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딸과 릴리(Lily)-다시 찿은 개

rejungna 2010. 4. 11. 00:25

두 주 전에 우리 집 새식구인 릴리를 잃어버렸었다!

릴리(Lily)는 10개월된 miniature australian shepard(미니아쳐 오스트리안 세파트) 개로 딸아이에게는 보물 일호이다.

딸은 아침에 마지못해 출근은 했지만 전화를 통해서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한다. 지치고 가라앉은 애처러운 모습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저음으로 이메일에서 자기가 만든 flyer(전단지)를 다운하고 여러 장을 칼라 프린팅해서 집동네 상가의 배글집과 커피집 그리고

동네 게시판에 붙여달라고 부탁한다. 눈이 퉁퉁부은 딸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지고 너무도 놀란 탓인지 그녀의 말의 의미는

아주 천천히 내 머리에 인지되고 이해되었다.

 

 

간밤에 릴리를 잃어버렸다고? 산보를 나갔다가? 개끈을 풀어주었다고? 그래서 밤길을 누비며 찿아다녔다고? LA의 밤길을?

 

입양한지 겨우 3개월된 귀먹어리 릴리를 잃어버렸으니 개가 혼자서 집을 찿아오기는 틀렸다. 어떤 방법으로 찿을 수 있을지

참으로 난감했다. 어디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거나 누군가가 발견해서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아침과 저녁에 지극 정성으로 

릴리의 대소변을 해결해주는 딸이 저녁에 산보를 데리고 나갔다가 개가 너무 예쁜 나머지, 좋아서 펄펄 뛰는 모습이 대견해서

릴리의 귀가 들리지 않으므로 집밖에서는 절대로 개줄을 풀어주면 않된다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고 자신의 아파트

바로 앞에서 목끈을 풀어주었다. 이에 반사적으로 릴리는 앞으로 미친 듯이 달리다가 왼쪽 큰길로 방향을 틀었고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신이 나가서 개 뒤를 뒤쫓던 딸은 어느 방향으로 갈줄을 몰라 당황해서 무작정 동네의 많은 블락을 걷고

또 걸었다. 듣지를 못하니 이름을 불러도 들을 수 없는 릴리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띄이도록 집 주위의 블락을 돌고 또 돌았다.

 

다 큰 아가씨가 겁도 없이 LA 의 밤길을 몇시간 동안 헤매었다니... 

그것도 정신이 나간 채로. 아무리 늦은 밤이지만 긴급 상황인데 엄마에게 연락도 않고. 도움도 청하지 않고...

이렇게 아침에 무사하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것만도 고마왔다.

 

릴리는 딸의 손길로 인해서 조금씩 정상으로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개다. 인터넷으로 개장사를 하는 전 주인 집에 태어나서 5개월

동안 학대받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동물 보호소에 넘겨졌는데, 상처받은 나쁜 기억 때문에 특히 키가 큰 검은 머리의 남자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나는 릴리를 걱정하기에 앞서 내 딸이 더 걱정되었다. 그래도 책임감은 있어서 일단 출근을 하였다니 다행이다.  

그리곤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한 모양이다. 마침 그 주에 대학원 봄방학을 한 친구가 시간이 있다고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나와

그 친구는 각자 따로 전단지를 인쇄했다. 딸이 만든 전단지에는 찿아주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750이 걸려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좀 많다고 생각했다. 전화로 내 마음을 꿰뚫은 딸은 $1,000을 걸고 싶었지만 직장 친구가 너무 많다고 해서 그 것으로 정했다고

한다. 자기가 벌은 돈인데 내가 무어라고 할 수 있겠어... 딸에게는 최고의 비상시인데...

 

동네 사람들과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스튜디오의 영화계 사람들의 점심식사로 붐비는 Larchmont Village(라치몬트 빌리지)를 향해 

걸어갔다. 초조함 때문인지 머리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빛 때문인지 콧등에 땀방울이 배어나왔다. 그리곤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릴리를 찿지 못하면 어떡하지? 지독히 겁많은 개는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며 딸의 마음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을까?

