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서 만난 발레리나 알렉산드라 페리
현재 한국 방문 중이다. 방문 두달 전에 LA 판 중앙일보에서 알렉산드라 페리의 예술의 전당 10월 공연을 접했다. 혹시?
반짝이는 마음으로 공연 날짜를 확인했다. 어쩜~~ 내 방문 중에 페리의 공연 일정이 잡혀있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하고 발레공연 가자"고 하면서 빨리 표 두장을 사라고 했다. 최대한
앞에 앉아서 관람하고 싶으니 로얄석으로. 부탁이라기 보다는 망설이는 친구를 조르는 강요였다. 마침 친구에게 맡겨둔
돈을 믿고 뻔뻔하게. 날짜는 26일을 택했다. 10월 22 ~ 29일의 일정 중에서 페리의 공연은 22일과 26일 두번 뿐이었다.
일찍 도착한 탓에 주변이 한가한 오페라 하우스
관람 전에 저녁을 먹고, 또 혹시 기웃거릴 전시회가 있을까 해서 일찍 출발했다. 한적한 오페라 하우스 주변이 좋았다.
운좋게 관람의 기회를 잡은 공연은 유니버설 발레단이 2012년에 이어서 두번째로 무대에 올린 Kenneth MacMiillan
(케네스 맥밀란) 버젼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세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 무대라고 한다. 케네스 맥밀란은 스코들랜드
태생인데, '드라마 발레'의 시대를 연 안무가라고 한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창단 멤버이며, 환상적인 이야기 보다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 '심리 드라마 발레'를 구상했다고 한다. 1965년에 발표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를 세계적인 안무가로, 또
1984년에는 줄리엣 역을 한 21세의 페리를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발돋움하게 했다. 이제 줄리엣과 알렉산드라 페리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페리는 2007년 은퇴 결정을 했을 때의 고별 무대로도 미국 아메리카 발레단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택했다.
오페라 하우스 안에 설치된 공연 prop up인데 사람들이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공연 전에 높이 달린 공연 포스터 밑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대감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표를 내고 극장 안으로 입장하는 순간 살짝 흥분되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커다란 무대 스크린은 고즈녁하고 멋지며 무대
좌우의 발코니 좌석들은 로맨틱하고 높은 천장은 가슴을 끌어올렸다. 희망의 나라로. 내 자리는 아주 앞자리는 아니어도
발레리나들의 얼굴 표정을 제외한 춤 동작들을 자세히 관람할 수 있는 거리다. 아~~~ 기쁨이여! 옆의 친구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연실 미소를 짓는다.
이어서 무대는 올라가고 1막이 60분, 15분 휴식, 2막 35분, 15분 휴식, 3막은 40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은 아주 빨리
흐르고 공연은 금방 끝나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난 발레 전문가가 아니어서 동작의 섬세함과 무대의
완성도를 평가할 능력이 없지만, 페리의 우아한 춤에 반하고 로미오역의 아메리카 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에르만 코르네오의
힘있는 춤에 감탄했다. 기대만큼 자기 실력을 보여준 두 주인공 외에도 전 단원들의 춤과 연기는 뛰어났다.
앙숙인 Capulet (카풀렛) 가문과 Montague (몬태규) 가문을 대표하는 로미오의 친구인 Mercutio (머튜시오) 역의 강민우,
로미오의 사춘인 Benvolio (벤볼리오) 역의 이고르 콘타레프, 그리고 줄리엣 사춘인 Tybalt (티발트) 역의 이동탁은 훌륭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칼싸움은 실감나고 박진감있어서 긴장감과 재미를 크게 높여주었다. 무대 의상 또한 화려하고 세련되어서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난 '드라마 발레'가 어떤 것인지를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무대가 열리고 대다수 관중들의 입장이 시작되기 전의 객석
알렉산드라 페리를 소개하는 나의 예전의 블로그 포스팅을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이태리 태생의 페리는 1963년 생으로 1980년 영굴 로얄 발레단에 입단해서 1983년19살 나이로 발레단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principal dancer 가 되었다. 2년 후에는 아메리칸 발레단의 principal 이 되어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22년 후 2007년
44살에 은퇴했다가. 거의 7년만인 2013년 50세에 현역으로 복귀했다. 남편이 그녀를 떠난 해다. 기쁨, 희열, 존재감을 주는
발레를 다시하고 싶었다 한다. 진정한 행복을 어디서 얻는 지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혼자가 된 그녀는 로맨틱한 사랑도
꿈꾼다.
컴백 후에도 그녀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작년에는 초청 발레리나 (guest artist )로 로얄 발레단과 'Woolf Works' 를 공연해서 상을 받았다. 또 올해 6월 23일에는
뉴욕 발레단과 함께 뉴욕 Metropolitan Opera House 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의 쥴리엣으로 출연해서 큰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온 놀라운 제안에 몇달 고민을 하고 why not? 하며 수락했다고 말한다.
50살에 다시 돌아와서 무수한 우려를 부셔버린 발레리나!
52살에 화장품 모델이 되었고 53세에 10대의 쥴리엣이 되었다. 자아를 다시 찿아가는 성숙한 변모들이다.
알레산드라는 작년의 인터뷰에서 컴백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 once you realize it's never really over until it's over, every chapter of life can be exciting.'
(진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으면 인생의 모든 막이 전부 흥미롭다.)'
알렉산드라 페리와 에르만 코르네오
여기 사진들은 공연이 끝난 후인 curtain call 때에 찍은 것들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페리가 했던 말들을 몇 마디 더 옮겨보겠다.
'나이듦에 따라 표현이 점점 깊어지고 섬세함과 정교함이 늘었다.
처음에는 거실 하나 밖에 안 보였지만 점점 시간을 두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장과 서랍장 문을 하나하나 열어본 느낌이다.
나이들어서 몸을 자주 정기 검진하고 보살펴주어야 한다.'
발레 공연은 나에게는 무척 즐겁고 행복한 일탈의 시간이었으며, 출연진들에게는 지나간 눈물겨운 노력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환호라는 옷을 입고 뿌듯함으로 바뀌는 벅찬 순간들이었다. 알렉산드라 페리는 당연이 모르지만 나에게 준 위로는
크다. 힘들어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기분이다.
이렇게 고국에 와서 그녀의 무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오래가는 큰 행운이다.
페리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소개하고 있다
인사하는 티볼트와 머큐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