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오감의 기능이 좋아지면 삶이 풍성해진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순차적으로 감각이 발달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미각, 청각, 촉각, 시각, 그리고 후각! 엄마는 아기의 오감이 섬세하게
발달될 수 있도록 그 기능들에 맞는 작은 자극을 주면 좋을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은 어렸을 때에 신체의 감각 기능 발달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엄마의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감각이 발달하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삶이 더 충만해진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잘 하고 주변 세상을 더 잘 이해한다.
삶이 풍성해서 인생을 더 즐길 수 있다.
난 오감이 발달한 사람이 아니다. 눈치도 빠르지 않다. 그냥 오래 함께하고 집중하다 보면 상대를 알게되고,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주변을 느끼고,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특성이 있다. 한 때는
눈치와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기를 열렬하게 원했다. 그러면 세상만사가 좀 편해질 것 같고, 실수도 덜 할 것 같고, 판단은
좀 더 정확해서 어렵지 않게 목적 성취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감이 발달하거나 드물게는
6 번째 감각 (6 sense) 까지 있어서 사람의 속내를 알아채거나 눈치를 뛰어넘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크게 부러웠다. 지금은
6 센스 는 언감생심이고 오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기만을 희망한다. 오감의 기능이 건재한 채로 나이들면 넉넉한
시간 덕분에 삶이 풍성해질 수 있다.
살수록 시각의 중요함을 안다. 감각의 70%를 차지한다는 시각은 40대 부터 나빠진다. 나는 그런 40대에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었던 탓으로 급속도로 눈이 나빠졌다. 최근에는 LA 의 강한 햇빛 때문인지 시야도 흐려졌다. 사실 내 오감 중에서
가장 발달했던 부분이 시각이었기에 서글프기도 하다. 청각도 신통치 못한 것을 자주종종 느낀다.
하지만 이젠 후각이 큰 즐거움을 주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코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향긋한 커피향은 생각만 해도 화끈하고 뇌세적이다. 아찔한 정도로 빠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어렸을 때에 엄마가
해주시던 장조림 냄새도 중독성이 있다. 이제는 내가 만드는 장조림은 대를 물려서 아이들 입가에 미소를 준다. 여름 밤
외출했다가 집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코를 찌르는 자스민 향기는 살짝 역겨운 향수 냄새 같지만 왠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갑자기 연인이 찿아온 느낌을 준다. 어쩌다 만드는 카레향도 머리 속을 한바뀌 돌고 나온 듯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꽃게를
좋아하셨던 엄마는 게찜이나 게찌개를 하시면 큰소리로 우리를 불러모으셨다. 잘 졸여진 꽃게 냄새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이완시켜준다. 코로 들어오는 냄새가 깨우는 기억들은 후각의 또 다른 멋진 선물이다.
<감각> Sensation by 아르튀르 랭보 (Jean Nicolas Arthur Rimbaud)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Through the blue summer days, I shall travel all the ways.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Pricked by the ears of maize, trampling the dew
하여 몽상가의 발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A dreamer, I will gaze, as underfoot the coolness plays.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I'll let the evening breeze drench my head anew.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I shall say - not a thing: I shall think - not a thing: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속에 피어오르리니, But an infinite love will swell in my soul,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And far off I shall go, a bohemian,
여자를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Through nature - as happy, as if I had a girl.
(한글 번역은 옮겨왔다)
왼쪽에서 두번째 사람이 랭보이며 그의 왼쪽 옆 사람이 4년간 정신빠진 사랑을 나누었던 시인 Paul Verlaine 이다
위의 시는 프랑스 시인 랭보가 16살 때에 썼다고 한다. 제목처럼 시인이 가장 감각적 (sensational) 일 때에 쓰여졌다.
그는 일생에서 4년 동안만 시를 쓰고 발표했으며 21살에 절필했다. 그래서 랭보의 전성기는 17살에서 20살이라고 한다.
내가 느끼는 한글 번역은 투박한 듯하지만 16살 소년이 가질 수 있는 밖을 향한 감성이 느껴진다. 16살은 남자의 생에서
신체적으로 가장 힘있고 호기심 많고 반항 의식이 강한 나이다. 시각과 촉각의 유혹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싶을 때이다.
뒷통수를 칠 정도의 무모함을 저지르고 자기 비애에 빠지기도 한다. 또 순수한 감수성으로 아파서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찬란한 태양과 곧 나타날 아름다운 여인의 존재를 믿는다. 그런 믿음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시인처럼 오감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살기 어렵다. 형편 때문에 아니면 선택으로 녹녹지않은 생활에
집중해야 하므로 하루하루가 빡빡하다. 감각으로 상황을 흡수해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대충 늘어난 눈치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전빵으로 살고자 한다. 나이들면 오감의 기능이 퇴화되는 것이 정상인데 젊은이들이 너무 일찍
밖을 해석하는 창인 감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아로만 향하는 세태가 안타깝다.
그렇게 된 이유를 들자면 네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나, 현대인은 톡톡튀는 오감으로 바깥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에 점점 자신에게 빠져든다. 그래서 내 안의 나가
너무 크다.
둘, '실용'이라는 미명 하에 편한 길을 택한다. 그 길이 회색인 경우에도 바꾸지 않는다.
셋, 마음과 뇌는 쉬지않고 움직인다. 그래서 마음은 초조해지고 몸은 피곤하다.
넷,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달려야 한다. 그래서 정신과 몸을 완전 가동시킨 채로 산다.
나 역시 다르지않다. 하루가 빡빡해도 끝나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듣고 만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무심하게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나름 생각하면서 지낸다고 했지만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허탈하다! 정신을 현재에다
두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점차 나의 본질은 선명하지 않고 나의 중심에 무엇이 서있는 지 애매하기만 하다.
불현듯 더 늦기 전에 주변과 사람들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인다, 내가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순간들은 흘러간다.
감각으로 인지해서 기억창고에 집어넣든 못하든 다 지나간다. 나의 많은 것들을 지나쳤거나 간과했다고 아퍼할 사람은
자신 뿐이다. 섬세한 감각적 인지를 했다면 나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었을 지도 아무도 모른다.
감각에 불을 지피고자 잠시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눈을 감은 채로 연상해본다.
내 몸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운 선율이 집안에 흐르고 있다 - 청각
아침에 일어나 사각사각한 사과를 한입 베어먹는 맛이 그만이다 - 후각, 미각
오븐에서 구워지는 빵 냄새가 구수하고 향긋해서 군침이 돈다 -후각, 미각
잠시 내 손길이 머물렀던 그대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른다 - 촉각
눈에 들어온 당신의 미소는 싱그럽고 멋지다 - 시각
이제라도 일상의 작고 미묘한 움직임과 변화를 느끼고 살도록 애써야겠다.
늦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처럼 감각에 눈을 뜨고 익혀서 그것이 주는 풍요로움을 즐기고 싶다.
내 자신 보다 주위의 뭄직임을 냄새맡고 듣고 맛보고 만져보자. 편하고 짧은 지름길 보다 불편해도 음미하면서
돌아가자. 생각대로 되지않는다고 초조해하기 보다 신에게 맡기고 귀를 열자. 그리고 정신없이 변하는
사람이나 세상사를 탓하지 말고 하늘을 롤려다 보면서 시야를 넓히자. 또 사랑도 열심히 하자.
그러다보면 몸과 정신은 건강해지고 감각의 경이로움이 조금쯤은 돌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