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인 7월 6일 부터 오늘 월요일 까지 4일 동안 남가주가 팔팔 펄펄 끓었다. 4일 동안 매일 100도가 넘었다.
특히 지난 금요일은 동네의 온도가 화씨 114도 (45.6 C) 까지 올랐다. 정말이지 그렇게 더운 날은 긴 미국살이 동안
처음이었다. 100년만의 최고 기온이라고 했다. 분명 이상 기온이었다. 산불도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통상 남가주는 7월 부터 10월 11월 까지 덥다. 특히 10월 초의 '인디언 섬머'라고 이름 붙여진 여러 날들은 많이
덥다. 그런데 지난 주말인 금, 토, 일요일은 그런 모든 날들을 넘어서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날씨는 준비할
여유를 주지않고 갑자기 급습했다. 펄펄 끓는 온도에 뜨거운 바람이 모든 틈으로 재빠르게 얼굴을 비롯하여
온 몸에 밀고 들어왔다. 마치 여름 한낮에 사막 한가운데 모래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기분이었다. 모처럼 돌린
에어컨도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아마도 이웃들도 빠짐없이 에어콘을 돌렸을 것이다.
전력 사용량이 갑자기 급증한 탓에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정전이었다. 에어컨을 비롯하여 집안의 모든 기계가
한순간에 멈추었다. 후에 알았지만 사상 5번째로 높았던 전력 사용량 때문에 LA에서만 34,500 가구가 정전되었고,
한인타운에서만 5,900 가구의 전기가 끊어졌다. 어제 일요일 저녁에 26,500 가구가 여전히 정전이었다고 한다.
가장 더운 날이었던 금요일 저녁 5시 경이었다. 갑자기 집 뒷쪽의 pop!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갔다. 순간 집안이
조용해지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덮었다. 아뿔사! 미국은 복구에도 시간 걸린는데... 확인차 집 바깥으로 나갔다.
길 건너 집의 전기는 집앞과 이층 복도에서 화려화게 불을 뿜고 있었다. 그러나 내 집 쪽의 집들 전기는 없었다.
좀 더 걸어서 집 뒷쪽의 블락으로 갔다. 그 쪽도 조용했다. 하지만 그 집들의 건너편 집들은 우리 앞집 처럼 환한
불을 안고 화사하게 서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집들에만 정전이 일어났다. 더 많은
집들이 영향을 받아야 DWP 수도전기국에서 우선적으로 고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7시 넘어서 온 식구가 베버리센타 몰로 향했다. 더위를 피하겠다는 마음에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었다. 달리는 자동차의 계기판은 화씨 114도의 바깥 온도를 알렸다. 믿을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차창 밖 길가
어느 건물 앞에 걸린 온도계 역시 같은 온도를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한 피신으로 시작된 떠돌이
살이가 3일 넘게 계속될 줄 짐작도 못했다.
백화점에서 한 시간 정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웃들이 여러 명 나와 있었다. 이들과 동병상련을 나누고는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뉴스를 나누기 위해서다. 도저히 집에서 잘 수 없어서 아들 집으로 향했다. 겨우 5분
거리다. 하룻밤을 지내고 토요일 아침에 다시 DWP 에 연락했다. 저녁까지 복구될 것이라고 했다. 이웃들도 열심히
DWP 와 이야기한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이틀밤을 자도 여전한 답만 들려온다. 다시금 일요일이 되었다. 이제는
DWP가 먼저 연락해서 상황을 알려준다. 복구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5시, 다시 9시, 결국 밤 12시 까지
계속 움직여졌다. 믿어도 되나?
포기하는 마음으로 일요일 밤 10시 반에 집에 돌아왔다. 기온은 어제, 그제보다 떨어져서 밤이 되니 살만했다.
창문을 열어놓고 각자의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 2시 만 쯤 엄청 시끄러운 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무거운
자동차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큰 소리로 정전된 집 주소들을 나열하고 있다. 고치기 전에 주민들에게 알려주려는
듯했다. 10분 흘렀을까... 우리 집 대문을 부수듯이 두들기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집 뒷마당에 전봇대가 있다고 한다.
난 이사와서 그것을 예사로 보았었는데... 집 앞에 DWP 트럭이 4대 서고 건장한 남자들 5명이 뒷마당으로 장비를
들고 성큼성큼 들어섰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복구원들은 6시 반까지 transfomer 를 용량이 큰 것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전봇대의
변압기가 발전소에서 보내온 전기를 220볼트로 바꾸어서 일정한 수의 가정으로 보내는데 그 가정들이 변압기의
용량을 초과해서 전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전이 생겼다. 모든 것은 과하게 쓰면 망가진다. 꼭 필요한 때에 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한계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서 과용할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는 같이 나누어
쓰기 위해서 에어콘의 적정 온도를 좀 올려야겠다.
정전이 고쳐지자 더위는 아무 것도 아닌 듯하다. 3일 동안 힘들고 불편했지만 아침 6시 30분에 다시 들어온
전기빛은 아름다웠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는 무척 친근했다. 비록 냉장고 속의 많은 음식을 버려야 했지만
덕분에 청소해서 기분이 깔끔하다. 아들 집에서는 마침 한국서 방문 온 사둔들과 함께 대식구가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며느리는 에어비엔비로 여행 온 기분이라고 했다. 애들은 캠핑 온 것 같다고 했다. 또 이웃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가까워졌다. 안면은 있어도 모르던 사람들이었다.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폭염은 싫다. 정전은 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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