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한옥과 옛가구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몇년 전부터 한국을 방문하면 찿고 싶었던 곳인 '한국가구박물관'을 드디어 올해 갔다. 여기는 사전 예약이 필수라는
말을 작년에 들었기 때문에 오기 전에 친구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덕분에 가을과 잘 어울리는 동네인 성북동을 찿았다.
성북동은 조용하지만 감추어진 활기가 있다. 곳곳에 맛집이 있어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저기 보이는 성벽은 역사를
담고 단아한 인상을 주며, 가을 정취를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한 작은 보도 블락들은 침착하다. 동네는 에너지를
살짝살짝 보이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익어온 차분하고 고즈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디어 도착했다!!
입구를 에어싼 긴 돌담과 표시판이 정겹다.
주소는 주변의 대사관이 38곳이나 되는 이유로 '대사관로'라고 이름지어진 길에 위치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려면 예약된 시간을 인도하는 가이드의 안내하에서만 가능하다. 한 시간 동안 돌아보고 설명을
들었다. 친구는 한국어 안내 예약이 안되서 영어 예약을 신청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오후 두시 반의 우리 차례가
되었다. 14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열린 대문으로 예쁜 미국인 아가씨가 나왔다. 반가와요!
나는 그녀와 함께 한국의 옛가구의 아름다운 세계로 들어갔다. 다시 그 때를 생각할 수록 좋은 시간이었다.
'한국가구박물관' 현판이 아름답다.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다. 누군가가 봄이나 여름의 초록 잔디 때에 방문했다.
들어가서 궁체 앞에 서서 대문쪽을 찍은 사진이다. 대문 옆을 '행랑채'라고 하고 오른쪽에는 '정자'가 있다.
하인들이 기거했다는 행랑채와 양반들이 풍류를 즐겼다는 정자의 크기가 작다.
가구박물관을 즐기기 위해서는 박물관 내력을 조금 이해해야 한다. 나도 귀동양으로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렇게 예쁜 박물관을 손수 일궈낸 정 미숙 관장의 친정 아버지는 외무부장관을 하다가 5.16 혁명으로 실각된
정 일형씨, 엄마는 이 태영 박사, 그리고 지을 땅을 내주신 시어버지와 긴 과정을 보조해준 남편이 있다.
고등학생 때에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갔던 정 미숙 관장은 미국 학생들의 한국인들의 사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답못한 자책감을 갖고 돌아와 옛가구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다. 그러니까 1970년대 부터 시작해서 목가구, 옹기류,
유기류 등등을 2,000 여점을 모았다. 이 중에서 목가구 550점을 전시하고 있다. 나머지는 비공개다. 전시는 재료,
종류, 그리고 제작 지역으로 분류해서 기획했다.
대문에 들어서면서 안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앞의 가옥은 '궁채"이며, 우리는 옆의 문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이 곳서 가졌던 큰 행사들 때문이다.
*2010년 G20 정상회담 때 영부인들의 공식 방문소였다.
*2011년 미국의 CNN 방송국이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이라고 보도했다
*2012년 "Korean heritage meets 91 years of the GUCCI archive" 라는 이름으로 구찌 제품 전시회가 열렸다.
*2013년 미국 배우 브레드 피트가 돌아보고 특히 책꽃이인 석함에 반했다 한다.
*2014년 중국의 사진핑 주석 내외가 박 근혜 전 대통령과 오찬을 나누었다.
이 외에도 외국의 많은 인사들의 방문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 미숙 관장은 지방마다 다른 자연 환경과 생활 양식에 따라 다양하게 탄생된 가구를 선별,조사, 식별해서 이들을
제격으로 담아낼 수 있는 한옥을 지었다. 일부는 한옥이 헐릴 때마다 찿아가서 가져온 기둥과 기와를 재조합해서
원형을 복원했다. 한옥은 못질이나 본드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떼었다 붙였다가 가능해서 서양인들은 '레고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5년에 한옥 한 채를 지어 옛가구들를 생활에 사용되던 대로 전시하고픈 마음으로 시작한 박물관
건설은 규모가 점점 커진 바람에 완성까지 15년이 걸렸다.
가이드의 안내는 집밖 구경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끝나면 실내로 이동한다.
박물관에는 한옥이 10채 있다. 대문채, 행랑채, 정자, 궁궐채, 화랑채, 복도채,사대부집 안의 사랑채와 안채,
곳간채, 부엌채 이렇게 10채다. (혹시 틀릴 수 있다. 나의 계산이기 때문이다) 대문에 기와를 얹어서 대문채라고
부른다. 실제로 완전하게 지어진 가옥은 궁체와 사대부집으로 두 채다.
궁체의 뒷모습이다. 궁의 일부를 재현했다. '실로암샘' 이름으로 봐서 최근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궁체는 궁의 규격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기둥과 기둥 사이가 3 미터로 넓고 옆에는 복도채가 있다. (참고로 궁의 기둥
사이는 3미터, 양반집의 기둥 사이는 2.4미터, 민가는 1.8미터다.) 기와와 나무는 창경궁의 철거와 복원시에 나온
것들을 가져와서 이용했다. 하지만 나는 일제시대에 일본이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묵으로 창경궁을 홰손하고
동물들을 들여서 창경원으로 바꿀 때에 철거된 재료들을 보존했던 것을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1970,80년대에
창경궁을 원래로 복원할 때에 남은 기와와 나무를 가져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쨋든 재료는 창경궁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지붕 끝의 둥근 장식의 기와에는 용문양이 있다.