엄마로서 무슨 말을 해주어야 위로를 주고 상실감을 잘 넘길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도 아닌데 정신차리라고 해야할까?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다른 개를 입양하라고 할까? 개는 얼마든지 있다고 할까? 곧 찿게될터이니 걱정말라고 헛 희망이라도 주면서

고무시켜야 할까? 아니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릴리를 포기하라고 말할까? 인생에서 개를 잃어버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까? 그러면 화를 내면서 무슨 엄마가 그러냐고 하면 어떡하지?

 

머리 속은 자꾸 튀어오르는 생각으로 잔뜩 물건을 쌓아둔 창고같았지만 그 많은 것 중에서 알맞은 물건 한개도 골라내지 못하는

무기능의 상태였다. 그러나 나의 발걸음과 손길은 빠르고 부지런하게 배글집과 커피집의 게시판 위에 그리고 길가의 전봇대와

나무들 위에서 움직였다. 여러장을 붙이면서 점점 요령까지 터득하고 있었다.

 

 

릴리는 올 1월 말에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돈도 벌고 승진도 하면서 독립을 선언한 딸이 제일 먼저 한 것이 개의 입양이었다.

딸은 새 식구 릴리를 입양하면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아파트를 얻어서 나갔다. 오빠가 여름에 집으로 들어오면 그 때에는

자신이 독립을 하겠다고 오빠와 약속을 했었는데, 경기 불황 때문에 아주 좋은 아파트가 좋은 가격으로 나온 바람에 계획을

앞당겨서 이사나간다고 했다.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왜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능력만 있으면 자립해서 살려는 꿈을 가질까?

결혼 전까지 부모 집에 살면 아파트 집세를 낼 돈을 모아 큰 자금을 모을 수 있을 터인데. 공짜로 먹고 빨래도 해주어서 여행도 갈 수

있고 사고 싶은 물건들도 여유롭게 구입힐 수도 있는데...

슬픈 마음으로 딸이 얻은 집을 방문해보니 정말로 위치도 좋고 안도 넓찍해서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해서 큰 집에 다시

남편과 둘만 남게 되었다. 애들이 모두 동부로 대학을 갔을 때 처럼... 어쩌면 이것이 단촐한 나의 남은 인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딸이 이사나가기 전 한달 이상을 말없이 인터넷을 탐색하고 동물보호소를 방문하면서 입양한 개가 릴리였다.

miniature australian shepard(미니아쳐 오스트리안 세파트) 품종은 덩치가 크고 넓은 초원에서 양을 모는 양치기개(shepard)인

오스트리아 쉐퍼드(australian shepard)를 도시생활에 맞도록 인위적인 교배 방법으로 덩치를 줄여놓은 개다. 인위적으로

교배시키다보니 종종 염색체의 이상 배열로 눈을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개가 태어난다고 한다. 얼굴 눈 주위와 엉덩이에

검은색이나 밤색이 있어야 눈도 보고 귀도 들리는 정상의 개인데, 그 부분들이 하얀색으로 태어나면 불구의 개로 인정되어 죽인다고

한다. 그런데 릴리는 얼굴 부위는 하얗고 엉덩이에만 커다란 밤색의 반점을 갖고있다. 이 품종은 영특하고 분주해서 주로 애들의

놀이 동무나 어른의 길잡이로, 또는 사고 시의 구조대원으로 훈련되어지며, 몸이 재고 운동을 좋아해서 열심히 운동을 시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입양 과정은 간단하지 않아서 동물보호국에 제출하는 서류가 많고 경비가 좀 든다.

보호국(animal rescue center)은 신청자의 인적 사항, 성격과 취향까지 세밀히 조사해서 신청자와 원하는 개가 서로 맞는지를

심사한다. 입양 결정도 빨리 내려주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개 입장을 대변하는 듯이 심사숙고를 한다. 가끔은 입양자들에게

결격 사유 판정도 내린다. 

