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내 인생의 11월이 오면...그리고 사랑

rejungna 2008. 11. 13. 08:56

11월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새로운 절기의 시작도 아니어서 별로 눈에 띄지않는 달(month)이지만 11월은 나를 멈추게 하는 특별한 힘을 지닌 시간이다.

우리는 일 년이라는 통 속에 365개의 날(day)들을 집어놓고 12개로 나누어서 달(month) 이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며 산다.

순서대로 이름이 붙여진 12개 중에서 제일 마지막 두번째인 11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침표를 찍기 전에 숨을 고르고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30일 간의 작은 상자이다.

 

11월이 되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약간은 조급해진다.

11월이 되면 사람이 더 그리워지고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인생 길의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11월이 되면 지나온 삶의 다양했던 단면들이 떠오르면서 감사할 것이 많다는 자각도 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LA 는 특수한 날씨 탓에 11월이건만 군데군데 서있는 낙엽수를 제외하고는 마냥 푸르기만하다.

일년 내내 푸른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은 때마다 다르긴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짙은 초록색이 버겁게 느껴진다.

때가 되면 다 털어내야 시원하건만, 언제나 변함없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무거울까 하는 애처러움마저 든다.

훌훌털어버리고 새처럼 가볍게 날아가고 싶을 때도 있으련만...

 

 

후에 내 인생에도 11월이 오면, 나는 두 눈을 감고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나에게 물어 볼 것이다.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마음껏 사랑했었느냐고 물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었느냐고 물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었는 지를 물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아떤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는 지를 물을 것이다.

 

모범 답안을 알고 있지만, 그 때에는 어떤 답을 어떤 마음으로 할까!

 

 

동네 산보 길에 만난 탐스러운 11월의 빨간 장미 한 송이 쇠울타리 틈 밖으로 삐죽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처럼 내 마음 속 공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수 많은 기억들은 수시로 고개를 들고 머리 속으로 뛰어 오르려고 한다.

한 해가 끝나기 전인 11월은  지워지기를 원치 않는 한 해의 기억들이 편해지도록 인정해주고 보듬어주는 달이다.

그리고, 아무 때나 튀어나와서 큰 목소리로 지금 현재의 소중한 순간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자기 자리를 알려 줄 때다.

밝은 기억과 침울한 기억, 행복한 기억과 아팠던 기억, 빨간 색의 기억과 파란 색의 기억, 의미심장한 기억과 보잘 것 없는 기억...

이 모든 것들은 똑같이 소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에게 머리의 뒷편이거나 가슴 속의 한켠이거나 제 자리를 정해 주어서 자기의 위치를 알게 할 때이다.

 

옛날에 솔로몬 왕이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현자(the wise man) 을 불러서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현자는 왕과 함께 오랫동안 명상을 한 후에 왕에게 "This too shall pass" 라고 새긴 반지를 만들라고 조언을 했다.

왕은 이 뒤 부터 항상 이 반지를 지니면서 슬프거니 우울해지면 반지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리로 "This too shall pass"

(이 것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 고 말하니 우울증도 없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이 솔로몬 왕의 반지 이야기는 1859 년에 링컨 대통령이 연설에 인용함으로써 유명해졌다고 한다.

11월은 "This too shall pass." 를 다시 음미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은 지나가는 인생과 역사 흐름을 표시를 하는 작은 단위이다.

결국은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도 지나가는 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 기억들도, 내 소유물도, 모든 것들은 나의 인생과 함께 흘러가버린다.

그 마무리하기 전의 시간인 11월, 인생과 한 해의11월은 12월의 슬픔이 더 크지 않도록 마음을 조율하는 때이다.

 

이런 안타까움을 주는 시간의 흐름이기에 과거와 미래는 오늘의 현재로 모아진다.

지나간 시간은 기억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다.

그 미래가 현재가 되어서 내 곁에 있을 때에만 시간은 나에게 의미를 준다. 

