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날이 차다! 올 해에는 매년 10월 초가 되면 빠지지않고 LA 를 방문하는 여름의 마지막 발버둥인 인디언 섬머도 없었다.
자연의 노여움이 세계 곳곳의 큰 재난에 집중되다보니 예정된 불청객인 LA의 늦더위 쯤은 뒷전으로 밀린 듯하다.
일년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10월이다.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밑빠진 그리움에 숨이 막힌다.
10월의 거역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 덕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 기운은 나를 가라앉히고 구슬픈 저녁 피리 소리가 되어서 짙은 외로움이 하나둘씩 쌓이게 만든다.
(여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LA 의 10월이지만 10월의 기운은 아주 성성하기만 하다.)
나는 미국서 살면서 오랫동안 추석을 특별하게 지내지 않았었다. 11월의 공휴일인 추수감사절로 추석을 대체하고 살았다.
명절, 제사, 생일을 합해서 내 가족이 시집 식구들과 공식적으로 모이는 일수는 일년에 자그마치 19건이다.
이 중에서 내 몫은 7일이며, 시누와 동서가 각각 6일씩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시누님의 제의로 3년 전부터 추석도 지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냥 지나가기가 싫으니 추석 음식 만큼은 나누어서
준비하자고 하셨다. 마켓에 펼쳐진 추석장은 한국과 달리 특별한 햇과일과 햇곡식은 없었지만 배, 감, 대추, 밤을 잔뜩 쌓아놓은
모습이 오랫동안 한국서 보아왔던 모습과 비슷해서 정겨웠다. 올해는 마침 토요일이어서 정신적 여유도 있었고,
멀리서 공부하는 아들까지 이곳 병원에서 3주간 학습하기 위해서 온 탓에 정말 들뜨고 시끄러운 명절을 지낼 수 있었다.
푸짐한 음식에 웃음나는 이야기와 정겨운 얼굴들...
그러나...
마음의 한 구석은 빈사탕 껍질 처럼 겉은 부산하지만 알맹이가 없어서 껍질끼리 서로 부딪치는 까칠거리는 소음을 내고 있었다.
무엇이 와서 내 빈 속을 채워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 공간을 허상으로 나마 채우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하루하루를 바쁘고 빈틈없이 지내고 있건만, 왜 가슴 속의 상자는 그 크기를 점점 늘려가기만 하는지...
하느님의 말씀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좋은 글에도 당당하다.
몸을 지치게 하는 걷기와 운동에도 여전히 퉁명스럽게 버티고 있다. 사색적인 명상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엄마를 보면서 믿음과 좋아하는 눈빛을 보내는 아들, 오빠의 출현을 살짝 질투하는 딸의 투정, 같은 자리에 서있는 남편도
이 계절 덕에 더욱 두드러진 가슴 안의 허한 공간을 어쩌지 못한다.
집벽을 넘기만 하면 사방으로 펼펴져있는 위대한 자연은 그 해결책을 알까? 단순한 자연 속에 지혜가 숨어 있을까?
10월의 기운은 역사 속의 많은 이들도, 지금 현세의 다른 이들도 나와 같다고 말해 줄 수 있을까?
계절도, 10월도, 나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이 책임을 지고 그 속에서 답을 찿아봄이 타당한 듯하다.
코발트 색을 띄고 내 마음을 붕붕 띄우는 하늘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한 자리에 서서 위엄있는 자태로 기죽게 만드는 나무에게,
때가 아닌데도 새콤한 행복을 피워 준다고 도도하고 새초롬한 가을 꽃에게,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쉼없이 흘러 고고하게 보이는 물에게 떼를 써아겠다.
우리 집 뒷마당의 감과 석류나무를 단 한톨도 남기지 않고 다 따먹고 땅으로 떨어뜨린 다람쥐와 새들에게,
LA 시의 절수책 때문에 못먹어서 누렇게 변한 가을 잔디에게,
단풍을 풍족하게 선사하지도 않는 LA 이면서 왜 가을 기운은 이리도 성성하게 만들었는지를 따져봐야 하겠다.
이렇게... 거대한 자연의 힘에 대적해서 내 빈 마음의 주범인 당신이 나를 책임지라고 징징거려본다.
그러다가... 오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공간 속의 차가운 공기가 피와 살을 훌터서 손발끝까지 시리게하고 있었다.
아침 시간을 내서 카메라를 들고 동네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역시 자연은, 신의 힘은 위대했다.
한치도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에 서있는 아름들이 나무들로 가득한 주변에 풀이 죽었다.
내 삶의 길이 보다도, 내 부모의 세월 보다도, 내 조상들의 흔적보다도 더 길고 골깊은 나이태가 새겨진 나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삶의 연륜과 인내는 아니꼽다는 듯이 나에게 눈을 흘겼다.
잠시 부족한 나 자신을 멍한 마음으로 돌아보면서,
나의 시끄러운 공간을 나무들의 성스러운 기운으로 채우려고 가슴을 쭉내밀고는 시린 손발끝을 호호 불었다.
비록 잠시 후에는 내 마음 속의 허한 기운이 또 다시 나를 괴롭힐지라도...
(너무 오래 살아서 위는 잘려지고 밑에서 다시 돋아난 새식구들로 다시 살아난 나무이다. 참 질긴 생명력이 보인다.)
(한국의 해안가에 즐비한 바람 덕에 한쪽으로 기운 소나무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예쁘다,)
(수양버들이 물가에 서있지 않고 집 옆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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