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비가 오면 다시 태어난다.
봄비는 겨울의 춥고 척박한 세상을 밝고 따뜻하고 환한 세상으로 바꾸는 놀라운 촉매이다. 자연에게는 성장의 비료가 되고,
내게는 영혼을 튼튼케하는 영양제가 된다. 잠깐 사이에 세상을 조금 더 비옥하게 만들어 주며, 내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어서
알게모르게 침전된 불순물을 정제시켜 준다. 하지만, 봄비를 바라보는 내 마음과 눈은 항상 투명하지만 않다. 어디에선가
누가 울고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웃 나라에서? 별나라에서? 땅밑에서? 눈물어린 눈을 비비고 있는 사람은
나일 수도 있다. 비온 후의 세상이 더 산뜻하고 깨끗해지는 것처럼 눈물을 떨어뜨린 후의 나는 좀 더 정화될 지도 모른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과 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의 작가인 빅토 위고 (Victor Hugo)는
"겨울은 머리에 있지만 불변의 봄은 내 가슴에 존재한다." (Winter is on my head, but eternal spring is on my heart.)
라고 말했다.
미처 가슴까지 내려오지 못한 봄은 외로움에 텅빈 나를 만나게 한다. 수줍은 듯이 고개를 내민 빨간 사르비아 꽃도 외로움에
사르르 떠는 듯하다. 터질듯이 무르익은 노란 레몬도 나무에서 외롭게 그네를 타고 있는 듯하다. 새벽부터 노래하는 창밖의
시끄러운 새들도 외로움에 지쳐서 우는 듯하다. 2012년 3월의 LA가 예년보다 춥고 습습하기 때문일까? 겨우 3번째의 달력 종이를
쳐다보고 있지만, 시작과는 사뭇 다르다는 허탈함 때문일까? 여기저기로 번지고 있는 소생과 환희와는 분리된 자신을 향한
연민 때문일까? 세상이 무르익어가는 신비에 끼지못한 작아진 중년임을 알기 때문일까?
아무리 혼자서 인생의 틈에 박혀서 혼란스러워해도 봄비의 역할은 명확하다. 봄은 사랑과 희망의 전령사이다. 덕분에 외로워진
가슴이 사랑이라는 말에 다시 뛰고 아픔을 깨는 아련한 희망에 미소짓는다. 봄비는 이를 알리기 위해서 내 영혼을 두드려 깨우는
새벽녘의 길잡이다. 정신놓지 말라고 미풍을 일으킨다. 따스한 사랑과 희망을 놓치지말라고 이마를 탁친다. 겨울이 붙들었던
음침함을 털어버리고 가슴에 피는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라고 땅을 두들긴다. 그 의미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하라고
사뿐이 손등에 내려 앉는다. 그러면 머리에서 부터 말끝까지 퍼지는 따뜻함을 느낄 것이라고 땅 위에 동그랗게 쓴다.
빅토 위고는 사랑과 희망을 마음에 박히도록 이렇게 이야기 했다.
"삶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있는 그대로, 더 좋은 것은 자신과 같은 모양이지만,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이다."
(The greatest happiness of life is the conviction that we are loved - loved for ourselves, or rather, loved in spite of ourselves.)
"밤은 아무리 깜깜해도 끝날 것이며 태양은 떠오를 것이다."
(Even the darkest night will end and the sun will rise.)
얼마 전 우연히 만난 시인 홍광일은 사랑을 이렇게 쏟았다. 그의 말 한마디한마디에서 사랑이 땡그라니 굴러나온다.
<가슴에 핀 꽃>
휘이--
사람들은 바람소리라고 한다.
그대를 부르는 내 마음인걸
쏴아--
사람들은 파도소리라고 한다.
그대에게 드리는 내 마음인걸
가슴에 핀 꽃
사람들은 그런 건 없다고 한다
늘 내 가슴에 피어있는 그대를
<내 마음의 등불>
길은
길이라지만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를 보고 갑니다
가다가 발이 웅덩이에 빠진다 해도
그대 마음만 보고 갑니다
불빛은
불빛이라지만
불빛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를 보고 갑니다
그대 마음 내 마음의 등불이 되어
길이 되고 불빛이 됩니다.
또, 시인은 희망을 노래한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노래한다.
<내가 하늘을 보는 이유는>
내가 하늘을 보는 이유는
매섭게 밀려드는 외로움에 있다
새 삶의 언저리
비바람 몰아칠 때
불쑥불쑥 솟아나는 꿈 하나
저 하늘 어딘가
저 별처럼 빛날 것 같아
바라보는 하늘이다
내가 하늘을 보는 이유는
끝없이 스며드는 그리움에 있다
내 영혼의 뜨락에
나뭇잎 뒹굴때
언뜻언뜻 떠오르는 얼굴 하나
저 하늘 어딘가
저 달처럼 올 것 같아
불러보는 이름이다
<가득한 사랑을 꿈꾸고>
흔들리는 나뭇잎
바라보는 마음에
가득한 사랑을 꿈꾸고
떨리는 음성
내 가슴에 와닿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네
어디서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 흔들림 내 삶의 한부분이라면
절규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리움처럼 끌어안고 길을 나설 것이다
이 떨림
내 삶에 거친 비바람처럼 온것이라면
나 그것을 넘고넘어
끝끝내 꿈꾸는 그 곳으로 갈 것이다
봄비의 뜻을 알아채고 나도 들의 풀꽃처럼 함차게 자라면 좋겠다. 인내와 관조를 뼈속 깊이 받아들이면서 미소지으면 좋겠다.
기다려주지 않았어도, 아무런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았어도, 기대와 정성을 하나도 드리지 않았어도, 더우기 사랑과 희망까지
전해줄 것은 생각조차 못했어도 찿아와서 두들기는 내 영혼의 알람시계가 봄비이다.
봄비와 와서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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