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2919년 끝에 가진 단상

rejungna 2019. 12. 30. 14:00

시간은 흘러 한 해의 끝에 서있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설정의 집요함과 일관성이 감탄스럽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불가항력의 시간을 받아들이면서 살고있다. 한 살씩 더 먹음에 따라 변화되는 내 모습도 

받아들인다. 지난 달 어느 모임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예뻤었는지를 되풀이 하는 지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잠시 혼란이 일었었다. 순간적으로 재빠르게 머리를 굴린 후에 기분좋은 말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고맙다는 미소로 반응했다. 지금 나의 상태는 그녀의 코멘트와 무관하며, 그녀가 인식했던 과거의 나도 나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슬프게도 한 자리에서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올 2019년 한 해의 처음과 지금을 견주어보면 많은 것들의 자리 움직임이 보인다. 어떤 것은 더 나은 자리에, 어떤 것은 

불편한 자리에, 또 어떤 것은 불확실해서 더 지켜봐야 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부정하거나 덮고 싶은 것들도 내가 

살아 있어서 인지하는 움직임이다. 만일 내가 지구 상의 손바닥만한 땅에 움직임없이 누워 있어야만 한다면 매일, 아니 

매순간이 동일하고 평이할 것이다. 그 때에도 그 속에서 다른 의미와 기쁨을 찿을 것 같지만, 한 자리에 누워있는 것은 

답답하고 재미없다. 움직임과 변화가 있음은 다행이고, 달라지는 상황 속에 처한 내 자신이 참신하게 느껴진다.


2019년의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얻은 것과 잃은 것들이 존재한다. 아주 가까운 친구와의 사이에 전과 달리 벽의 

존재를 감지하기도 했다. 어떤 친구와는 함께한 오랜 시간 덕분에 이해의 광장이 더 넓어짐을 느꼈다. 미주중앙일보에 

한 달에 한 번씩 보내는 글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신문에 사진과 함께 의견이 실려도 지인들이 다 알지 

못해서 좋다. 인지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런 점에서 신문사가 내 사진을 요구할 때의 걱정이 말끔이 씻겼다. 쓰고싶은

주제를 정하고, 생각하고, 분량을 맞추려 애쓰고, 욧점을 확인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다. 


어금니 치아를 하나 뽑고 임플랜트를 박았다. 치아가 깨지지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옛날에 태어났다면 탈난 

어금니를 어쩌지 못해서 힘들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마른 몸은 더 축날 것이고 맛있는 음식도 고통과 연결시켜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임플랜트를 한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올 해에 가장 기뻤던 일은 아들과 딸이 주택을 구입해서 이사한 것이다. 집이 시장에 잘 나오지 않고 집값 높은 LA에서. 

아들은 미래의 가능한 재정을 감안해서 가장 좋은 지역에 위치한 가격 높은 집을 사서 수영과 농사를 취미삼아 소유권을 

최대한 즐기고 있다. 딸은 자신의 재정 상태에 아주 적절한,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찍은 '스마트'집을 사서 

"꿈의 집"이라며 하하호호 한다. 정말 운이 좋았다. 부동산 시장이 약간 가라앉은 순간에 구매가 이루어진 덕이다. 하지만 

동네 블락에서 새 집인 덕에 가장 비싼 집이므로 판매 시에는 아주 매력적으로 집을 손봐야 바이어를 끌 수 있다. 사는 

동안은 크게 신경쓸 것이 없다. 엄마로서 더 이상 기쁜 일이 없는 심정이다.


올 초 방탄소년단이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 올려주고 미국 유명 방송국과 시상식에 출현해서 현란한 군무로 눈을 

즐겁게 했다면, 후반기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인의 관심을 잡았다. 나는 내용을 대충 알고 있어서, 

지금까지 관람 보다는 봉준호 감독의 대단함이 관심사였다. '기생충'은 올 5월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을 

선두로 6월에는 시드니 영화제의 최고상, 그리고 11월 초에 할리우드 필름 페스티발에서 영화 제작자 상을 수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매 년 추천하는 영화 리스트에도 들었다. 아카데미 시상 가능을 점치는 영화 평론가들이 다수다.

애들도 주위에서 외국인들이 '기생충' 내용에 관해서 질문을 한다면서 날을 잡아서 관람했다. 결국 나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최근에 두 주를 벼르다가 미국 극장에 다녀왔다. 한국 영화관인 LA CGV 에서는 이미 끝나서 미국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독보적이고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이지만 너무 잔인해서 내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칼로 사람 여럿을 살해하는 장면이 뇌리에 박혔다. 그래도 무척 자랑스럽다.



참, 식구도 늘었다. 딸이 둘째를 출산했다. 식구 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모이면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커졌다. 정신과 

물질적으로 큰 부자가 된 기분이다. 기쁨과 행복은 내가 신경쓰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의 에너지를 받을 때에 커진다. 

그럴 때는 뒷마당에 크리스마스 장식 처럼 길게 매단 여러 줄의 전구들이 바람에 몸을 싣고 춤을 출 때 처럼 가슴이 

출렁거린다. 전구가 생산한 전기가 내 머리 속에도 불을 밝히는 듯하다. 운좋은 2019년이었다는 생각이 돌풍처럼 일었다.


흐르는 시간은 그 움직임으로 희로애락을 만든다. 나는 그 움직임의 세계 안에서 희로애락을 친구삼아 순응하면서 

살고싶다. 어느 날은 더 웃고, 어느 날은 더 힘들고, 어느 순간은 더 신나고, 어는 순간은 고통으로 부셔져도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겠다. 모든 희노애락은 움직임 속에서 지나갈 것이니까. 나는 여전히 기다림을 알고, 꿈을 꾸고, 

배움의 욕구가 있고, 마음과 몸은 담백하다. ㅎㅎ 


2020년을 기대한다. 

그 시간이 오면 매일매일 순간에 침잠해서 살고프다. 

새 날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면서 살고프다. 

2019년, 아쉽지만 미련없이 good bye! 

나는 새로운 시간에서 활력을 찿고 주어진 내 몫을 다하려고 애쓸 것임을 다짐한다.


                점차 빛을 잃어도 다년생 나무 처럼, 꽃 처럼 다시 돌아올 수 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