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 사는 것이 불편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2기를 시작한 후로 골이 깊던 양당의 간극은 더욱 깊어지고 국민들의 감정은 피폐해졌다. 특히 이민자들의 마음은 더욱 그러하다. 트럼프는 공약대로 자신의 뜻과 정책을 흔들림 없이 - 필요하면 가짜 정보로 포장해서 - 강하게 밀고 나가며, 그가 임명한 고위 정부 공직자들과 선출직 공화당 의원들은 무조건 트럼프 정책을 집행하려고 애쓴다. 누구라도 반대를 하면 트럼프의 강한 보복성 비난과 언어 폭력을 감당해야 한다. 더욱이 자신들 가족까지 보복 대상이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민주당 측과 국민들은 넋 나간 듯 트럼프의 폭정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지난 6일, 법무부, 국토안보부, 국경세관보호국(CBP), FBI와 공조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남가주의 일터 여러 곳을 급습해 불체자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면서 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합법 신분 없이 미국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가족을 부양해온 범죄 기록이 없는 사람들이 체포되어 법적 절차를 거침도 없이 순식간에 추방당하는 부당성에 분개한 사람들이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리기 시작했다.
시위의 정점은 지난 14일이었다. 이 날은 미육군 창설 250주년이자 트럼프의 79세 생일로 트럼프 정부가 역대 최대의 화려한 열병식을 거행한 날이다. 한편, 전국적으로 오백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 NO KINGS"라고 쓴 팻말이나 사인을 들고 트럼프를 반대하는 시위를 동시 다발적으로 행한 날이기도 하다. 마치 한 지붕 아래 전혀 다른 두 가정이 동거하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미역사적으로 드물게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트럼프가 생일을 자축하려는 듯 계획한 열병식은 미국이 권위주의 국가 반열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반면에, 로스엔젤스와 뉴욕 등 대도시 중심으로 2,100개 이상의 시에서 벌어진 '노우 킹스' 시위는 희망찬 미래와 미국적 삶의 형태를 바꾸려는 트럼프 정책들과 그의 제왕 같은 권위 의식에 반하는 외침으로 일관됐다. 하지만, 너무도 아쉬운 점은 미국의 시위는 한국의 것과 달리 폭력, 도둑질, 기물 파괴등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다행이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지만 피해 업소들이 속출했고, 그 장면들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박제되어 트럼프 정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전국적인 시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트럼프는 민주당이 강세인 주들의 도시에서 불체자 체포를 더욱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중무장한 ISE 요원들이 군용 장갑차를 동원해 체포하고 드론과 헬기로 시위자를 감시하고 있다. 범법 불체자를 추방을 하는 것에는 많은 미국인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시위 목적 왜곡 및 악용과 군사적 무력 진압은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던 히스패닉계, 흑인계, 아시아계 등 소수 민족들은 주류 언론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발등을 찍은 것을 후회하겠지만 러스트벨트 지역의 백인들은 변함없다.
남가주가 불체자 체포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캘리포니아의 두 개 경제 기둥이 무역과 이민자들의 노동력이기 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 요식업계, 숙박업계, 건설업, 레저산업, 의료 등의 분야에서는 이민자 없이 운영이 불가능하다. 트럭 운전사의 50%, 청소와 조경 노동자의 60%가 이민자다.
남가주에서 처음 시작된 불체자 검거 반대 시위는, 지난 3일 경고 없이 검은 색 SUV 자동차와 5대의 밴에서 내린 ISE 요원들이 엘에이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인 의류 업체를 급습해 20여명을 체포한 사건, 그리고 엘에이에서 30분 거리인 파라마운트 시의 홈디포 매장 밖에서 일거리를 얻기 위해 주위를 서성이던 일용직 노동자들의 검문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정부의 '하루 3000명' 이상 체포 명령으로 다급해진 ISE는 표적 검거로 진화했다. 파라마운트 시의 체포를 지켜본 사람들과, 우연히 ISE 차량을 인지한 시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기습 뉴스를 알리자 사람들이 파라마운트에 모여들면서 시위가 시작됐다.
그 다음 날 부터 시위 무대는 엘에이 다운타운의 시빅센터(시청을 비롯한 공공 건물과 연장 건물이 여러 블락에 걸쳐 모여 있는 곳)로 옮겨졌다. 이에 트럼프는 개빈 뉴섬 주지사를 우회해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을 연방으로 편입한 후 방위군 2000명을 즉각적으로 파병했다. 낮에는 시위가 격해지고 밤에는 주변 건물들의 파손이 이어지자 트럼프는 주지사와 LA 시장의 방위군 배치 철회 호소에도 불구하고 700명 해병대와 2000명의 주 방위군을 또 다시 파병했다. 트럼프는 주장한다. "엘에이 전역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누군가가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범죄자들로 부터 엘에이를 해방해야 한다."
트럼프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파병을 소송했으며, 트럼프가 우리 눈 앞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연설을 통해 트럼프와 대치하고 있다. 연방판사가 방위군 통제권을 주지사에게 넘기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제9 연방항소법원은 17일 심리 때까지 방위군 주둔이 유효한다는 선고를 내렸다. 항소법원 판사 3명 중 2명이 트럼프에 의해 임명됐기 때문에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소송의 결과가 어쨌든 트럼프의 마구잡이 불체자 체포는 가주의 경제를 흔들고 있다. 단속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히스페닉계 주민들은 두문불출하고 자녀를 등교시키지 않으며 숨어버렸다. 식당에는 직원 수가 확 줄어 밥을 먹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 많은 세차장에서는 일꾼 부재로 기계들이 올스톱 됐다.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시민권자도 당한다. 트럼프 임기가 시작된지 겨우 반 년이 지났을 뿐이다. 앞으로 3년 반이 더 지나면 완전하게 달라진 미국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지난 250년 동안 무질서 중에도 이성적인 발전을 해왔으며, 국민의 삶의 향상을 위해 정부는 일관적으로 애써 왔다. 이런 역사를 가진 미국인들이 혼돈에 대한 대처와 극복 안을 가진지 궁금하다. 미국이 계속 여유롭고, 관대하고, 인간미를 가진 국가이기를 바란다면 과유불급일까? 기습 체포는 매일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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