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에서 1박2일 여행을 염두에 두고 여행지를 물색할 경우에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먼저 정하면 조금 더 쉽다. 집을 떠나면
미국은, 아니 캘리포니아의 땅덩어리가 너무 광활하고 거대하며 볼 곳이 많아서 주눅이 든다. 자연의 오묘함에 대한 감탄과
더불어 내 존재의 미미함과 무의미함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짧은 시간을 여행할 때에는 구체적인 목적지나 관광지를 결정하고
시간 계획을 세워야 삼천포로 빠지지않고 알차게 구경할 수 있다. 먼 거리의 이동 없이 목적지 근교의 볼거리를 이용하면 좋다.
얼마 전에 팜 스프링스(Palm Springs)로 1박2일 여행을 꽉차게 다녀왔다. 팜 스프링스는 LA 에서 107 마일(172 km) 거리여서
2시간 정도 힘차게 동쪽으로 달리면 도착한다. 근처에는 물좋은 온천이 있고, 그 유명한 트램(케이블카)을 타고 샌 하신토 산
(San Jacinto Mountain)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다운타운은 수많은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며, 코앞에 있는 아이들와일드(Idyllwild)라고
불리는 산 속의 예쁜 작은 동네 또한 볼거리이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에 실속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목적지이다.
서두르지 않고 오전 10시 30분 쯤 여유롭게 출발했다. 40분 정도 달려서 다이야몬드바(Diamond Bar) 시의 어느 중국 식당에 들려서
중국식 브런치를 먹었다. 새로 지은 식당인 듯이, 여느 중국 식당과는 달리 깨끗하고 붐비지 않았다. 난 여기서 난생 처음으로
닭발을, 그것도 중국식 닭발 튀김을 한입 먹어보았다. 이것이 주문한 식사 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었다. 식사 후에는 일행 모두
스타벅스 커피 한잔씩을 들고 커피향에 취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다시 출발했다. 가는 길 풍경은 지극히 평범하다. 사막의 도시답게
나무없는 나즈막한 구릉들의 연속이다. 드디어 도착!
먼저 온천을 찿았다. 온천은 팜 스프링스에서 10분 정도 거리인 데저트 핫 스프링스(Desert Hot Springs)에 있다. 20여년
전부터 이곳에 모텔을 사서 온천을 운영하는 한인들이 여럿있다. 시설은 호텔에 비해서 못하지만, 저렴하고 마음대로 떠들수 있고
한국 음식을 해먹을 수 있어서 한인들은 주로 한인 소유 온천을 찿는다. 우리도 요즈음 한국 신문에 광고가 자주 나는 CJ 그랜드
스파에 투숙했다. 이곳은 다른 한인들의 온천장에 비해서 규모가 다소 크고 찜질방을 여러 개 갖고 있었다. 이층의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짐을 옮기기가 곤란했지만 부대 시설은 기대 이상이었다. 방 크기도 괜찮고 나름대로 리모델하려고 애쓴
듯했다. 온천장으로는 야외의 커다란 풀장과 2개의 자꾸지, 그리고 실내의 자그마한 두개의 자꾸지가 있다. 온천물은 냄새도
강하지 않고 특별하게 매끄럽게 느껴지지도 않아서 물이 좋은지 잘몰랐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결은 반들거리고
몸과 얼굴의 피부는 윤기가 흘렀다. 괜찮은 온천물인가 보다!
데저트 핫 스프링스는 도시 전체가 온천이다. 이름 그대로 사막 가운데 온천물이 나온다. 지하 30미터 아래에 온천물이 흐르는
지반이 있어서 여기서 물을 끌어올려서 쓰고 있다. 그러니까 샌 버나디노산 기지(base)에서 솟아나는 화씨 180도(섭씨 82도)의
천연 온천물이다. 이곳은 팜 스프링스와 가까운 위치 덕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겨울이나 초봄에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 도시는 풍력 발전용 풍차(wind turbin)들이 거대하게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풍차의 메카이기도 하다.
