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친구의 오해에 뒤를 돌아보다

rejungna 2016. 7. 23. 13:25

오해는 쉽고 우연하게 발생한다. 얼굴 안보고 떠오른 생각을 단문으로  재빨리 써내려갈 때에 그렇다. 앞뒤 말 문맥을 

충분히 따라가지 않고 중간에 끼어들 때에도 그렇다. 평시에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자신을 찌르는 단어가 급하게 눈에

들어오면 그렇다. 잘 알지 못하면서 성질부터 올리면 그렇다. 최근 위의 모든 것이 나에게 한꺼번에 일어났다


지난 주말에 친구들과 그룹 카톡하다가 사건이 생겼다. 한국에서 3명 그리고 미국서는 나와 다른 친구, 이렇게 5명이

멤버다. 사건의 핵심인 미국의 친구는 3년 전에 자신이 보낸 카톡에 한국에 사는 친구들이 빨리 답하지 않아 자존심 상해서

방을 나가버린 전력있는 친구다. (한국과 미국에는 시간차가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하지만 재초대를 한 친구가

서울서 2년 전에 내 집을 방문했을 때에 우리는 그 친구 집을 찿았고 밤새 대화했고 그 뒤로는 아주 가끔 나와 통화도 했다.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재초대를 한 친구에게 다른 친구는 말했다. "네가 벌렸으니 잘 해라~~ " 그래도 우리는 좋아했고

미국 친구는 아주 기뻐하며 자신의 일상을 길게 전하면서 수다를 풀었다. 나는 우선 환영한다는 인사말을 전하고 하는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것이라 말했다. 그 후 서너 시간 동안 내 전화기는 카톡 알림으로 쉽없이 작은 미동을 했다. 

주로 재초대를 한 친구와 미국 친구 둘이서 신나서 소식을 주고 받았고 다른 두 친구은 가끔 한두마디 추임새를 던졌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나는 재입장 했다. 그 동안 주고받은 대화창이 150개가 넘었다. 대충 훓터보고 대화에 끼는

시도를 했다. "xxxx 는 어디 갔어?"라고 나를 찿는 친구의 말도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재초대 친구가 뜸금없이 이곳 친구의

복잡했던 개인 과거사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유명 대학의 학장직도 마다하고 미국행을 택한 결정은 그녀가 여장부이기

때문이라고 칭찬을 했다. 그러면서 그런 과거사를 한국서는 '흑역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어서 "사실 '흑역사'는 black

history 로 흑인들의 역사인데 우리는 흑인이 아니잖아 ㅋㅋ."라고 적었다. 그 말 아래에 이어서 내가 한 마디 던졌다. "xx 가

말한 의미의 '흑역사'의 영어는 black history 보다는 'dark history' 혹은 'secret affair' 라고 해. 난 잘난척을 안하는데

오늘은 너희들 앞에서 할께." 이 말에 친구들은 "ㅋㅋ"와  "언제라도 잘난척을 환영해!"라면서 웃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순간 잠시 딴짓을 한 듯한 이 곳 친구의 화가 잔뜩난 대화창이 올라왔다. "뭐~~ 나의 흑역사? secret affairs? 내가

잘난척했다고? 내가 요즈음 잘 나가고 있는 사진들을 몇장 올렸다고 지랄들이야. 난 secret affairs 같은 것 없었고 당당하게

남자 만났고 당당하게 내 삶을 살았어... 그런 식으로 남의 인생 매도하지마. 더 이상 이 톡방은 나에게는 아무 의미없고,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나간다." 그 친구는 뒤를 돌아볼 여유와 설명을 들을 여유와 다시 한번 글을

읽을 여유도 없이 3년의 흐름을 무색하게 만들고 톡방에서 퇴장했다. 혼자 말하고 혼자 떠났다.



5명의 카톡방을 열은지 하루만에 3년 전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전보다 더 화가 치민 상태로 내 가슴을 놀라게 하고는.

우리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나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한국에서는 '흑역사'라는 말을 농담삼아 거론한다고 하지만,

복잡한 개인 생활을 이겨내야 했던 그 친구는 앞뒤 문맥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신의 가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에

떨어져서 이성을 잃은 듯했다. 어떤 사람의 말 처럼 '보고싶은 것만 보았고' 이를 위해서 주변의 것들은 '편집한' 듯했다.

특히 재초대한 친구와 나에게 분노했다. 그녀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유난히 남자 관계가 복잡했다. 내가 알고있는 가까운

사이였던 남자만 5명. 그들 중에 이루어질 수 없는 한 사람의 딸을 낳아서 훌룡히 키웠으며 가장 사랑했던 이루어질 수 없는

또 다른 남자는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워낙 능력이 있는 친구는 생활력도 있고 예술가로서 이름도 조금 알렸다.

동창회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통크고 시원시원해서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 단지 학창시절부터 오해를 잘 해서 친구들

중에서 가장 쉽게 삐치는 사람인 것은 여전하다.


그 날은 나 역시 내 말을 왜곡한 친구가 미웠다.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난 후로 친구의 마음이 조금 헤아려졌다. 살면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성을 다 채워주기는 어렵다. 아무리 잘해도 순간이 틀어지면 회복 불능이 될 수도 있다.

문득 신문서 보았던 기사 내용이 떠올랐다. 미국 유명 대학인 칼택에서 20년 이상 봉직한 glass blower(유리장이)의 은퇴에

관한 뉴스였다. 유리장이는 학생, 교수, 연구원들이 실험에 사용할 유리 도구를 떠오르는대로 종이에 그려주면 아주

정밀하고 정확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이 정도의 실력이 있으려면 대학 2년의 교육 과정 이수와 도안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초적인 생화학, 수학, 컴퓨터 드로잉 공부도 해야한다. 또 화학자가 그린 아이디어를 이해하려면 역학, 화학, 물리, 열역학의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한다고 한다. 이처럼 제반능력을 갖추어야 과학자들의 머리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오랜기간의

연습과 경력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이 만큼 남의 욕구와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쉽지않다.



다른 사람이 원하고 싫어하는 바를 정확하게 간파해서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순간적으로 골라낼 수 있으면

쉽게 오해를 사지 않을 것이다. 머릿 속에는 대화를 나누는 다른 사람들의 환경과 이야기를 담아두어서 필요할 때에

잊지않고 참고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 농담과 잡담의 순간이라도 '헤아려주는' 마음의 끈을 놓치면

실수를 한다. 특히 예민한 사람과 교류를 할 때는 더 조심을 해야한다. 피곤하기는 하겠지만.


그 친구의 지난 이야기를 모른다면 아마 난 오랫동안 섭섭해 하면서 지낼 것이다. 하지만 친구 뒤에 잠복해있는 긴 꼬리의

잔영을 이해하기 때문에 좋은 소리 조차도 자신을 향한 뾰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를 겨울쯤 찿아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때 쯤이면 날씨도 시원해서 우리들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을 좀 더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가 오랬동안 너무 내 일에만 신경쓰면서 살아온 것 같다. 카톡에서 던진 친구의 강도높은 비난의 목소리가 들인다.

"니가 먼저 나 보자고 한적 있니?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면 뭘 그리 핑계대고 바쁜척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