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날 밤의 단상
이사가기 전의 마지막 밤이다. 혼자 이 큰 집을 지키고 있다. 주위는 깜깜하고 아주 조용하다. 여러달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한 탓에 마음이 가볍다. 아쉬움으로 평온하지 못할 것이란 예측은 틀렸다. 사람은 받아들이면 견딜 수 있는
정신무장의 옷을 입게 되나보다.
집을 내놓은 후에 buyer 들의 구입하겠다는 오퍼들을 받으면서 더 적극적으로 짐을 정돈했다. 옷가지, 가방, 신발,
살림살이, 가구, 먹거리 등등 내손을 거쳐야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잔잔한 소지품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람인 탓에 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 것으로 믿고 쌓아두고 담아두고 방치한 탓이다. 현재보다
작은 집으로 옮기기 때문에 독한 마음으로 짐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좋았다. 아니 꼭 필요했다. 더 이상 필요치않은
물건들에 눌릴 뻔했다. 나도 필요없는데 대체 누가 이 자잘자잘한 것 하나하나를 원할까? 가족들도 아니다.
오늘 저녁 식구들을 불러 가구가 거의 빠져나간 텅빈 집에서 마지막 만찬을 했다. 모든 음식이 맛나다고 했다. 진심이
음식맛에 녹아들었다. 손자들은 더 넓어진 집안팎에서 실컨 뛰놀았다. 애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즐거워했다. 원래
케익을 하나 준비해서 이 집에서 보냈던 행복했던 시간들을 반추하고 축하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점심 때에 단것을 많이
먹었던 탓에 그 계획은 보류했다. 대신 아들이 사온 아이스크림이 후식이었다. 식사 후에 4가지 맛을 한 숟갈씩 맛본
기분은 달콤했다. 몸에 가장 안좋은 것이 단것이라고 하지만 달작지근한 맛은 몸 안에서 이상한 마법을 행하곤 한다.
약간 흥분하고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집을 내놓기 전에 이미 가구의 반은 새집으로 갔다. 필요없는 남은 가구들은 팔려고 했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임자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필요한 단체에다 기부를 결정했다. 이들은 내년 세금보고할 때에 제출하라고 백지 서류를
주었다. 재미있게도 기부 금액을 우리보고 정하란다. 마음대로 써서 IRS 에 보고하라고 한다.
가구 외에 마음을 써서 부피를 줄인 것이 사진들이었다. 앨범이 상당이 많기 때문이다. 디지탈 카메라가 나오기 전에
현상했던 사진들을 정성스레 연대별로 담은 앨범이 20개도 넘는다. 애들 앨범은 그대로 나두고 내 앨범만 줄였다.
4개의 앨범이 하나가 되었다. 많은 사진들이 집을 잃었다. 머릿 속에서 지워졌던 순간들과 수없이 재회했다. 사진
찢기도 처음만 우유부단하지 계속 추려내면 쉽게 다이어트를 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비닐백에 잘려진 채로 담겨진
사진 부피가 상당하다.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시절의 순간들이 역사문으로 들어섰다. 완전한 이별이다. 나의 미소가
만발한 것으로 집작컨데 기분좋은 찰라들이 남겨진 듯하다. 그래서 헤어질 때도 가볍게 허공으로 날라간다.
30년 이상을 살아온 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까를 생각했었다. 짐싸고 옮기려고 하면 끝도없다. 그 일은 잠시
멈추고 내일 아침 이삿짐 트럭이 오기 전에 또 하면 된다. 블로그에 글과 사진으로 자취를 남기는 것이 좋을 듯했다.
어차피 머물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을 일부 잡아서 잠시간 쉬게하는 것이지만. 이 글도 시간이 가면 의미가 희석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위로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쉬고있는 밤에 글을 끄적거리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참 좋다. 길다면 길게 살아온 내 인생!
앞으로 어떤 흥분과 만날까? 어떠한 놀라움이 숨어있을까? 얼마나 더 크게 자주 웃을 수 있을까? 사뭇 기대된다.
이제는 모두 변한 모습이기 때문에 옛날 사진을 실어도 부담이 없다.
그리운 이들이여!
그 모습 그대로 내 마음에 새겨져 있노라
그대들이 있어서 내 마음은 빛났고
덕분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나의 존재도 반짝거렸다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