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fornia 이야기

7일째 타는 남가주의 산불과 테드 케네디를 추모하며

rejungna 2009. 9. 3. 15:28

Station Wildfire(스테이션 산불)이라고 이름붙여진 산불이 일주일째 남가주 여러 지역에서 맹렬하게 타고 있다.

아주 쎈 힘을 가진 불이다. 불길을 잡기가 너무 힘들다. 큰 불길이 잡히려면 빨라야 9월 중순경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흐리고  바람이 불지 않았던 어제 날씨 덕분에 불길을 22%까지 진화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괴력으로 번지면서 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가뭄이 3년 이상 계속되다보니 하늘의 공기와 땅의 식물들은 바짝 말라서 쉽게 불붙고  겁잡을 수 없는 불씨는

아무 것이나 희생양을 삼고있다. 기온도 아주 높다. 얼마 전까지 예년보다 시원한 여름을 지내고 있었지만, 지난 주부터 LA 날씨는

화씨 90 - 100도 주위를 맴돌고 있다. 산불이 나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작년에는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동생의 집 근처 까지 번진 불 때문에 그 동네 집들이 맥없이 무너져서 가슴이 탓었었다.

지금은 LA의 북동서쪽으로 사는 집과 무척 가까운 라캐나다, 라크레센타, 글렌데일을 거쳐서 터헝가, 썬랜드, 알타데나,

파사데나, 시에라 마드레 동네까지 번져서 그 곳 주민들은 집을 떠나 있다.(이 지역들에는 한인들이 엄청 많이 살고있다)

이 중 어떤 지역은 어제 오후부터 대피가 해제되었지만, 화마는 새 지역으로 고개를 틀면서 닥치는 대로 주변을 삼키고

마음내키는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고 한다.

대피해야 하는 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짐을 싸야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떤 물건을 들고 나가고 어떤 물건을 두고 나가야할지 망설이면서 정신없이 뛰는 사람이 늘고있다.

다시 자기 집에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맥빠진 생각을 하면서 집을 황급하게 빠져 나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는 사람 여럿도 집을 떠나 딴 곳으로 가 있다고 한다. 내 친구도 집을 비웠다고 한다.

우리 앞 집의 친척도 집을 나와서 다른 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딸의 친구 식구들도 친척집에서 며칠 째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대피한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피해를 당하고 있는 누군가를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애타고 겁나도 당황스러울 것인지... 내가 짐을 싸야한다면 어디로 가고 무엇을 들고 나갈까?

 

벌써 7일째 타고있는 산불의 뉴스를 지난 주에 들었을 때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곧 불길이 잡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다.

올해도 또 산불이 났다고 혼자서 퉁명스러운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동부에서 타계한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와 거의 동시에 서부 LA에서는 산불이 시작되었다.

그의 일생과 업적, 케네디 가문에 대한 TV 프로에 빠져서 산불을 심각하게 생각할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기록물을 통해서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업적을 남긴 테드 케네디의 의정활동과 발자취에 감명을 받으면서 새삼스럽게

그의 가치와 그의 인물됨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의 장례미사를 보면서도 느끼는 것이 많아서 눈물을 흘리고, 자녀들과 오바마 대통령의

추모 연설에도 마음이 움직여서 정신을 놓고 있었다. 지난 7월에 오바마 대통령의 교황님 방문 시에 그의 부탁으로 그가 쓴

편지를 교황님께 대신 전했다고 한다. 그 때에 쓴 테드 케네디의 편지와 답하신 교황님의 서신을 알린톤 국민묘지에 그의 관을 매장하기

바로 전에 추기경님이 읽으셨다. 자신의 죽음의 임박함을 알고 있는 한 인간이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지상에서 인간으로는

가장 성스럽다고 할 수 있는 교황님께 병든 자신을 소개하면서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에 나의 만감이 교차되었었다.

 

그는 32살에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77살 유명을 달리 할 때까지

굵직하고 중요한 법안들을 발의하고 통과시켜서 현대 미국 사회의 근간이되고

변화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한다. 평생 가난한자, 이민자, 약한자, 유색인종의 편에 서서

이들에게 유리한 건강, 이민, 교육, 인권 관한 새법을 만들었다.

특히 1965년에 제정된 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이민법)은 지금과 같이

많은 유색인종들이 미국으로 이민 올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그 전까지는 주로

유럽 출신의 백인들에게 이민 배당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필생의 염원인 미전국민 건강보험과 그 체제의 개혁은 그의 사후에라도

꼭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의 삶의 열정, 유머, 애국심, 케네디 집안 모두의 대부 노릇,

자신이 일하는 주의 주민들을 끔찍하게 챙기던 사건들과 그의 상징같은 너털웃음...

수많은 미국인들과 함께 이것들을 안타깝게 역사 속으로 보내고 현실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남가주는 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집을 비운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잡히기는 커녕 불길은 더 넓은 지역으로 번져서 회색의 하늘에 셀 수도 없는 재가

마음대로 하늘을 날라다니다가 편리한 곳에 사뿐이 내리고 있었다.

산불 지역에서 꽤 떨어져 서있던 내 차도 하얀 재로 어지럽게 덮혀있었다.

 

 전국에서 날라온 3,700 명에 이르는 소방관들이 온갖 방법과 도구로 불을 진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불길이 집들 쪽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맞불(backfire)을 놓기도 하고 불도저로 수풀들을 밀기도 하고 하늘에서 방화물질을 뿌리기도 한다.

날씨만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오늘까지 15,000 에이커가 넘는 엄청난 면적이 타고 있지만 집은 62채 남짓만 전소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

 

시기적으로 비가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온이 좀 떨어지고 바람이 계속 크지 않아서 빨리 불길이 잡혀야 할터인데 

집을 비우고 잠시 떠돌아다니는 집주인들이 조만간 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임시 휴교로 닫힌 학교도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사람은 다시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고, 직장인들은 잡념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게되면 좋겠다.

시기적으로 정말 어려운 때에 또 재난을 당하는 주민들이 많아서 걱정스럽다. 무척 신경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