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not today, when? 오늘이 아니면 언제?
Today is not just another one day!
상당히 자주 들었던 말들 중의 하나다. 또한 항상 기억하고픈 말이다. 오늘은 하느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라서 영어에서는 선물의 뜻을
가진 present 가 현재, 지금을 의미한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품에 안겨진 보물이다. 가끔 생각한다. 오늘을 잘 보내고
싶은데 정신줄을 놓지 않았는 지를? 아침 시작 걸음을 잘 떼고 있는 지를? 하루의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이라는 나눔의 단위를
잘 활용하는 지를? 그리고 오늘 만들어지는 내 삶을 얼마만큼 책임질 각오인 지를?
앞으로 그리 긴 시간이 남은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짧은 시간이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다. 최근 읽은 글에 의하면, 나이에 비례해서
시간의 속도가 가속화 되는 것은 생각없이 움직이면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란다. 새로운 것을 찿아 힘들게 도전하면서 살면 애쓴만큼
두뇌는 자극을 받고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양과 속도로 주어지지만 주관적인 관념으로
관리되고 해석되고 있다는 뜻이다. 동감되는 글이었다. 색다른 자극이 없어도 하루의 일과가 몸에 익었고, 또 생각을 골돌하게 하지
않아도 하루의 물길은 흘러가건만 굳이 예전같지 않은 몸으로 애쓰면서 살 필요가 있는지? 이래도저래도 동일한 결과가 예측되는데...
반대로 후회는 나이들수록 보따리가 커진다고 하는데 나는 다행히 큰 미련없이 던질 줄 안다. 아마도 돌이킬 수 없다는 현실타협적인
자세와 지나간 시간들도 나름 충실하게 다루어졌다는 자위를 하는 탓에 위안을 받기 때문인 듯하다. 삶에서 거저 얻거나 성취했던 일,
부,명예, 등등의 현란한 겉옷들의 가치는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진 후로는 빛을 잃어가고 있음이 선명해진다. 통에 물을 채우면 통을
흔들지 않아도 크기 이상의 물은 밖으로 넘치듯이 이 모든 것들은 일정한 양을 넘기면 그 가치는 빛바랜다. 시대에 따라서 절대가치를
지닌 의, 선, 덕, 미, 중용, 사랑, 이해심, 용서 등등 마저도 재평가되고 부연되고 삭감된다. 한 사람의 소멸은 한 시대의 저뭄을 뜻하고
포용했던 판단의 기준은 재평가된다. 남은 자들은 자기들 입맛에 맛게 새로운 관념과 가치관을 만들어 간다. 오늘이 멈추는 그 날에
수없이 맞이했던 오늘이 손가락 사이로 전부 흘러버리는 순간 후회는 새로움으로 탈바꿈해 지상에 뿌려진다. 그래도그래도 나는
마지막 오늘까지 남는 것을 찿아 헤맬 것 같다.
The Search by Shel Silverstein
I went to find the pot of gold. 황금 단지를 찿아 나섰다
That's waiting where the rainbow ends. 단지는 무지개가 끝나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I searched and searched and searched and searched 나는 찿고, 찿고, 찿고 또 찿았다
And searched and searched and then --- 그리고 더 찿고 더 찿았다. 드디어 ---
There it was, deep in the grass, 황금 단지는 있었다. 오래되고 구부러진 큰 나무가지 밑의
Under an old and twisty bough. 풀밭 깊은 곳에 있었다.
It's mine, it's mine. it's mine at last.... 내거야, 내거야. 이것은 내 것이야, 마침내....
What do I search for now? (그런데) 지금 찿고 있는 것은 무었이지?
10대는 울창한 숲같다. 간혹 어두워서 앞을 볼 수 없지만, 나무들은 쭉쭉 뻗고 큰 산을 활기있게 감싸며 공기도 청량하기 그지없다.
세상은 온통 초록색으로 희망적이다. 하지만 나무가 뻗을 방향과 키가 궁금하다. 나무 끝의 하늘은 어떤 색일까? 나는 어디로 갈까?
20대는 폭포같다. 끝이 보일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다. 비가 많이 오면 폭포믈은 불어나고 가뭄이 되면 적은 양의 물이 흐른다.
폭포 바닥에 떨어지는 물은 물안개가 되어서 아름답지만 여전히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힘이 넘쳐서 폭포물을 맞으면서 수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다.
30대는 자신에 대해 조금 알며 체념도 터득했다. 특히 부족한 면을 기억한다. 그래도 마음 속은 평온하다. 산 정상에서 부터 구비구비
흘러내리는 계곡물처럼 바위에 부딪쳐 깨지기도 하고, 바위를 돌아서 흐를 줄도 알고, 또 도랑을 만나면 멈출 줄도 안다. 바다에 다다르는
길은 불확실하지만 희망차고 분주하다. 흐르다보면 끝은 보일 것이니까.
40, 50대는 인생의 꽃이다. 40대라는 질풍노도의 시간을 거쳐서 50대에 관조된 마음으로 생의 절정에 이른다. 핀 꽃이 눈부셔도,
소박해도, 매혹적이어도, 관심을 꿀자 못해도, 가시가 있어도, 병충해에 색이 변해도 꽃은 꽃이다. 어느 꽃을 더 좋아할지는 개인 기호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모든 꽃은 아름답다. 우리는 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발버둥쳤었고 때론 절망해서 미친듯이 몸을 틀었다.
60대는 멀리있는 수평선이 보이는 시간이다. 내 눈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나무와 꽃들도 보이고 멀어서 잘 보이지않던 하늘과 땅끝이
만나는 곳도 눈에 들어온다. 넓은 시야를 보는 안목과 마음 때문이리라. 이 원근 사이에 자리한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희망적이다.
빨리 달리면 수평선에 다다를 듯하다.
70대는 광활한 바닷가를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같다. 낙타 등에 오르니 멀리 보이지만 내려서 내발로 걷자니 힘에 부친다.
그래도 낙타 덕에 아직 힘이 남아서 혼자 천천히 걸을 수 있다. 멀리 수평선은 선명한데 눈 앞의 물은 단지 물로만 보인다. 마음내키는
대로 요리를 하기에는 재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은 나를 기쁘게하고 낙타는 주인의 말을 잘 듣든다. 아직 통제와
통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한다.
80대 이후는 석양이다. 석양은 풍요롭다. 언제 떨어질 지 몰라서 서글프지만 해지기 전의 노을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황홀하다.
넓은 범위를 붉게 물들이는 아량도 있다. 낮에 골고루 비추어주었던 세상은 태양의 존재를 아쉬워한다. 그리고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린다. 사람아, 세상아, 내 것이었던 자잘한 물건들아, 그리고 변화무쌍한 자연아, 덕분에 아름다운 삶이라고 회고한다.
기억이 있어서 다행이다. 또 기억이 소멸되도 괜찮다. 꼭 필요한 것만의 기억은 끝까지 가지고 갈 터이니까...
우리 인생은 날씨와 같다. 오늘 하루도 날씨와 같다. 바람, 햇살, 구름, 비, 눈, 우박이 오는 날씨 처럼 좋고 나쁜 것이 모두 다 있다.
이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행복과 기쁨을 알고 슬픔 속에서도 미소짓는다. 인생 길을 가면서 누구는 걷고 누구는 뛰고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차나 비행기를 타고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작은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승자다. 중도에 포기를 하지 않은 사람이 승자다.
기억, 작고 소소한 일상의 경험들, 가슴 속에 담겨진 이야기 덕분에 오늘은 단순히 또 하나의 날이 아니다. 여정의 큰 획이며
남은 삶의 첫 날이다.
If not today, w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