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fornia 이야기

[열린 광장]'코리안 아메리칸"의 단풍 여행

rejungna 2020. 11. 9. 08:0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HOME&source=&category=opinion&art_id=8801802

 

(11월 2일 미주 중앙일보에 나온 글이다. 글이 신문에 프린팅된 후에 읽으면 항상 아쉽다. 길이를 줄이거나, 혹은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어긋난 글자들이 정정된 후에는 내 뜻과 아주 조금 달라진 경우가 많아서다. 또 좋은 글이

못된 아쉬운 느낌 때문이다. 어쨋든 블로그에 옮긴다.)

 

 

[열린 광장] ‘코리안 아메리칸’의 단풍 여행

가을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 비숍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는다. 수없이 오르고 내리는 산과 구릉과 언덕길은 옛친구 같이 친근하다. 사막지역 찻길 따라 길게 늘어선 키 작은 노란 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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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 비숍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는다. 수없이 오르고 내리는 산과 구릉과 언덕길은

옛친구 같이 친근하다. 사막지역 찻길 따라 길게 늘어선 키 작은 노란 브리틀부시 꽃은 한국 가을의

코스모스 무리처럼 사랑스럽다.

 


매년 10월이면 엄마를 보려고 한국을 방문했다. 이 연례행사는 쉼없이 25번을 넘었다. 그런데 세상이 뒤집힌

올해는 차마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고국산천을 날고 낙엽쌓인 거리를 누비며 치매있는 엄마와의 소통을 고뇌하고 있었다. 여기에

비숍 단풍 여행을 생각했다.

내 제안에 딸은 “극우 백인우월주의자가 무서워서 대선 전에 소도시로 떠나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라며

우려했다. 무슨? 캘리포니아인데. 결국 매 시간마다 애들에게 문자할 것을 약속하고 동트기 전에 집을

나섰다. 8개월만의 집콕 탈출이다.

 

어슴푸레한 프리웨이에서 일출과 인사 나누고 팜데일과 랭캐스터를 지나 모하비 시를 지났다. 비숍 가는

길은 익숙하다. 프리웨이 14번이 395번으로 바뀌면 세코이아와 킹스캐년 국립공원을 품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한동안 왼 편 길동무가 되어 준다. 오른편에서는 산과 들을 넘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낮은 땅인

데스밸리가 손짓해서 외롭지 않다.

 


대륙의 저점을 지나면 반대쪽에 미국서 두번 째인, 가주에서는 제일 높은 휘트니산이 험준한 위용을 자랑한다.

이어서 로운파인과 인디펜던스와 빅파인 시골 도시들을 차례로 지난다. 그러면 곧 비숍이다.

단풍 여행은 30분 거리의 사브리나 호수로 가는 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도착한 호수 주변의 풍경이 아쉬웠다.

그래서 비숍 크릭의 북쪽 지류를 막아 형성된 고도 9361피트의 노스 호수로 향했다. 가는 길 한쪽은 절벽으로

풍광이 좋고 주변 가을은 무르익어 있었다.

이어서 거주민 75명의 작은 마을인 아스펜델에 들어섰다. 그 순간 숨이 멈추었다. 샛노란 사시나무 숲이

깊어진 가을에 떨고 있었다. 이름도 ‘Quaking(떠는) Aspen’인 사시나무들이 일제히 작은 바람 리듬을 타는

광경에 황홀과 흥분이 차오르고 세상은 차단된다.

 


사실, 달리던 시간 내내 집 나선 보람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쓸어내린 듯한 계곡을 품은 산들, 태양 아래

여기저기에 서서 기도하는 조수아나무, 잿빛 사막을 식혀주는 서너 그루의 초록 나무들, 긴 시간 동안

어깨동무해준 산들, 까만 점들 같이 군락을 이룬 검은 소떼의 목장, 그리고 계절에 순응한 확트인 노란 들판은

건조한 마음에 살짝 윤활유를 뿌려준다.

비숍여행은 코로나19와 미국의 국가위상이 달린 대선 등의 불확실한 현실에서 고개돌린 숨통트기였다.

그런데, 딸아, 놀랍게도 비숍은 ‘코리안 아메리칸 우월주의자’들의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