팜 스프링스의 가장 유명한 명소인 케이블카(tramway) 트램은 이곳을 방문하면 무조건 타야한다. 1963년에 건설된 트램은
10분간 탑승 중에 5개의 정거장을 거치면서 스릴을 주는데, 세계에서 돌아가는(rotating) 가장 큰 트램이라고 한다. 덕분에 360도의
전망이 가능해서 돌, 바위, 나무, 도시, 길, 산, 별, 하늘을 여러 각도에서 즐길 수 있다. 트램은 샌 하신토산(San Jacinto Mountain)의
정상까지 운행한다. 트램이 출발하는 밸리 정거장(Valley Station)은 2,643 피트(806 미터)이며, 트램이 도착하는 마운틴 정거장
(Mountain Station)의 높이는 8,516 피트(2,596 미터)로 1,950 미터인 한라산보다 높다. 샌 하신토 산의 정상은 10,833 피트
(3,302 미터)이며, 높고 험준하고 바위로 뒤덮인 산으로 2,744 미터인 백두산 보다도 높다. 하지만, 도착지에 내려서 정거장
바깥으로 나가면 곧게 하늘 높이 뻗은 푸른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탁트인 평지를 덮고 있다. 그래서 여기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와
하이킹 코스가 상당히 유명하다. 마침 대지를 곱게 덮고 있던 2월의 하얀 눈은 산 아래와 중턱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마치 잠시 꿈 속에서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태양이 석양을 넘어간 후에 타고 내려온 트램은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수많은 별들과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 팜 스프링스의 다운타운을 찿았다. 다운타운은 사막의 별천지였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고마운
오아시스 보다는,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자유분망하며 예술적인 별천지이다. 거리 양쪽에 늘어선 팜트리는 이국적 느낌을 주고,
어깨를 맞닫은 예쁜 가게들은 여행객을 부끄럼없이 유혹한다. 여기저기 눈요기 꺼리가 넘치는 부티크는 여행객의 발목을 잡으며,
너무도 다양한 식당들은 어떤 음식을 선택할 지를 고민케한다. 이곳은 방문객이 천천히 걸으면서 오아시스를 탐험케 한다.
걷다보면 박물관, 호텔, 카지노, 극장도 만난다. 즉, 상당한 시간을 이곳서 보낼 수 있다. 이곳을 걸으면서 느낀 점은 여행객들은
주로 젊은이들과 노년들이란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국적인 낭만과 분망함을 사랑하고, 노년들은 따뜻한 날씨와 편안함을
즐기는 듯했다.
LA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의 샌 하신토 산속의 작은 마을인 아이딜와일드(Idyllwild)에서 점심을 먹었다. 팜 스프링스에서 11마일
떨어진 곳이지만 꼬불꼬불한 산을 차로 올라가므로 40분 정도 걸렸다. 해발 5,345 피트에 위치한 아주 작은 동네이다. 통나무로
지은 가게들과 식당이 있는 마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통나무로 지은 집들이 보인다. 주민이 사는 집인지, 아니면
여행객들에게 빌려주는 곳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와일드는 원래 카후일라(Cahuilla) 인디언들이 더위를 피해서 여름에 살던
거주지였다. 방문 시에도 마을에는 인디언이 나무로 동물을 조각하고 있었다. 이곳도 곧게 뻗은 아름들이 소나무와 잣나무가
빽빽하다. 정말 키가 크다! 이 작은 마을은 암벽타기와 소나무 아래에서 열리는 8월의 째즈 공연이 유명하다. 그리고, 이곳
식당에서 먹었던 파스타와 께사디아(quesdilla), 그리고 커피는 일품이었다.
만화경 같은 캘리포니아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무가 없을 곳에 나무가 있고, 물이 없을 곳에 물이 흐르고,
산이어야 할 곳에 평지를 만나며, 기름진 땅처럼 보이지만 불모의 땅이기도 하다. 아이딜와일드 동네를 돌아보면서 가을에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단풍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을 구비구비 돌아서 오르고
내리면서 한쪽 절벽 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슴이 조여드는 오그라들음을 주기도 하고, 가슴이 탁트이는
시원한 해방감을 주기도 했다. 하늘, 산, 바위, 야생화, 나무가 잘 어우러져서 캘리포니아만의 특유한 마른 듯하면서도 기름진
아름다움을 자아내었다. 이 모습은 이곳의 생활이 길어 질수록 점점 내 가슴 속 깊이 박히는 기억이며 내 삶의 자국이 되고
있다. 당연하면서도 좀 서글픈 마음이 듬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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