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심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작은 가지들이 서로 부딪친다. 누런 나무잎들이 무수히 땅에
내렸다. 늦가을 기분을 주는 LA 의 12월 말이다. 2018년은 심통을 부리며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 퇴장하려고 한다.
2018년 한 해의 끝에 서있음이 문득 아쉽다. 2018년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많았던 해다. 일 년을 살면서
답답함에 가슴을 쓸기도 했고, 분노로 떨기도 했고, 기대도 않던 결과에 흥분도 했으며, 쓸쓸한 마음으로 새벽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올해는 주변을 넘어 온 지구촌이 시끄러웠다. 자연 재해와 총기 사고, 편협적인 정치, 캐러밴
이민자 행렬, 아까운 못다핀 젊은 생들, 그리고 주식 시장 까지 끼어들어 세상을 흔들었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기쁨을
찿아낸다. 바람이 나무잎들을 춤추게 하듯이 삶은 나를 춤추게 만들었고 나는 기꺼이 춤을 추었다.
나이 한살이 더 드는 것이 아쉽다. 언제 부터 이랬는지? 마음은 아직 40대 라고 외쳐도 뼈속 까지 아님을 인정해야
했을 순간 부터였다. 아니 그 전부터 였다. 35세 까지는 사람들은 나를 Miss 로 보았었다. 그 후로는 남들과 같은
나이듦의 길을 걷고있다. 대신 마음을 채우려고 애쓴다. 마음이 채워지면 얼굴도 채워진다. 한 해를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 후회한들 바꾸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올 해 나를 채워주었던 것을 상기해서 덜 아쉬운 마음으로
새 해로 걸어가려고 한다. 두 팔 벌려 내년에도 마음을 열심히 채우고 싶다.
지난 일요일에 동네 근처의 the Grove 몰에 갔다. 별천지였다. 크리스마스와 년말을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했고 성탄
장식 전구들이 나무들에 빼곡하고 무수히 매달려서 아름다운 꿈동산을 연출했다. 그 곳에 가지 않았다면 밤만 되면
적막같은 LA 스러운 명절로만 지낼 뻔했다. 몰에는 크리스마스 날 까지 매일 저녁 7시와 8시에는 눈이 왔다. 덕분에
거의 모든 공간이 기다리는 인파로 매워졌다. 어른 아이 남녀노소 모두 기대감으로 눈이 빛났다. 몰 중앙의 분수대의
물줄기는 조명을 받으며 길게 춤을 추었다. 음악과 빛에 맞추어서 부드럽게 그루빙 (grooving)을 하면서 참을성있는
사람들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 나도 한 구퉁이를 비집고 자리잡았다. 그 작은 공간 주위의 낯선 얼굴들은 눈만
마주치면 행복한 인사를 건냈다. 따스한 미소들 틈에서 왠지모를 안도감이 올라왔다. 딱 5분 눈이 내렸다.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는 차가웠다. 가짜인데! 잘 왔다는 보람에 미소가 삐져나왔다.
올해 가장 아펐던 것은 30년 이상 살던 집, 미국 오자마자 마련한 집을 팔고 이사한 사실이다. 움직일 때가 되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생의 여정에서 쉼표 아닌 마침표를 찍었지만 마치 쉼표를
찍은양 애써 웃는 나를 발견했다. 다행인 것은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몇개월이 지나니까 '이왕
움직일 계획이었는데 내가 통제할 수 있을 때에 한 것이 옳았다.'란 마음이 커졌다. 또 옛날 동네만 최고 주거지인 줄
알았는데 지금 동네도 좋다는 새로운 발견을 했다. 이웃과 더 친밀하고, 동네가 안정감 있고, 일층집이어서 살기에
편하다. 집 앞 마당과 길가의 나무들이 옛집 마당과 동네의 나무들과 비슷하다는 친숙함이 위로가 되었다.