 

가는 시간을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을 갖고 11월이 가기 전에 이 아쉬움을 채워 줄 수있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랑을 그려본다.  

사랑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

삶과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삶은 거칠어지지 않고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사랑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며, 사랑은 제 몫을 다 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삶이 필요하다.

 

11월의 작은 상자 안에 묵묵히 서서 큰 붓으로 짙게 사랑을 칠해 내 삶 안으로 던진다.

만족할 만큼 충분하게 사랑으로 삶을 적셔서 인생의 11월을 여유있게 받아들이기를 희망하면서

고독함을 느끼기엔 너무나도 진한 빨간 빛의 사랑을 던진다. 

그리곤, 지나간 기억들이 제 자리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자리 밖으로 튀어나오고 싶어하는 욕망을 부담없이 받아들인다.

 


어려서 발레리나나 스케이트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또 용기와 재주가 없어서 이 꿈은 피기도 전에 일찍 내 가슴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지금도 그들이 움직이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동경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에 내 그림은 항상 교실 벽 뒤에 걸렸었고 나는 그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에 내 그림을 걸 액자를 사게 엄마를 학교로 오시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웬지 그림에 흥미를 잃었다. 그 뒤로의 나의 그림은 내가 봐도 유년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솜씨이다.

이제 나는 감상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딸은 미술과 미술적 감각에 특별한 재능을 가져서 너무 좋다.

  

언제 봐도 귀여운 Peter Pan 동화에 나오는 장난 꾸러기 요정 Tinker Bell!


오랫동안 나는 동화 속의 인물 누구 보다도 이 팅커벨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멋진 왕비도 아니었고 잘생긴 왕자님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예쁘고 착한 공주님도 아니었다.

금빛 가루를 뿌리면서 마음대로 날라다니는, 성질도 부리고 친절하기도 한 팅커벨 같은 요정이고 싶었다.

 

LA 의 Hollywood Bowl 야외 음악당이다.


1922년 부터 여름 밤마다 이 자연의 멋진 음악당에서는 갖가지의 예술 공연이 열리며

사람들은 공연 관람 전에 가져온 피크닉 음식을 자연을 벗삼아 적당한 장소에서 저녁으로 먹는다.

공연이 끝나면 불꽃놀이를 하는데, 미국에 와서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익숙해진 광경이지만... 아~~~ 아름다운 그 시절이여! 그 감동이여!

  

 쫀득쫀득한 치즈, 양파와 바게트 빵 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내는 onion soup 이다.


마음 아프게도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마음이 넓고 통이 큰 대학 선배 언니 한 분이 있었다. 아주 단란한 가정을 이루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40 의 중년을 갖 넘긴 형부가 자신의 인생을 찿겠다며 집을 나갔다. 어린 남매까지도 남겨 두고. 설명도 없이.

말할 수 없이 험한 고생을 다한 10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갑자기 돌아온 남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들 아빠라는 이유로

받아들인 언니와 나는 가끔 이 양파 수프를 즐기곤 했었다. 그리곤 언니는 나와도 연락을 끊고 이사를 가버렸다.

양파 스푸만 보면 그 언니 생각이 난다. 어디서 잘 살고 계실 것이라고 믿으면서...

 


11월이 오면 따뜻한 차 한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가진 인생을 살고 싶다. 

함께한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 속에는 상대의 마음이 녹아있을 것 같다.

 

오래되어서 성장이 중지되버린 철쭉 대신에 iceburg 라는 하얀 장미 계통의 꽃을 3 년 전 쯤에 집 앞에 심었다. 

첫 해가 지나고 봄에 만발한 장미가 너무도 고마웠다. 함께 한 컷을... ㅎㅎ

내 인생의 11월이 올 때까지 5월의 장미향 속에서 짓는 웃음과 같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살고프다.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던 아버지가 나에게 가장 많이 불러주셨던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