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요즘들어 부쩍 늙은 진도개 멀린과 생명체의 끝

rejungna 2012. 5. 18. 13:02

태어난지 3일만에 가족이 된 멀린은 13살된 진도개이다. 1999년 12월에 식구가 되었다. 멀린 엄마가 낳았던 6마리 중에서 가장

잘 생기고 활기차게 움직이던 백구를 골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 탓에 부쩍 늙은이 행동을 한다. 우선 거의 듣지 못하며,

후각도 정상이 아니다. 아직 눈만은 그런데로 괜찮은 것 같다. 내가 마당에 나가도 청각과 후각이 신통치 않아 주인이 뜬지도

몰라 시간이 조금 지나야 곁으로 다가온다. 물찬 제비같던 움직임은 어기적저기적 해서 돌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짚어 앞으로

꼬꾸라지기도 한다. 소변도 다리 한쪽을 들고 가만히 서서 누지 않는다. 걸으면서 실례를 해서 지그재그 모양으로 땅에

긴 오줌선을 그린다. 대변은 절대로 참지를 못해서 서있거나 앉아있는 곳이 바로 변기통이 된다. 우렁차던 목소리마저 변해서,

낮은 쉰소리를 듣는 나도 목에 무엇이 걸린 듯 해진다. 멀린은 동물이 - 그리고 사람이 - 늙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아무도 없다고 하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멀린이 소변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 하루에도 3,4번 이상 그림을 그린다.)

 

13년 전의 강아지 멀린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종일 울었다. 신생아의 탄생처럼 주인과 강아지 모두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한달만에 집안에서 한살짜리 진도개 누나가 살고있는 뒷마당으로 내보내졌다. 신기하게도 바로 울음을 그쳤고,

피붙이를 알아 보는양 누나 개를 졸졸 따라다녔다. 누나의 행동거지를 모방한 탓인지 3,4살 까지 암놈처럼 소변을 보았다. 멀린은

자기 집은 못본체하고 마당 덤불 속의, 정원사 손끝이 잘 닿지않아 낙엽이 폭신하게 쌓인 후미진 곳에서 자면서 말 그대로

야성적으로 멋지게 성장했다. 누가봐도 잘생기고 늠름하다고 칭찬했다. 얌전하고 겁많은 누나와는 달리 기운차고 용감했다. 게다가 

충성심도 짱이었다. 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사람같은 느낌을 주던 누나 빈은 사슴같은 모습을 하고 무척 섬세한 성격이었지만,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야마는 개였었다. 주인 몰래 울타리 밑에 땅을 파고는 식구 없는 낮 시간에 밖으로 동네 마실나갔다가

돌아오곤 했었다. 동네 사람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었는데, 어느날 내 눈에 걸린 멀린은 빈을 따라가지 않고 문앞에 앉아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5년 5월, 정확히 7년 전에 찍은 멀린과 빈의 모습이다.)

 

멀린은 자기 영역인 뒷마당에 다른 동물들이 침입하는 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주로 다람쥐, 참새, 쥐, 고양이와 포섬이

희생되곤 했다. 그래서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뒷마당에 나가는 것이 꺼림칙했다. 마치 주인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내장이 파해쳐진 채로 죽은 피뭍은 동물이 마당 한가운데 혹은 문앞에 던져져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치우는 것은 역겹고

힘들었다. 멀린은 낮으막하게 날르는 참새를 획 날듯이 뛰어서 입으로 나꿔채기도 했고, 땅에 내려온 다람쥐가 미처 다시 나무로

올라가기 전에 물어버리고, 차고 뒤로 뒷집 담을 타고 내려온 20 파운드가 넘는 큰 들고양이와 혈투를 벌리다가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목덜미를 물어 죽이기도 했다. 한번은 주로 하수구에 사는 덩치큰, 사납고 더러운 포섬이 집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고

들어가서 쓰레기를 파먹다가 멀린에게 걸려서 어쩌지 못하고 쓰레기통 안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멀린은 새벽에 쓰레기통을

빠져나가는 포섬에게 바람과 같이 달려들어서 괴기한 소리와 함께 15분간의 사투를 벌려 결국은 또 한 마리의 피투성이 동물을

치워야 했었다. 잠을 깨운 이상한 소리 때문에 이웃에게 불평까지 들었다.

 

그러던 멀린이 지금은 다람쥐가 나무에서 놀다가 아래로 살금살금 내려와서 자기 밥을 훔쳐 먹어도 모른다. 참새들이 아침이면

떼지어 날라와서 전기줄에 나란히 앉아서 노래하다가 땅으로 하강해서 멀린 코끝을 간질이는 듯이 다가와도 반응이 없다. 동네

개들이 한꺼번에 줄기차게 짖어대면 우체부 아저씨가 메일을 돌린다는 신호인데, 멀린은 더 이상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다. 다만

두어번 독립적으로 컹컹 소리를 낼 뿐이다. 옆집 차고 옆을 어슬렁거리는 들고양이가 가끔 나무울타리를 넘어 이쪽에 관심을 보여도

시쿤등하다. 운동을 시키려고 산보를 데리고 나가면 한블락도 힘들어 해서 온 힘을 다해서 줄을 당겨야 한다. 게다가 걸으면서 크고

작은 실례를 하므로 창피하고 미안해서 산보도 끊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 목욕을 시키면 목욕 중에도 그대로 변을 눈다.

치매에 걸린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멀린의 몸은 멀린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몸뚱이가 더 이상 아니란 사실이다.

 

요즈음 나는 뒷마당에 자주 나간다. 마당 텃밭에 심은 토마도, 상추와 고추 때문이다. 특히 상추가 어찌나 잘 자라는지 열심히

따먹어야 한다. 땅에 심은 작은 씨에서 싹이 나고 조금씩조금식 커지더니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무성하고 잎이 커진다.

