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인생에서 찬란할 때는 언제일까?

rejungna 2017. 8. 12. 15:03

얼마 전 캘리포니아주의 소방수인 Brent Witham은 번개가 일으킨 몬태나주의 산불을 끄기 위해서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타버린 나무가 쓰러지면서 덮치는 바람에 29살의 생을 마감했다. 기후 변화 이후로 자주 들리는 

산불 뉴스는 죽을 힘을 다하다가 순직하는 소방수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가끔 만든다. 브렌트가 자신의 Facebook에 

올렸던 모습을 옮긴 뉴스 사진에 내 눈이 오래 머물렀다. 잠시 손놓은 그와 주변이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LA Times 에 실린 Brent Witham 과 그가 싸우던 Lolo Peak Fire 의 사진을 옮겼다


나와는 안면도 없고 지금까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사람을 위해서 짧은 명복을 빌면서 보통 우리들의 삶을 떠올렸다.

영어에 hinterland 란 단어가 있다. 주로 복수 형태인 hinterlands 로 쓴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오지, 내륙지역, 즉,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을 뜻한다. 


뉴스가 금방 전해지는 도시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수들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힌터랜드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거대한 자연과 맞서서 손실을 최소화하려 한다. 우리는 힌터랜즈 삶의 척박함과 거기서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서 감내하는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광활한 지역에서 괴력의 산불을 통제해야 하는 소방수들의

작업 환경은 비참할 정도지만 그들의 노고를 상상할 뿐이다. 힌터랜즈에서 유명을 달리한 브렌트에게도 한때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찬란한 영광을 꿈꾸는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짧은 인생은 언제 가장 찬란했을까?


소방수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동네가 많아졌다고 한다. 어느 집 앞에 손으로 쓴 감사 팻말이 서있다.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꿈틀거리면 엄마는 작은 움직임에 전율을 느끼면서 간절히 기도한다. 건강하고 반듯하고 총명한

생명이 지구 상에 태어나기를. 귀한 생명은 시간의 배를 타고 유아기, 유년기, 사춘기, 청년기, 장년기, 중년기, 그리고

노년기를 거친다. 그 와중에 혼돈과 갈등을 겪으며, 때론 걷는 길이 꿈꾸던 찬란함과는 너무 멀어서 실망하고 당황한다. 

결국 순응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 생각과 육체는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깨지고 절뚝거리다가 

동그래진다. 또 간혹 들려오는 동년배들의 예기치 못한 비극에 놀라서 가슴을 쓸기도 한다. 아직 자신은 찬람함을 맛볼 

기회가 있음에 안도감도 갖는다.


인생이 찬란한 때는 언제일까?

부모의 사랑에 끌려간 시기?

사느냐고 정신없어서 아무 생각이 없을 때?

갑자기 발 밑에 작고 동들동들한 예쁜 돌이 눈에 들어올 때?

연이은 기쁨에 참지 못하고 웃음이 저절로 터질 때?

해야되는 일을 힘들게 성취하고 안도감에 자리에 앉을 때?


힌터랜즈는 이면의 삶이며 무대 뒤의

이야기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이 아는 

비밀의 화원이다. 화원은 한때 열정과 

역동성으로 에너지가 대단했었다. 나만 

아는 찬람함에 자신감이 넘쳤다.


부엌 테이블에서 아이패드를 보다가

눈을 들었다. 앉은 의자에서 일직선에

달린 두개의 창문을 지나서 집앞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내 눈,

부엌 창문의 눈,

그리고 대문 옆 창문의 눈.

세개의 눈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무심하지만 예쁘다!


더운 여름나절의 한낮인데도

좁고 긴 12쪽 유리창 너머의 포플러 나무의

늘어진 가지에 매달린 잎들이 작게작게

흔들리고 있다. 작은 바람이 치고 가나보다.


부끄러운듯 살랑대는 잎은

나의 힘이나

내 곁 사람의 의지나

이웃의 힘에 의해서 아니라

보이지않는 제 4의 힘에 의해서 지탱되고

숨쉬며 살아간다. 그것이 누구의 힘이든

상관치않고 무심하게 받아들인다.


문득 내 인생도 내 힘보다 보이지않는 힘에

의해 움직이고 흘러왔음을 깨닫는다. 다른

이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고비많은

힌터랜즈의 삶을 퉁과했다. 지금도 그 여정은

진행중이다. 감사한 것도, 애통한 것도,

서글픈 것도, 운좋은 것도, 바꾸고 싶은 것도,

던져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다.


바람에 작게 흔들이는 포플라 나무 잎은 

미세한 시원함에 희열을 느꼈으리라. 높이 

떠있는 캘리포니아의 강한 태양이 잠시 

맥을 못춘다. 바라만 보아도 잎이 느끼는

시원함이 전달되어 내 입가에서 엷은 미소가 

삐져나온다. 나뭇잎과 나는 둘이서 작은

찬란함을 비밀스럽게 공유한다.


나이들어 가면서 존재가 작아짐을 느낄 때는 모르는 보통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을 더듬으면서 자존감을 찿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목을 끈 보통 사람들의 자국은 작지만 선명하다. 큰 가지보다 작은 가지와 작은 잎들이 더 자유롭게 흔들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자유로운 흔들음은 역바람을 만들고 나비를 유혹한다. 새로운 관계로 인해서 인생의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이다. 


현재의 내 일상이 찬란함과는 멀어도 작은 변화와 움직임을 알아보고 위안을 얻으면 자신을 사랑할 용기를 얻는다.

걸어온 길과 갈 길이 힌터랜즈 안의 흐릿한 오솔길이어도 크게 실망, 절망, 권태감에 허우적거릴 것도 없다. 찬란한 때가 

이미 지나서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해도 절망할 필요도 없다. 찬란함은 내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방수 브렌트의 죽음을 읽고 안타까움에 그의 삶이 찬란했던 때를 상상하면서 나의 빛나는 시절을 끄집어 보려고 했다. 

내 인생에서는 찬란함이 작은 크기로 빈번하게 오는 것 같다. 그런 삶이기를 바라니까.


Brent Witham 의 시신이 캘리포니아로 이송되기 위해서 탄 비행기 앞에서 

마지막 경의를 표시하는 몬타나주의 소방관들과 동네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