아는 활짝 핀 채로 웃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저녁의 맛깔스런 성탄 파티 실내다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또 다른 고향" 이었다. 이방인 같은 심정으로 진짜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의
존재 유무가 궁금했다. 이제는 한국에 가도 그 곳이 완전한 고향이 아님을 느낀다. 언젠가 엄마마저 계시지 않는다면 비행기를 탈
구실조차 찿기 힘들지도 모른다. LA 역시 나의 완전한 고향이 아니라는 생각에 코가 찡하다. 물론 세월따라 더 친숙한 곳이
될 수 있겠지만. 한 곳서 태어나서 다른 곳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것인지, 아니면 다 놓쳐버린 것인지
궁금하다. 한 자리에서 일생을 마치는 것 보단 분명 더 풍요롭고 다양하고 복된 삶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편안하고 완전한
귀향의 꿈이 점점 흐려지는 아픔이 생긴다. 젊은 꿈과 열정이 앞설 때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것에,
더 풍부한 것에, 더 새로운 것에, 더 찬란한 것에 보다 큰 의미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를 넘겨보니 살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본다. 마치 진정한 고향을 찿아 보려는 작은 몸부림처럼.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세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짓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가자
쫓끼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이 시에는 시인의 현실과 이상이 들어있다. 작가의 갈등도 들어있다. 고향을 떠났다가 귀향했지만 전과 달리 변해버린 고향은
이미 마음의 고향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현실과 이상에서 혼란을 겪는다. 현실을 상징하는 백골이란 말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가 가끔의 내 마음 같아서 정겹다. 마치 두개의 영혼과 고향이 내 운명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은
혼과 고향이라는 단어에 아름답다는 말을 붙였다. 아름다운 혼과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은 내가 지향하는 인생의 길과 부합한다.
한국서 생각하면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인 LA가, 이곳서 보면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인 한국이 있어서 더 포근하면 좋겠다.
어쩌다 또 다른 고향에 거주하는 인연을 만나면 떨칠 수 없는 나의 운명이 만들어낸 나만의 향기가 예쁘게 배어나오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잠시만이라도 들뜨고 행복해지는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온다. 나도 분주히 선물을 사고 포장을 했다. 들뜬 마음과
의무감으로 뛰었다. 그냥 지나 갈 수는 없으니까... 나는 과연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며칠 전 식사하고 식당을 나오는데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집없는 사람(homeless)이 뜻밖에도 터지고 더러운 한 손을 번쩍 들고
빠진 이를 보이면서 큰웃음으로 인사를 던졌다. Good Night! 그런데 그 모습이 추하거나 무섭거나 전혀 더럽지 않았다. 도리어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나눌 용기는 없었지만 차를 타면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You, too! 왠지모를 거대한 미안함이 나를 감쌌다.
또 다른 고향으로 인한 갈등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집을 떠나 멀리 둥지를 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이다. 인생은 혼자서 갈 수 없다. 지치고 우울할 때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건강의 전도사가 되어 줄 수 있다.
진정한 하나의 고향은 아니지만 길게 이어지는 필름같은 추억의 꼬리 덕에 또 하나의 고향이 빛날 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성탄의 기쁨에 물들면 숨어있던 감사가 보이고, 발견치 못했던 기쁨도 커지고, 무덤덤한 마음도 설레이게 되고,
빈 듯이 허기진 속도 풍선처럼 부풀어서 따스한 기운이 내 영혼과 육체를 감싸 줄 것으로 믿는다.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셀린 디온(Celin Dion) 의 감미로운 Happy Christmas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들었다. 너무 곱다. 고운 것은
아름다움이고 사랑이며 기쁨이다. 2010년의 얼마 남지않는 날들 속에 기다리고 있는 성탄을 다시 꺼내 보면서 나만의 분위기를 띄워본다.
Merry Christmas! Happy Christmas!
And what have you done
Another year over
And a new one just begun
And so this is christmas
I hope you have fun
The near and the dear ones
The old and the young a very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