 

                                     

(왼쪽의 정상적인 미니아쳐 오스트랄리안 쉐퍼드는 눈 주위와 엉덩이에 커다란 검은 반점을 갖고 있지만

릴리는 얼굴 전체가 하얗고 엉덩이 부근에만 커다란 밤색의 반점이 있다.)

 

나는 딸이 독립을 해서 허전한 마음을 새식구 하나가 는다는 기대감으로 채우려는 듯이 잔득 부풀은 마음으로, 마치 또 다른

자식을 만난다는 심정으로 릴리라는 개를 기다렸다. 하지만, 처음에 릴리를 보고 무척 놀랬다. 엉뚱하게도 귀가 들리지 않는

개에다가, 내가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렸던 친근하고 귀여운 모양새가 아니었다. 집안에서 키우기에는 덩치도 크고, 털도 길고,

서양인처럼 눈은 파래서 왠지 섬듯한 마음이 들었으며, 눈 가장자리에는 핑크 색깔의 동그라미가 있어 너무도 낯설은 이방인 같이 

보였고, 검은 색 코의 중간은 다쳐서 피부가 까진 것 처럼 핑크 색이 가로질러 나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릴리는 어찌나 낯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는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뒷걸음질을 했고 머리 한번 쓰다듬는 기회잡기도 너무 어려웠다.

 

주말마다 딸은 운동삼아 걸어서 또는 차를 타고 릴리를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단골손님 처럼 여겨졌다. 어딘지 적응이 않되었다.

마당에서 진돗개만 키워본 나는 집안에서 개가 왔다갔다 하는 것도, 간혹 날리는 털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딸에게 하듯이

딸이 릴리를 대하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기특하기도 했고 섭섭하기도 했다. 둘의 서로 아끼는 마음과 점점 깊어만가는 관계가

눈에 띄게 도드라져 갔다. 딸이 잠깐 자리를 비워도 릴리는 안절부절 한다. 딸이 릴리에게 사랑을 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행복해졌다. 아직 어리고 듣지 못하는 개를 기른다는 것은 참으로 인내가 필요한 듯했다.

 

딸에게 소중하면 나에게도 소중한 것!

그리고 털이 길어서 기관지 걱정하는 엄마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서 딸은 릴리의 털까지 짧게 깎아 주었다.

그 잠꾸러기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릴리의 대소변을 해결해주고 다시 잠을 잠깐 더 청하고 다시 또 일어나서 출근한다.

책임감을 갖고 개를 돌보는 모습에 걱정도 되지만 혼자 사는 것 보다는 서로 의지가 되니 안심하는 마음도 든다. 귀가 들리는

개라면 더 마음이 놓일 터인데... 주인을 그렇게도 따르는 릴리가 고맙기까지 하였다. 누군가를, 그 대상이 비록 동물일지라도

사랑을 주고 정성을 쏟고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아주 커다란 선물이다.

 

(릴리의 털이 깎아진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ㅎㅎㅎ)

 

우리는 온갖 노력으로 릴리를 이틀 후에 찿았다. 나보다 더 열심히 발품을 팔아준 친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뿌린 전단지 덕분이었다.

전단지를 본 어떤 부인이 아침에 개를 끌고 산보하던 중에 딸의 아파트에서 세블럭 떨어진 길가에 앉아 있는 릴리를 보았다고 했다.

그 곳에 달려가보니 릴리는 춥고 배고팠는지 남의 집 쓰레기 통을 쓰러뜨리고 기어들어 가서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서는 겁에 질려 으르렁대었다. 이것이 릴리가 무서움을 표현하는 한 방편인지 알고있다. 곧 딸을 본 릴리는 미처 쓰레기통에서

빠져나오기도 전부터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 긴 혀로 딸을 계속 할트려고 했다.

이 순간 나는 릴리가 전주인이 주었던 어두운 상처의 많은 부분을 딸의 사랑으로 덮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아, 나도 너 많이 사랑해!

릴리야, 나도 너 많이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