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93

12월 어느 날의 일상

오랜만에 동네 산보에 나섰다. 초록 색의 익숙한 동네 모습에서 '단풍나무 한 그루'가 훅하고 시야에 들어왔다. LA 의 12월 초 다운 듯하지만, 저물어 가는 가을을 약간 역행한 모습으로 서있는 나무였다. 눈이 부시도록 빨간 옷을 입고서. 다른 단풍 나무들은 잎이 바랬거나 대부분 떨어져 나간 마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 나무는 여전히 싱싱하고 통통하며, 잎들은 햇살을 받아 10대 처럼 반짝거렸다. 왠지 내 가슴에 밝은 기운이 차오르는 고무된 느낌이 일었다. 지난 달 한국 방문 때, 함박눈으로 온 거리와 빌딩, 자동차와 산과 나무들이 덮여 세상이 그토록 하얗 수 있다는 것을 - 수십년 동안 잃어버렸던 기억을 - 찾았던 것이 상기됐다. 도시 전체를 덮은 하얀 눈과 잿빛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얀 눈발과 극명하게..

My heartfelt story 2024.12.13

9월의 단상

아주 오래동안 블로그에 개인적 생각을 쓸 기분이 아니었다. 몇 년 전에 다움 블로그가 패쇠되고 티스토리 블로그로 자동 전환 되면서 글을 올릴 수 없었다. 내 블로그가 먹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지난 긴 시절 동안의 500개 가까운 글들은 인터넷 상 허공에 떠 있었을 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대한 마음을 접은 채로 몇 년을 지냈다. 아니, 블로그에 글을 올릴 시간이 충분치도, 마음의 준비도 안되어 편한 마음으로 블로그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내 컴푸터에 나의 지난 블로그가 문을 열었다. 왜 그 사이트가 갑자기 떴는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펼쳐진 지난 시절의 추억들에 놀라면서도 글을 올릴 수 있는지와 블로그 내에서 이것저것 움직일 수 있는 지를 시도해보았다..

My heartfelt story 2024.09.23

5월 아태문화유산의 달과 정체성

5월은 한국서는 가정의 달이다. 그런데 미국서는 아태문화유산(Asian Pacific Heritage Month)의 달이다. 아시아와 태평양계 미국인의 이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들의 희생과 미국 발전에의 공로를 기린다.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특별한 달을 맞이해 내가 겪은 4.29 폭동과 최근 큰 인기리에 상영된 드라마 ‘파친코’ 이야기로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을 사유하고 싶다. 4.29 폭동은 올해로 30주년이 됐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아시안의 이미지는 ‘조용하고, 성실하며,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소수인종’이다. 이런 관념 때문에 한인은 1992년 4.29 폭동의 희생양이 됐으며, 코로나19 발발 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쿵 플루” 한 마디에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가 339% 급증했고, 일본에서..

My heartfelt story 2022.05.23

여름날 그냥...

덥다! 여름이니까 더위는 당연한데도 그 느낌이 싫다. 그래서 그런가? 델타 코로나 변이로 요즘 매일 새 확진자들이 증가하는 뉴스에 코로나가 지겨워서인가?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에서 4주째 500백만 에이커를 태우고 있는 딕시산불( the Dixie Fire)이 이제 미국서 가장 큰 화재가 됐다. 더우기 주초에는 골드러시 때에 형성된 Greenville 마을을 초토화해서 오래된 건물과 역사가 잔재도 없이 벽돌 몇개만 남고 없어진 어이없음에서인가? 모든 이슈에서 대립이 첨예해서 답답하기만 한 정치 때문인가? 여전히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반대하고 등교시에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공화당 주지사들의 빤한 정치적 야심에 기가차서인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단순한 삶으로 판에 박힌 듯한 느낌에 지쳐서인가? 남..

My heartfelt story 2021.08.09

눈에 슈퍼글루를 넣다. 저런...

