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순에 Palm Springs (팜스프링스)로 일박이일 여행을 다녀왔다.
벌써 몇 번 째의 팜스프링스 나드리인지 모르지만, LA에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와 도시가 품은
대자연과 안락함이 좋아서 항상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향한다.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는 사막의 한 가운데에 조성된
도시의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겨울, 지금이 최적이다.
팜스프링스의 아침이다. 성당 미사 참석을 위해 일찍 일어나 걸었다. 조용한 거리와 공기가 참 상쾌했다.
도시는 산과 손을 잡고 있다. 바로 거기가 산이고, 여기가 가게들이고, 눈에 익은 식당들이고 쾌적한 숙소들이다.
마치 산 속 마을에 잠시 멈추어선 착각을 준다.
다운타운만 벗어나면 주변은 온통 사막이다. 평화롭고 건조하지만 지루하지않은 풍경이다.
이 번 방문의 주안점은 팜스트링스 주변의 산과 계곡의 쉬운 등산로를 걷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팜스프링스에 돌산과 계곡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도시 주변에는 카후일라 인디안들이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들이 생활하던 흔적와 집, 계곡들을 돌아볼 수 있는 등산로가 많다. 인디언들이 걷던 길들을 현대인들도
걷는 것이 신기하다.
인디안 케년의 '안드레아스 케년 등산로' 표지판이다. 트레일을 걷다보면 심신이 안정된다. 강력 추천!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Indian Canyons (인디언 케년스)로 향했다. 입구부터 전망이 좋아서 가슴이 뛰었다.
이 곳은 유료 공원인데 천혜의 자연을 자연스럽게 잘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캐년의 여러 등산로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물도 흐르고, 듬직한 바위가 많은 Andreas Canyon Trail (안드레아스 케년 트레일)을 먼저 걸었다.
이 등산로는 1 마일의 짧은 거리이며, 정상에 오르면 돌아서 다른 길로 내려오게 되어있다. 좁은 흙길과 바위틈을 따라
걸으면서 거대한 돌과 시냇물과 수북한 인상의 팜트리을 자주 만난다. 인디안들 처럼 산과 계곡과 사막식물을 가로질러
오르고내린다. 걸으면서 멋진 주변과 잊고살던 자연적 풍경 덕분에 신선함이 가슴을 찌른다. 갑자기 엔돌핀이 돌았다.
하산 길은 올라가는 길과 달리 산보다는 사막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가도가도 구릉과 메마른 땅에 보이는 것은
사막 식물뿐이었다. 아주 먼 길이었다면 조금은 겁나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내려왔다. 트레일 자체가 길지 않으니까.
산 정상에서 부터 흐르는 듯한 시냇물이 한국의 아기자기한 산 골짜기를 연상하게 했다. 물이 있어서 등산로를 따라서
자라는 팜트리가 인상적이다. 가늘고 긴 통념적인 팜트리 대신에 아름드리로 두껍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 나무 잎을
인위적으로 잘라주지도 않고 바람도 크게 불지않아 오래된 마른 누런 잎들이 털복숭아 처럼 나무 줄기를 길게 덮은 채로
땅에 질질 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들은 등치가 워낙 커서 rock 이라기 보다는 bolder (보울더)들이다. 커다란 바위 옆을 간신히 지나는,
또는 그 틈새를 가로지르는 등산로는 등산객에게 성취감을 준다. 하지만 이 트레일은 등산이라는 단어보다는
'산을 오른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도의 짧은 거리다. 그래서 부담감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여러 사진들 중에서 윗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어느 한국의 강원도 산에 온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낯설지않아 가슴이 촉촉해진다. 단풍과 바위는 언제나 멋진
콤비를 형성한다. 팜스프링스에서 단풍을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다.
안드레아스 등산로의 하산길이다. (사진)
트레일 정상은 더 올라가야 하는데 철조망이 멈추게 한다. 해가 조금 서쪽으로 기운 탓에 산에 드려진 어두움이
인상적이다. 막막해 보이는 이런 길이 길다면 공연히 목이 마르고 긴장하겠지만 그리 오래 걷지 않아서 갑자기
주차장이 나오는 것이 싱겁다. 여전히 깊은 산중인줄 알았는데...
윗 사진은 두 번째로 걸었던 Murray Canyon (머레이케년)의 Murray Trail (머레이 크레일) 표지판이다.
