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2014년 3월의 LA 봄이 가르쳐주는 지혜

rejungna 2014. 3. 29. 13:04

 2014년 3월!

3월이 거의 다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봄기운은 점점 강렬해지고 있다.

 

LA 의 2014년 봄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따뜻함으로 여름과 가을을 섞어놓은 비빔밥 같다. 그래도 3월의 봄은 새로움의 시작을 알리는

삶의 나팔소리 같아 좋다. 대지는 꿈틀거리고, 파란 하늘은 새들의 노래 소리에 빙빙 돌며, 공기는 봄바람을 유인하려고

흐느적거리고, 나무에는 질펀한 수액이 오른다. 제 세상을 만난 세떼들은 수소를 가득 채운 풍선들 처럼 바람따라 위아래로 춤을

춘다. 성급하게 머리를 내민 꽃들은 새침을 떨며 간청한다. 떠난 뒤에 아쉬워하지 말고 한번 더 바라봐 주세요!

 

 

봄은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깨우쳐준다.

어느 집의 화단에 핀 핫핑크색의 꽃잎이 내 발을 잡았다. 가만히 내려다 보니 너무 예뻐서 속에 잠재되어 있던 가느다란 비애가

터져나오는 듯하다. 왠지 눈물이 눈가를 적신다. 대견하기도 하고 애처럽기도 하다. 예쁜 꽃을 바라볼 때는 대견함과 뿌듯함만을

느끼면 좋을터인데 왜 애처러운 감정까지 이는지 모를 일이다. 평시 웃으면서 살아도 감추어진 감정은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작은 촉매에 재빠르게 고개를 드는 듯하다. 허전함, 외로움, 쓸쓸함. 하지만 이방인 같은 감정은 살아있다는 자각을 준다.

 

 

봄은 황홀한 처연함을 준다.

어느 집 담벼락을 따라서 바깥 세상으로 넘어온 꽃나무! LA 근처 주택가에 흔한 꽃나무이지만 이름은 모른다. 빨갛거나 하얀, 혹은

분홍색의 꽃을 열정적으로 피우는 나무이다. 이만 때만 되면 더욱 만발한다. 그렇게 한 동안 피어있다가 꽃은 떨어지고 초록색 잎만

남아서 여름을 맞는다. 한 계절 동안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운 후에 성숙해진 초록 나무는 측은하다. 열심히 살다가 간 영혼들 같다.

3월에 삼주 간격으로 아는 지인 두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다. 먼저간 이는 40대 초반의 씩씩한 가장으로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죽어서

어린 두 딸과 젊은 아내를 남겼다. 다른 이는 어제 암으로 돌아가셨다. 평생 소녀로 사신 60대의 여인이다. 25년 만에 재발한 암으로

가셨지만 예쁜 미소를 잃지않았고 단정하게 마지막까지 투병하셨다. 내게 청년 시절의 기억을 많이 남겨준 사십대의 가장과 예쁜

모자를 즐겨쓰시던 그 여인의 죽음은 창연한 꽃색 처럼 내 가슴을 아래로 누른다. 두 사람 다 하늘에서 못다핀 꽃을 피우시기를.

 

 

봄은 겸손함을 넌짓이 가르쳐준다.

핑크 장미발 밑을 덮고있는 키작은 식물의 꽃망울들이 터질 것 같다. 고개를 들고 앞만 바라보고 걸으면 이 봉오리꽃들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래로 눈길을 주어야 그 존재가 보인다. 살짝 숨어있어서 더 소탐하고 비밀스럽고 앙징스럽다. 장미 정원에 장미만 있다면

재미없고 외로울 것이다. 또 장미보다 키큰 꽃들이 해를 막고 있으면 장미의 아름다움이 가려진다. 땅에 납짝 엎드려서 장미밭을

더 돋보이게 하는 키작은 꽃들은 자기 자리를 아는 현자같다. 나도 이런 능력과 배려심을 갖춘 사람이면 좋겠다.

 

 

봄은 자연이나 삶에의 적응에 모범이 된다.

눈부시다. 주황색이 저렇게 저돌적이고 열정적인지 미처 몰랐다. 땅을 보호하는 까만색의 나무 조각이 더 원색적으로 만드는 지

모른다. 제라니윰! 아무렇게 자르거나 분질러서 심고 물을 주고 공짜 햇빛만 있다면 쉽게 꽃을 피운다. 고고하고 정성을 드려야만

하는 난초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아름다움을 갖고있다. 참신하고 너그럽기 까지하다. 적당히 다루어도 마음에만 맞으면

자신을 한껏 돋보일 줄 아는 뛰어난 감각도 갖고있다. 올봄엔 이 꽃을 발견한 것 만으로도 봄의 의미를 충분히 간파했다고 생각한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피우는 꽃! 멋지고 폼난다.

 

 

봄은 짝사랑하는 연인에게도 당당한 기품을 준다.

따뜻한 LA 날씨는 베고니아를 일년에도 여러번 피게 한다. 사진 속의 베고니아는 도도한 난들과 함께 하고있다. 길고 가늘고 뾰죽한

난 잎파리들은 베고니아가 더욱 청초하도록 뒷배를 봐주고 있다. 베고니아 꽃말이 짝사랑인 것과는 달리 혼자서도 잘 노는 모습이다.

짝사랑에 지쳐서 외롭고 힘들어도 당당하게 자신을 내보일 것 같다. 그래서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발길을 한번 더 멈출 수 밖에 없다.

그런 당당함이 아름답다. 기품이 있다. 누가 베고니아의 속이 숯검댕이 같다고 추측할 수 있을까?

 

 

봄은 사랑을 그리게 한다.

우리 집 앞마당은 일년에 세번쯤은 아이스버그 장미로 화려해진다. 우리 집만이 아니라 내가 사는 블락 전체가 그렇다. 이웃들과

입을 모아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도 한집 건너마다 아이스버그 장미를 심었다. 그래서 봄이 오고 여름이 되고 초가을이 되면

수많은 하얀색의 장미 송이송이들이 줄기를 나폴거리면서 길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다. 아이스버그 장미는 그야말로 물만

잘 주면 줄기가 빠르게 위로 옆으로 뻗는다. 마치 몸 안의 모든 기운을 다 뿜어서 사랑을 하려는 것 같이 자신을 다 내놓는다. 

한 생애 동안에 단 한 사람이라도 온 마음으로 깊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아쉬운 생을 위안할 수 있다는 말처럼.

 

다시금 뼈속까지 봄기운을 불어주고 싶다. 왠지 서글프고 지친 3월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