3주 전에 엄청난 실수를 했다. 건조한 눈에 안약을 넣는다는 것이 그만 성능 좋은 슈퍼글루를 넣었다. 그것도 아주 넉넉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집어들었지만 안약이 아니라는 생각은 1도 안했다. 책상 왼쪽 아래 나무 받침 위에 놓여진 사물 정돈함은 나의 컴퓨터 자판기 이용을 위해 최대한의 사용 면적을 위한 기발한 아니디어다. 여기에는 컴푸터 사용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들어있다. 연필, 가위, 색색의 마커들, 노트와 메모 종이,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와 아이패드가 있다. 안약과 슈퍼글루도 자리잡았다. 나는 고릴라표 수퍼글루의 팬이다. 언제 뚜껑을 열어도 뭉치지 않고 쉽게 흐른다. 또 성능이 좋아서 모든 물질들을 찰지게 붙일 수 있다. 덕분에 슈퍼글루가 귀한 사물함에 자리를 잡았다. 사이드 책상의 서..

My heartfelt story 2021.05.26

LA 산보길에 핀 화사한 봄꽃들

봄, 봄, 봄, 봄이 왔다. 나이드니 봄이 좋다. 언제나 변함없이 좋아하는 가을은 저만치에 있고, 봄이 곁에 와서 참 좋다. 파릇파릇한 잔디와 하얗고 파란 하늘 사이에 선명하고 밝은 색의 꽃들이 여기저기 지천이다. 나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 듯이 마음은 수줍어지고 가슴은 벅차오른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면 좀 길게 산보를 한다. 산보의 목표점은 먼저 살던 옛집과 바로 근처의 아들 집이다. 아들 집앞을 지나면 지금의 집이 있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거의 매번 거기서 한 블락 거리의 파머스 마켓에 들려서 빵과 과일을 사고, 스타벅스의 앱으로 미리 커피 주문을 한 후에 천천한 걸음으로 길건너 스타벅스 매장으로 향한다. 라치몬트 블락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산보..

My heartfelt story 2021.04.14

2020년 11월과의 이별

11월도 다 갔다.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미국의 최대 가족 명절로 감사의 날인 추수감사절도 지났다. 2020년은 "코로나19와 대선의 해"였다고 간단 명료하게 규정지어진다. 그 외의 수많은 작은 사건들과 무미건조한 일상은 두 단어에 깊숙이 묻혀버렸다. 정말 이상하고 유별한 한 해다. 이제는 성탄을 향한 걸음만이 남은 듯하다. 모두들 이상하고 믿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슈인 두 가지 측면에서 한 해의 삶을 조명하면 말이다. 기이하고 요상해서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기분이다. 바이러스와 트럼프 둘이 그렇게 느끼게 한다. 자칭 세계 최고 국가라는 미국에서 1400만명 정도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사망자가 27만명에 가깝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의료진과 의료 시설과 기술을 가진 미국인데, 세..

My heartfelt story 2020.11.30

6.25를 맞아서 그리운 아버지 삶을 되돌아보다

아버지! 언제 불러도 묵직하고 가슴에 와닿는 호칭입니다. 가진지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의 얼굴은 선명하고 목소리는 귓가에 생생하며 미소는 따스이 정이 넘칩니다. 올 해는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어서 한국 전쟁 이야기가 다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6.25 전쟁은 아버지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역사임을 압니다. 아버지, 지난 일요일은 미국의 아버지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시아버님 두 분을 떠올렸지요. 두 분 모두 제게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저는 아버지의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시아버님의 사랑은 삐딱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것을 고백하며, 아버지께 길고 긴 편지를 띄웁니다. 아버지, 수원의 부잣집 큰아들..

My heartfelt story 2020.06.25

[열린 광장]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아라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아라 [LA중앙일보] 발행 2020/02/03 미주판 24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HOME&source=&category=opinion&art_id=7989518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반복되는 말에 귀끝이 올라갔다. “무슨 일인데?”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리콥터 사고로 죽었대요. 이제 겨우 41살인데….” 식구들은 모두 놀라서 순간 말을 잃었다. 코비는 20년 동안 LA와 희로애락을 나눈 스포츠계의 영웅이자 이웃이었다. 농구의 전설인 그의 죽음은 생명의 덧없는 불가항력을 일깨운다. 코비는 연습광이자 혼을 쏟는 경기로 팬들에게 희열, 자긍심, 꿈과 영감을 주었다. 37세에 은퇴한 후로는 농구 꿈나..

My heartfelt story 202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