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째 바람이 게세게 분다. 창문이 큰 소리로 반응한다. 심술난 바람은 길 위의 나뭇잎을 멀리 던져버리는 것을 넘어서
남가주의 산과 들을 하얗게 만들고 있다. 재가 비처럼 하늘에서 내리고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 브라운 주지사는 또 한번
산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멀지않은 게티센타 미술관과 UCLA 대학까지 위협하고있다. LA 안방까지 산불이 넘나들고
있다."오~ 제발, 더 이상의 이재민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절로 기도가 튀어나온다. 알다시피 올해에는 너무 많은
큰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다. 벌써 한해의 막바지인 가느다란 선에 기대어 선 12월인데, 위태롭다. 아프다. 남은 시간은
깔끔하게 물러가면 좋겠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언제나 누군가를 공격하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피해의식에
혼란스럽다. 그런데 세밑의 산불마저 혼란스러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순식간에 한 해가 후다닥 거의 다 지나갔다. 이만 때면 스물스물 올라오는 '후회, 자책, ~했더라면'의 감상적인 뾰족한
손님도 부담스럽다. 12월의 남은 시간 만큼은 순하고 지순하면 한다. 애교까지 부려준다면 더할 나위도 없겠지만.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위하지만 별로 이룬 것 없는 한해다. 그렇다고 후회되는 일도 없다. 단지 '내 삶이지만
내 맘대로 되지않는다.'는 각성이 매서워서 아프다. 내 인생에는 현재 여러개의 변화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새해에는
식구 숫자도 늘고, 30년 이상 살아온 내 손때가 엄청 묻은 집을 옮길 것도 같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누르면서 그간
뿌듯함을 준 동네 주민회 이사직도 내놓았다. 또 5년 전부터 열심히 다녀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헬스센터가 12월 31일을 끝으로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미 새로운 곳을 탐색하고 있지만 여간 아쉬운 마음이 아니다.
가깝고 내 운동 수준에 적당하고 볼일을 볼 수 있는 마켓, 가게, 식당들로 무척 편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안주함없이 걸어가야만 하나보다.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말도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발생하는 일과에
적응하다보면 도태될 겨를이 없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걸어가야만 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친구는 남편과
이혼을 생각하고 집을 걸어나올 마음이다. 나는 "앞으로 가기 전에 지금의 자리 정돈을 먼저하라. 정돈해서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위치를 정립시키고 네 마음도 편하게 한 뒤에 결심을 하라. 그러는 과정 중에 다른 생각이 앞서서 잠시 뒤로
쳐지고 싶어지면 뭉기적거리면서 먼저 자신을 소중하게 돌보라. 그러면 후에 혼자서 고독이 가슴을 에이고 마음 아파도
후회를 적게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 친구는 "12월이 되니 더 아프다. 짜증도 더 심해진다."라고 푸념한다.
안쓰러운 한숨이 나온다. 마침표를 말끔하게 찍어야할 시간에 우리는 왜 더 크게 아파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12월이 아픈 시간만은 아니다. 가슴이 벅찬 감동의 물결에 몸이 뜨거워지는 순간도 많은 시간이다. 동네의 많은 집들이
화려하거나 앙증맞은 불빛으로 반짝인다. 특별히 반짝이는 집들 안에는 아이들이 살고있다. 아이가 없어도 반짝이는
집들의 주인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집 전체를 여러 색깔과 모양의 전구로 장식하는 것은 큰 정성을 요한다. 누구가를
기쁘게 해주려고, 또는 시간과 절기에 맞추어서 자신의 꿈을 캐려고 정성을 들인다. 성탄의 희망이 빛나듯이 그 불빛을
바라보는 구경꾼의 마음에도 고운 빛이 들어온다. 빛은 머리에서 부터 발끝까지 부활의 느낌을 주고 2017년 올해의
따뜻하고 기쁘고 감동적이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점화한다. 살아있음 자체가 빛이고 잊고싶은 시간은 검은 그림자가
아니라 오색의 영롱함이었음을 깨닫는다.
또 많은 이재민들이 생겨났다. 저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스쳐가고 무엇이 머물까? 분명 고통, 아픔, 망망함, 허망함이
자리잡을 것이다. 살면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이재민들이 굳건하게 살아나아가면 좋겠다. 12월의 세밑에서
혼란스러움에 어쩔줄 모르는 사람들도 그냥 걸어가면 좋겠다. 다가오는 여러 변화를 감당해야할 나도 차분하고 강건하게
한가지씩 풀어가면 좋겠다. 올해 못끝낸 커다란 문제 하나가 먼 산을 응시하게 하고 마음에 구멍을 뚫어도 다시 메꿀 수
있다는 깡끼를 구하고싶다.
내가 서있는 위태로운 12월 이 시간이, 내가 몸담은 이 곳이, 내가 고민하는 현안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살리고 있다. 혼자 살 수 없는 인생, 누구하고라도 엉키고 무엇에든지 겁없이 덤벼들면 좋겠다. 아픈 시간 12월아,
부디 더 이상의 불협화음을 만들지 말고 조용히 가라. 바람아, 너도 그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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