큰 잎을 따주어야 작은 잎과 새로 나오는 잎이 자랄 공간이 생긴다. 멀린은 집밖으로 나오는 나를 직접 보지 않는한 내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언제나 주인이 나온 것을 알고는 내 곂으로 다가온다. 상추를 따는 동안 그냥 내 옆에 서있는다.

하지만 모습은 1년 전까지의 당당한 모습이 아니다. 눈으로는 나를 간절하게 보는 듯하지만 머리는 땅에 납짝 깐다.

장난삼아 상추밭에 한번 들어가 헤집고 나옴직도 하련만 상추를 조금도 못쌀게 굴지 않는다. 그런 탓에 상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지만 왠지 기쁘지만 않고 묘한 감정이 생긴다.

 

 

동물이나 식물 처럼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어릴 때는 생기있고 활기찬

모습이어서 바라만 보아도 그 활기에 전염된다. 집마당에 심어진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들 모두 5월에 알맞는 모양새를 하고있다. 감나무, 석류나무,

사과나무, 레몬나무, 낑깡나무, 아보카도 나무, 살구나무, 포도나무가 가을이

되면 영글 크고 단 열매를 준비중이다. 이 나무들이 모두 열매를 맺을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5월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삶의

황금기를 다 지내고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는 멀린은 작년부터 언제라도

생이 마감될 수 있다는 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한다. 생명은 강하고

정은 모질어서 똥을 아무데나 누어도 아직은 내가 키우는 식구같다.

지난 13년간의 나의 경험 중의 일부는 멀린과 함께 했다. 그 경험을

기억하고 있어서 간혹 멀린을 안락사 시키라는 친척들의 권고도 가볍게

물리친다.

 

올 한해는 그냥 지내자!

아직은 나를 바라보는 눈이 살아있는데 어떻게 그 끈을 끊나?

 

(옆사진은 열매를 맺기도 전에 끝을 맺은 석류나무의

 빨간 꽃들이 땅에 뒹구는 모습이다.)

 

 

 

자주종종 딸의 강아지들이 놀러온다. 3살인 릴리와 두살인 다비이다. 직장 탓에 다운타운에 사는 딸 집의 주변에는 잔디와 나무가

별로없다. 그래서 놀러오면 나는 두 마리 개를 데리고 선물삼아 아주 오래 산보를 한다. 곳곳의 나무 밑둥, 전보대, 덤불, 꽃나무,

잔디 등등이 이 두 마리의 화장실이 된다. 다른 개들이 남겨둔 자국들의 냄새를 열심히 킁킁거리고 맡고는 자기들도 실례를 남긴다.

주위의 작은 움직임에도 아주 민감하다. 멀리 개들이 지나가면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기를 거부한다. 그 개가 지나간 후에야

발걸음을 옮긴다. 아기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엄마나 보모를 보면 구경거리가 난 듯이 쳐다보고 귀를 세우면서 흥미를 보인다.

마당에 있는 할아버지 개인 멀린에게도 관심이 크다. 마치 자기들이 이 집의 주인인 듯이 으르렁거린다.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우편함에 밀어넣으면 집이 떠나갈듯이 짖어댄다. 다비는 편지함 안으로 밀어진 메일 한쪽을 입으로 물고는 다른 한쪽을 잡고있는

우체부 아저씨의 손과 줄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나의 작은 동작을 눈길이나 몸으로 민첩하게 좇는다. 예쁘다고 만져주면 마치

내 자식이나 되는 듯이 당당하게 나에게 파고든다. 멀린과는 참 다르게 행동한다. 이것이 어리고 나이듬의 차이인가?

 

(작은 다비와 하얀 릴리인데 잘 자라고 있다.나는 개들이 딸을 따르는 모양을 보는 것이 즐겁다.)

 

멀린이 얼마나 더 곁에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충직하게 온 생애를 우리 집 개로 살아왔다는 고마움 때문에 모두 봐줄 수 있다. 

지금껏 자기 자리를 충실히 지켰고 자기가 아는 개의 소임을 다 했다. 내가 한 것은 밥을 주고 가끔 관심을 보여준 것 뿐이다.

나를 쳐다보는 멀린의 눈은 내가 주인인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늙어버린 멀린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나고, 

저 세상에 계신 시부모님도 떠오른다.

"그 때는 잘 몰랐었는데... 늙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란 것을. 이렇게 늙어간다는 것을."

 

동물은 유한한 생명체로 나이들면서 늙어가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래도 동물은 식물과는 달리 자신의 뜻을 표현할

능력이 있어서 조금 덜 억울하고 감사하다. (우리 사람은 엄청 표현하면서 살다가 죽지만... ) 멀린의 삶은 내 인생의 지난

13년의 시간 안에 녹아 있다.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덕복 중의 하나가 변함없는 마음과 충성심이라고 생각한다. 좋을 때는

취하다가 싫고 구찮다고 던져버린다면 어찌 가슴이 뛰는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한의 삶이기에 한결같은 마음이

더 절실하다. 그리고 가슴이 따뜻한 때가 인생의 역사가 쓰여지는 생산적인 시기이다. 멀린에게 좀 더 시간을 주고싶다. 생의

마감도 탄생처럼 결정은 우리를 벗어난 힘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될 때에 나도 여는 미국인들 처럼 멀린을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리고 확실하게 good-bye 인사를 할 것이다. 고마웠다, 잘가라고.

그 때를 정확히 모르지만 또 하나의 이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있다.

 

(5월의 장미가 눈부시고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