올해도 좋아하는 운동을 열심히 했다. 6년을 다녔던 피트니스 센타가 문을 닫아서 난감했었다. 회원들이 대부분
움직인 센타로 따라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남의 집 같이 어설프지도 않다. 그룹 운동 클래스도 다양해서
이것저것 고를 수 있어서 좋다. 빠르게 흐르는 음악에 맞추는 줌바, 매트 위에서 몸을 피는 요가, 배 근육을 강화하는
필라테스, 기운을 다빼는 cardio core 클래스를 한다. 재미있고 행복하다. 꾸준히 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일 월에 딸이 아들을 낳아서 식구가 늘었다. 손자만 셋이다. 오빠인 아들은 아들만 둘을 두었다. 큰 손자가 9월에
킨더가든에 입학했다. 나의 아들과 딸이 다녔던 학교에 입학했다. 아들과 손자가 동문이 되서 기뻤다! 내가 엄마로서
갔었던 학교를 할머니가 되어서 grandparents day (할아버지, 할머니날)에 참석하니까 감개무량했다. 부모로 학교에
갈 때도 내가 가장 젊은 엄마 축에 들었는데 할머니가 되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도시의 미국 사람들은 결혼을 늦게하는
것 같다. 손자만 셋이라서 모이면 정신없지만 셋이 각자 다 예쁘다. 서로 다른 특징이 있고 재능있다. 혹 무심 무상할
나이에 손자들 덕분에 많이 웃고, 머리쓰고, 많이 움직이고, 잊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서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자식보다 손자들이 더 예쁘다는 말은 진리다.
가끔 피아노를 두들기면 기분이 좋아진다. 실력은 없어서 듣는 이의 귀에는 미안하지만 내 기분은 차분해진다. 리듬을
맟추려고 애쓰는 편이다. 박자가 정확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래식보다는 가벼운 노래와 듣기 편한 음악을 친다.
건반이 만드는 가벼운 선율은 기쁨이 되어서 나를 승화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데 정신이 팔려서 포스팅을 못해도 시간은 흐른다. 후에
지나간 시간과 사건을 떠올리면 앞뒤 순서는 햇갈리고 내용은 흐려져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면 남는 것이 있어서
좋다. 일기는 아니지만 일기를 쓰는 기분이다. 내가 알고 싶고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것을 좀 더 알 수 있어서 좋다.
한 달에 두번 포스팅이 나의 목표다. 이 외에도 LA 한인 신문에 기고를 한다. 이것은 작은 일탈이다.
엄마와 한국 방문 중에 함께한 시간이 새록새록하다.
나는 매주 토요일 저녁 시간을 정해놓고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목소리를 들으며 한국서 만났던
엄마의 표정과 버릇을 떠올린다. 엄마에 대한 기억 중에서 가장 뜨끈한 것들이다. 치매 때문에 무표정하시지만
움직임은 내 말을 이해한다고 전달하고 싶어하심을 느낀다. 엄마를 읽을 수 있다는 기쁨이 크다. 전화 대화의
분위기는 매 주 다르다. 어느 날은 대답과 반응을 아주 잘 하시고 어느 날은 전화기를 그냥 놓아 버리신다. 강하고
불평이 많았던 분이 부드럽고 긍정적으로 바뀌셨다. 칭찬해드리면 깔깔거리신다. 우리는 통화 중에 노래를 한다.
어린이 동요와 옛날 노래들이지만 노래로 엄마와 딸은 마음을 나눈다. 오래오래 뵙고 대화하고 같이 노래하고 싶다.
이 외에도 책을 읽고 가슴이 따뜻했던 것, 애들이 대견해서 뿌듯했던 일, 손자의 미소에 녹아버린 일, 새 아이폰을
장만한 것,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LA 공항서 기다리면서 흥분하던 일, 보고싶은 한국 친구를 만날 때, 유명 식당의
맛있는 음식에 빠졌던 것, 내가 담근 김치를 자화자찬 했던 일 (잘 일어나지 않은 일이어서), 직장서 늦게 돌아온 딸이
저녁을 맞있게 먹을 때, 옛날 직장 동료의 따뜻한 연락, 등등 정말 너무도 많은 것들이 나를 채워주었다.
채운 가슴에 바늘 구멍이 나지 않도록 애써야겠다. 정말 2018년에 마음을 많이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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