궁채 실내를 구경할 때에 창문 밖에 보이는 '실로암샘'과 '불로문'이 보이는 것을 사진에 담았다.
불로문
이 문을 지나가면 늙지않는다고 해서 불로문이다. 창덕궁의 불로문을 재현한 것이데, 외국인을 염두에 두고
원형보다 크게 지었다.
불로문을 지나면 사대부집과 곳간채와 부엌채가 있다.
사대부집은 잘 생겼다. 나무의 질도 좋고 기와도 예쁘고 창문은 고급스럽다. (난 한국 창문을 특히 좋아한다)
이 집은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황후가 혼자 되셨을 때에 사가로 이용하셨던 집을 수유리에서 옮겨왔다.
사대부집의 마루를 '누마루'라고 부른다. 마당에는 '마사토'를 깔아서 온도 조절 (햇빛 반사 기능 이용), 배수 기능
활성화, 그리고 발자국 소리를 만들어 신변 보호 목적을 꾀했다. 가이드는 그래서 사극 영화를 보면 자객들이
지붕 위에서 뛰어 내려온다고 말했다.
여기서 포토타임을 준다. 나도 누마루에 앉아서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곳간채와 부엌채다.
설명에 의하면 부엌채의 굴뚝이 지붕 위에 있는 것은 드물다고 한다. 정 미숙 관장이 전라도 순천의 송광사의
요사채를 보고 그대로 지은 것이어서 독특한 굴뚝 모양을 갖고있다.
사대부집의 누마루에 앉으면 낮으막한 담장 너머로 서울의 풍경이 보인다. 저 멀리 남산의 탑이 보이고, 서울의
성곽이 포근하고 아늑하게 성북동 동네를 감싸고 있음도 보인다. 눈에 들어온 건물들과 사이사이 자란 나무들은
가을색을 입고 나름 화려한 자태를 뽑내고 있다. 담장에 기대어 바깥 풍경을 내려다 보노라면 안과 밖은 서로 다른
세상임이 느껴진다.
사대부집 마당 구퉁이의 굴뚝 옆에 작은 정원이 있다. 여기의 가을 정취가 참 예뻣다.
십장생이 조각된 화려한 굴뚝이다. 우리 선조들 가옥의 굴뚝은 집과 떨어져 있는 것이 신기하다.
경복궁의 자경전 굴뚝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포토타임이 끝나고 우리는 실내로 인도되었다. 궁채의 문이 열리고 안의 비밀스러움이 드러났다.
궁의 첫 인상은 "참 아름답다!"였다.
유럽의 궁은 크고 화려함으로 기를 죽이지만 한국의 궁은 작고 참하고 절제되면서도 감추어진 화려함이 있어서
매력적이다.
접견, 환대, 연예 파티장이다. 잠시 여기서 차를 마시는 나를 상상했다.
우리는 지하 가구 전시장으로 내려갔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들이 장이었다.
감나무, 단풍나무, 오동나무, 휘가시나무, 소나무, 대나무 등의 소재별로, 또는 지역별로, 쓰임새별로 분류해서
전시하고 있다. 감나무는 강한 느낌을 주어서 남자 취향이며, 단풍나무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여성들이 선호했다.
가구 종류에는 옷장, 함, 뒤주, 약장, 책함, 관복장, 문갑, 찬장, 소반 등등이 있다. 전통 가구의 기본형은 사각함이다.
함의 문을 열면 반닫이가 되고 함을 위로 쌓으면 농이 된다.
관람하면서 내 눈에 특히 멋지게 보여진 가구는 감나무로 만든 장이었다. 감나무에 먹을 배게해서 불에 그을려 만든
나무를 먹감나무라고 한다. 이 먹감나무로 장을 만들면 산모양 무늬나 사람이 서있는 무늬를 낼 수 있다. 튼튼하면서도
아주 멋진 장이 된다.
가구는 사람과 공간의 크기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 방에서 팔 위치, 눈 높이, 창문 높이를 기준으로 좌식문화에 맞게
안성맞춤의 가구를 만들었다. 탁자는 방의 창 크기와 높이에 맟추었다.
오른쪽의 작고 동그란 통은 탕건통인데, 모자를 넣는 통이다.
함
관복장
뒤주
오동나무로 만든 책함. 책 크기대로 분리해서 이동하거나 담을 수 있다.
찬장
소반
사대부집 안채다. 안방 마님이 거주하는 곳으로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이다. 대감은 사랑채와 정자로 나갔다.
중정원. 궁의 가운데 정원이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뭔가 아쉬웠는데 박물관의 열려진 작은 옆문을 발견했다.
그 문 틈으로 다시 안을 사진에 담았다. 아주 마음에 드는 예쁜 사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