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톤 대통령의 어른(elder) 역할이 돋보인 민주당 전당대회
나는 민주당 편에 선 사람이다. 미국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내 성향이 공화당과 흡사하다고 생각했었다. 가치관을 중요시
하고 고리타분한 면이 강해서. 그런데 살면서 점차로 이민자를 옹호하는 민주당 쪽으로 기우러져 갔다. 요즈음의 공화당은
유난히도 부자들을 위한 정당으로 탈바꿈하고 있어서 점점 더 나와 멀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정치자금
후원 합법성이라는 날개를 단 슈퍼리치(super rich, 상위1%) 들과 기업들이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는 슈퍼팩
(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으로 엄청난 자금을 풀고 있다.
2012년 민주당 전당대회는 9월 4-6일 North Carolina 주 샬롯(Charlotte)시에서 개최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은 참 흥미롭다. 원래 정치판은 복잡하고 치사하고 옹졸하고 더러운 것이지만 미국 선거에는 아직도 진실과
정의가 조금은 남아있는 듯해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준다. 오바마 같은 무명 정치인이 시대적인 대운과 개인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켰고, 자기 철학과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중부지역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다가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발탁된 폴 라이언(Paul Ryan) 같은 새 인물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보나 정당으로 돈줄기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 이를 막기 어려운 것이 정치판이다. 선거 자금 후원의 수락은 돈줄의 이익의 대변과 진실의 꼬임을 가져오게 된다.
미국 선거의 절차는 명료해서 절차를 따라가기 쉽다. 후보자들을 다각으로 벌겨벗겨 검증하는 것도 명쾌해서 좋다. 찌르고 얼르고
비방하고 칭찬하고 무시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면서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킨다. 곧 있을 세번의 오바마와 롬니의 TV 토론은
많은 변수와 위험을 예고하고 있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지난 일년여 시간 동안 각기 당의 대통령 후보자를 결정했다, 그리곤 각기 다른
색깔의 전당대회를 8월말과 9월초 일주간의 차이로 열어서 오바마와 롬니를 공식화했다. 전당대회는 보통 월요일에 시작해서
목요일에 끝나며, 매일매일의 절정인 제일 마지막 연설로 마감한다. TV 는 오후 7시 전후로 생중계를 해주기 때문에 그 날의 주요
연설자의 앞에 나서는 사람은 진행이 늦어지면 운좋게 TV 황금시간대에 전국민에게 얼굴을 알리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랬고, 또 민주당에서는 보험회사의 피임약 지불을 외치다가 극보수 토크쇼
사회자인 러쉬 림보그(Lush Limbaugh)에게 쌍욕을 들었던 법대생 산드라 플루크(Sandra Fluke)가 생중계를 탔다.
나는 민주당 전당대회 9월3일의 마지막 연설자인 미셀 오바마, 수요일의 하이라이트인 클린톤 대통령의 연설, 그리고
목요일의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푹 빠졌었다. 이들의 말 속에는 내 속에 전기를 일으키는 무엇이 있었다. 자로 잰 듯이
완벽하게 남편을 옹호하고 소개했던 미셀 오바마, 적자감축을 하려면 수학 계산을 하라고 공화당을 꼬집고 오바마를 높이
올려준 클린톤 대통령, 그리고 4년 전보다 더 진중하고 자신을 낯춘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자 수락 연설들은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생생했다. 특히, 클린톤 대통령의 It's arithmatic!(계산을 해봐)는 새로운 유행어로 떠오르고
그의 연설은 민주당 전당대회의 품격을 올려주었다.
클린톤 대통령의 연설은 오바마를 밀어주는 최고의 후원이었다. 나는 그의 말과 표정 하나하나를 따라갔다. 달변의 재능과 엄청난
지적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수많은 당원들과 카메라 렌즈 앞에서 그처럼 능란하게 분위기를 파악하면서 할말을 다하는 연설을
할 수 없다. 정치학과의 교과서 같은 연설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미국의 elder (어른)가 되어 후배 대통령을 옹호하고 감싸고
비젼을 제시하고 힘을 실어 주었다. 마치 옆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억양과 태도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멋졌는지... 여러가지
인간적인 실수로 탄핵으로 까지 몰렸던 전 대통령의 기막히는 인생의 반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클린톤 대통령은 그의 연설이 끝난 후 무대에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머리 숙혀 인사했다. 그리곤 힘찬 포옹을 나누었다.
멋진 선후배 대통령의 관계가 빛났던 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한 정당의 멘토나 지도자가 되는 인물이 자신을 전부
내어 준 듯해서 가슴이 벅찼던 장이었다. 정책토론을 하듯이 숫자를 제시하면서 상대를 반박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현재의
위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렴에 믿음이 간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공화당과 달리 우리 모두 함께 가자고 함으로써 한패가 된 듯한
느낌을 주어서 끌린다. 부유하게 성장한 정치인도 많지만,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던 억척스러운 부모 밑에서 성장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중추인 정당의 뜨거움이 전해진다. 많은 인종들이 섞여 만든 도시 같은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을 제시하는 당을 지지하고 싶다.
이 두 사람은 후세에 훌륭한 미국 대통령으로 존경받을 것으로 믿는다.
민주당이 오바마 대통령의 성공적인 재선으로 지난 4년 동안 목적했던 변화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예전과 달리
퇴락의 길을 걷는다는 소리를 듣는 미국이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 교육과 양심적인 지식인, 격있는 정치가가 아직 건재하기에
희망이 있는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4년 전 취임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아졌는지 못해졌는지의 쟁점을 넘어서 후대는 지금 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향유하는 미국이면 좋겠다. 클린톤 대통령의 '합심이 충돌보다 더 나은 것이며,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번은 맞는다.'
말처럼 정치인들은 당 보다는 미국이 당면한 거대한 문제 해결에 더 중점을 두어 협조하고 반대당의 의견을 수렴해도 자신의
정당에서 매도되지 않는 풍조 속에서 정치하면 좋겠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이룬 지난 4년간의 업적을 국민의 성취로
돌렸다. 미국의 미래 역시 함께 의무를 짊어지고 고통을 나누는 자세에 달려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