머레이 등산로는 가파른 산길 보다는 들길과 언덕길을 걷는다. 나무도 없는 메마른 길인데 말을 타고 걷기도
해서 길에는 곳곳에 말똥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한참을 걸어도 끝을 알 수 없어서 이미 걷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트레일이 상당히 길며 조금 더 걸어가면 팜트리와 시냇물이 나오는데 거기까지만 가면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귀환점은 팜트리를 만나는 지점이 되었다.
따각따각 말이 걷는 소리가 들리는 길이다. 사막을 구경하기에 안성맞춤 길이다.
반환점! 드디어 초록의 팜프리 군단이 나오고 그 아래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돌아갈 수 있어서 반가웠다.
팜스프링스의 다운타운으로 들어와서 호텔 the Rewan 에 짐을 풀었다. 안락하고 차분했다.
숙소는 다운타운의 호텔 The Rowan (더 로완)이었는데, 부띠크 호텔 분위기가 지닌 세련됨을 자랑한다.
주말 저녁 5~7 사이에 제공되는 공짜 맥주와 와인 덕분에 상큼한 호텔 로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사람 구경하는
맛이 새롭다. 아침에는 공짜 커피와 코코아, 우유와 차 냄새가 로비를 오가는 여행객에게 기분좋음을 선사했다.
museum trailhead 등산로다. 어느 아저씨가 등산하기 전에 물품과 장비를 재정비를 하고 있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오전에 Museum Trailhead 에 도착했다. 호텔서 차로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등산로는
가파른 좁은 산길을 걸어올라가는 것인데 우리는 중턱의 반 정도에서 내려왔다. 산이 가파라서 정상에 올라가려면
장비가 필요한 듯했다. 하지만 무료 등산로이어서 시간이 지남에 조금씩 더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들었다.
네 번째로 걸은 트레일은 Tahquitz Canyon (타퀴츠 캐년 트레일)이었다.
유료 트레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걸었다. 기대보다 볼 것, 갈 곳, 걸을 곳이 많은 길이었다. 팜스프링스 주변에는
케년, 즉 협곡이 많다. 나지막한 산, 가파른 산, 계곡, 물, 폭포, 돌산, 큰바위들이 이 트레일에 전부 모여있다.
덕분에 하산하면서 생각하니 가장 트레일다운 길을 걸은 기분을 준 등산로라고 생각되었다.
팜스프링스에서 트레일을 걷고싶다면 천천히 빙글빙글 도는 케이블카를 타고 샌하신토 산 정상에 올라가서
다양한 트레일을 걷는 것과 위의 타퀴츠 케년 트레일을 추천한다.
타퀴즈 트레일 시작 부분이다. 자갈길과 흙길을 따라서 조금씩조금씩 위로 오른다.
처음에는 멀리 평원이 보이고 올라가수록 구릉, 언덕, 물과 산이 나온다.
보울더의 크기는 엄청 크다. 누군가 어마어마한 돌덩어리를 꼭데기에서 아래로 던졌는데 구르면서 그 무게에
부셔지고 갈라져서 수많은 작은 돌이 생긴 것 같다. 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의 힘으로 움직여 다시 서로
부딪치고 마찰해서 더 작게 부셔져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겹겹히 군상을 이룬 것 같다.
돌계단을 계속 오르면서 점점 높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선다.
타퀴즈 트레일의 끝은 폭포다. 정상은 더 올라가야하지만 여기서 돌아나와야 한다.
한 시간 이상을 걸어올라가면 드디어 폭포가 나온다. 가파른 돌틈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가 시원하다. 아하~~
나는 산 위에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었다. 등산객들은 모두 이 폭포를 보려고 이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
폭포에 도착하면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잠시 앉아서 휴식을 가진다. 오늘도 작은 것을 이루었다는 마음으로.
아기를 업고 온 사람도,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포기한 사람도, 슬리퍼를 신고 올라온 사람도, 초등학생들도,
가족 단위의 그룹도, 아버지와 아들도, 연인도 가볍게 따라가는 길이다. 상당히 올라와야 하는데도 모두 잘 걷는다.
미국인은 두 종류다. 등산 준비를 잘했거나, 준비가 전혀 안된, 이렇게 두 그룹이다. 하지만 모두 상황에 맞게 즐기고
웃는다. 내려가는 길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 길에는 바위가 더 많아서. 바위 따라 빙빙돌아서 이쪽저쪽으로
길 방향을 바꾸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반쯤 내려오자 올라갔던 길과 하나가 되어서 곧 익숙한 길을 걸었다.
네 개의 트레일을 걸은 것이 이번의 팜스프링스 여행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한 느낌을 가졌다.
평시와는 다른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다. 잠시의 콧바람, 다른 공기, 다른 환경은 할력소를 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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