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 첫날을 맞은지도 벌써 며칠이 되었다. 참 하루가 빨리도 가버린다!
식구와 친척들이 함께하는 조상들을 위한 연도, 세배, 윷놀이를 위해서 풍성한 저녁상 차리기를 했던 신년 모임도 무사히 마쳤다.
며칠 힘은 들었지만 머리 큰 녀석들이 세뱃돈을 받고 좋아하던 모습만 생각해도 즐겁고도 의미있는 날이었다.ㅜㅜㅜ
항상 너무 짧은 듯한 가버린 해를 돌아보면서 새로 시작하는 2010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의 생에서 의미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한 해를 의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
우연히 컴푸타에 저장해 두었던 두 편의 시를 다시 만났다. 김남조 시인의 "편지"와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었다.
그 시들을 다시 읽는 순간 왠지 가슴이 아리고 뭔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강한 향수가 나의 영혼을 건드린 느낌이 들었다.
시인들은 어찌 정막한 태고처럼 눈덮인 마음 캠퍼스에 혼을 깨우는 듯한 강한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길 수 있는 재능을 가졌을까?
편지
by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 쓰면 한 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영롱한 거울 같은 그대여! 그대가 있어서 나는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쓴 편지를 부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아는 그대는
내가 쓴 편지의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 생각만 해도 내 눈에 눈물이 고이게 만드는 그대! 매일 내 마음을 전하는 그대이다.
"... 오,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라고 노래하던 김남조 시인의 사랑이
이 시에서도 그대로 녹아있다. 사랑은 외로운 것지만 진정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고 성숙하게 만드는가 보다!
행복
by 유 치 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시인은 1947년 부터 사고로 돌아가셨던 해인 1967년까지 20년간 이영도 시조시인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윤리와 도리를 따른 먼 발치의 사랑이었지만, 남겨진 편지 덕분에 한국 근대사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아있는 두 사람의 사랑이다.
먼길을 한걸음에 달려와서는 얼굴만 보고 돌아섰다는 유치환 시인이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 보다 더 행복하므로 이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사랑했기에 진정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주는 것은 받는 것 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지만 이런 사랑에 평범한 우리네는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스런 보라빛 꽃잎을 가진 꽃의 꿀은 벌의 파라다이스이며, 꽃은 찿아주는 벌 덕분에 생의 의미를 더한다.
꽃과 벌은 마치 유치환의" 행복" 시의 애틋한 연분 같은 느낌을 준다. 꿀이 다하면 꽃은 시드니까.)
지상에서 숨쉬었던 시간이 길어질 수록, 다시 넘겨볼 수있는 기억책이 두꺼워질 수록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많은 이들이 엄청 힘들었다고 외치던 해를 보낸 탓인지 왠지 희망 두 글자를 문 앞에 걸어놓고 2010년을 바삐 살고 싶다.
며칠 전에 어는 분이 나에게 새해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얼떨결에 한 대답이 "좀 더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였다.
그 분의 답인 즉, "참 평범한 것이네!"
평범한 새해 소원을 꿈꾸어서 한편으론 다행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생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12월 31일 마지막 날에 컴퓨타에 적었던 새해 소망의 일번은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였었다. 자주 아픈 사람이니까.
둘째는 빛과 소금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는 희망이었다. 빛이란 함께하면 편한 사람이고 싶다는 뜻이고,
소금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셋째 소망은 소중한 사람들의 바램과 계획이 꼭 성취 되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는 긴 하루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보내고 무엇으로 엄마와 아버지를 기쁘게 할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였었다.
대학을 갖 졸업했던 나이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궁금해 했었다.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는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모여서 일년이 되고, 일년이 모여서
10년이 획 자나가고, 그 10년은 세월의 보따리가 되었고, 지금은 중년의 아줌마로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나이따라 생각이 변하고 인생이 변하는 것을 실감한다. 날씬한 종아리보다 내 몸의 체중을 받쳐줄 수 있는 알통 다리를 더 아름답게
보는 나이가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필요한 돈, 가끔은 정신적 여유를 부려볼 수 있는 여력. 잘 자란 자식과 안식처가 되는 집,
시간에 쫒기지 않고 인생을 살 수 있는 은혜까지 받았다면 도를 넘는 사치를 향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를 뒤돌아 보거나, 지금 고개를 돌려 남들의 인생을 슬쩍 넘겨보거나, 계획한 미래를 꿈꾸는 인생 구상을 해본다면,
삶의 의미는 역시 누군가와 여백있는 관계 형성에서 가장 빛나는 것 같다. 관계가 사랑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무관없다.
단순하게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이도 좋다. 사랑의 대상을 열심히 찿거나 또는 지키려는 노력, 때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용기... 이 모두는 관계라는 network를 만들어낸다.
함께 나누는 평행적(parallel) 관계와 더불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관조(reflection) 관계를 향유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향기롭고 풍요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버린 자식에게 뜻하지 않은 설교를 듣기도 하고,
옛친구와 긴 이야기로 밤을 지새기도 하고, 남편과 영화 한편을 보려고 사람들로 붐비는 몰(mall)을 찿기도 하고, 한국에 계신
연로한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드리고, 멀리있는 친구를 그리며 마음으로 메일을 쓰는 것은...
생에 의미를 더해주고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리라. 튼튼한 관계가 성장을 돕고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부각시켜 주기 때문이다.
육체를 반듯히하고 영혼을 가꾸려고 애쓰다보면 여지껏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슴에서 사랑의 노래가 쏟아지고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더 편해지면 많은 것들을 부담없이 흘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무엇을 택해도 기쁜 마음으로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쓰던 물건이나 일도 인연이 다하면 잃어버리거나 더 이상 그 것을
못하게 된다고 한다.
새해에는 주고 치우고 비워서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작은 일에 정성을 기울여 관계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한다면 생의 의미를 더 발견 할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하지만 작고 진정한 생의 의미를! 비록 시인들 처럼 가슴 적시게 표현하지는 못해도.
(다 비운 후에 가면 행복한 곳, 누구나 결국은 가야할 곳, 누을 만큼만의 자리를 차지하는 곳이다.
이것도 생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까?)
'My heartfelt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사의 고통과 죽음-최인호 "산중일기" (0) | 2010.07.02 |
---|---|
딸과 릴리(Lily)-다시 찿은 개 (0) | 2010.04.11 |
My Father, Man of Principles(3)-나의 아버지(3) (0) | 2009.10.01 |
My Father, Man of Principles(2)-나의 아버지(2) (0) | 2009.09.24 |
My Father, Man of Principles(1)-나의 아버지(1) (0) | 2009.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