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LA 땅
한국 방문에서 돌아왔다. 마음대로 길게, 편안한대로 이쪽저쪽, 몸을 맡길 수 있는 침대가 있는 나의 집으로.
한국은 정말 추웠다. 몸도 얼고 마음도 얼고 입에서는 김이 났다. 그래도 아파트의 따뜻한 온돌은 나의 어린 시절 기억 그대로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어 좋았다.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두 동생, 온식구가 모여서 밥을 먹고 뜨거운 아랫목에 나란히,
열개의 다리와 다섯개의 몸통을 반쯤 이불 속에 집어넣은 채로 나누었던 그 푸근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였다.
뺨을 온돌바닥에 대고 귀를 기울이면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지나간 시절이 하나씩 소곤거리면서 튀어나왔다.
인천공항 출발 LA 발 비행기는 바람과 동방향인 덕택에 역방향보다 1시간 반 정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
10 시간 30분 동안 태평양을 벗삼다가 매마른 대지인 LA 땅이 제일 먼저 보인다. 곧 착륙할 것이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방송과 함께
밑으로 조금씩 하강하는 비행기의 몸체를 느끼게 된다. 귀가 멍멍해지면서.
창가에 앉아서 땅에 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꺼풀 벗겨낸 얇은 버들피리 껍질처럼 가늘고 길고 성성하게--새파란 도화지에-- 붓으로 그은 듯한 구름이 엉성하게 떠다니는
LA 하늘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곤 저 밑의 갈색의 LA 대지도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멋진 아이디어가 생각난
사람처럼 한국방문 동안 꺼두었던 iPhone을 찿아 점점 다가오는 LA 땅을 찍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아마도 자꾸 밀려오는
쓸데없는 생각이 내 뇌를 잠식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늘서 바라보는 나의 제 2의 고향, LA! 참, 아름답다!
항로는 먼저 내륙을 향하고, 바닷쪽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내륙쪽으로 돌아간다.
덕분에 서쪽 지역인 태평양을 인접한 산타모니카 주변 산과 비치가 살포시 나타난다. 이 또한 아름답다!
내륙인 동쪽으로 방향을 틀자 거대한 도시가 착한듯이, 얌전한 듯이 정열된 모습으로 드러났다.
약간 기울은 창으로 보이는 LA는 쭉쭉 뻗은 길따라 수 많은 사람들의 생활터와 일터를 주지만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애환을 하루도 빼놓지않고 삼키는 괴물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내륙으로 향한 비행기는 아마도
LA 다운타운까지 동쪽으로 비행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비행장이 위치한 바닷가 쪽으로 이동하는 듯하다.
가운데 손으로 꼽을 정도 만큼의 높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지역이 LA 다운타운이다.
이들 중의 한 건물 속에는 내가 운영했던 비지니스와 사무실도 있어 마치 가까운 이웃을 찿는 듯한 친밀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땅과 더 가까와진 듯이 공항 근처 동네 집들의 빨간 지붕들이 손에 잡힐 듯이 나란히 누워있다.
다시 하늘로 올라간 듯, 갑자기 시야가 멀어져서 바둑판같은 도로들이 멀리까지 보이지만 착륙지가 바로 옆인 것을 알 수 있다.
LA 공항 주변에 산재한 여럿 주차장들 중의 한 주차장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비행기 바뀌는 땅을 딛고 공항의 활주로를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온 힘을 다해서.
bridge 가 서서히 비행기 문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승객들은 직접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브리지를 통과하고 계단을 내려가 대기했던 버스를 타고 활주로를 달려서야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공항에 갑자기 도착한 많은 비행기들 때문에 우리 비행기를 직접 받아줄 입구는 없었나보다.
나를 태운 차가 집에 도착하는 순간...
여릿여릿하지만 풍성한 짙은 녹색의 잔디가 나를 맞아주었다.
따스하다!
작년 겨울에 듬뿍 준 비료와 또 뿌린 씨앗, 예전에 없이 퍼부었던 비가
이렇게 요술을 부렸나보다. 비료를 주면 고약한 냄새가 몹씨난다. 산보나선
개들은 그 냄새에 잔디에 머리를 박고 떠날줄을 모른다. 지나칠만큼 쏟아진
비는 잔디의 씨까지도 모두 쓸고가버릴 듯한 무서운 기세로 울었었다.
하지만, 그 지독한 냄새와 거칠은 폭풍은 거짓말 같이 가버리고
그 양분을 먹은 집 잔디는 이렇게 파릇파릇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겨울이 가야 봄이 오듯이.
슬픔이 가야 기쁨이 오듯이.
비어야 새로운 것으로 다시 채워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