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하다고 어는 시인은 말했지만 따스한 햇살과 만개한 예쁜 꽃들이 마음을 녹이는 달이다. 큰 나무에 촘촘하게
달린 무심한 나무가지들은 작은 바람에도 기꺼이 경쾌하게 좌우로 스텝을 밟는다. 더운 여름날에 나무에 길게 매달린
해목(hammock) 이 떠오른다.
건축이 필수업종으로 지정되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4월 초에 집 앞마당과 뒷마당에 무성하게 자랐던 잔디
대신으로 가뭄에 강한 선인장 종류의 식물들을 심는 조경공사를 단행했다. 산뜻하다! 저녁이면 땅거미와 함께 잠을 깬
예쁜 전등들이 어둠을 고즈녁하게 밝혀준다. 눈이 호사롭고 마음이 편온해져서 마당 앞의 거실 창문 곁에 앉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자연의 화폭이 찬란한 4월에도 코로나바이러스는 캘리포니아에 5 만의 감염자와 2 천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다.
절망적인 환자들을 진단 치료하는 병원과 의사들의 노고는 크게 회자되고 이들의 애타는 개인적 사투는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치료에 필수적인 보호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애끓는 하소연을 한다. 얼마 전에 LA타임즈가
의료진들의 코비드19 감염 상태를 조사 보도했다. 4월 15일 까지 감염된 캘리포니아 의료진들은 3,000명이며,
UCLA 병원의 감염된 의료진은 175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병원은 의료진의 감염 상태를 밝힐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높다고 추측했다.
아들은 UCLA 병원의 호흡기와 중환자실 의사로 말 그대로 최선전에서 근무한다. 웨스트우드 병원과 산타모니카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보통은 버뱅크 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한다. 물론 나는 아들의 근무 스케줄을 다 모른다.
하지만 UCLA 병원 의료진의 감염 보도를 접한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태풍의 눈 안으로 들어섰고 애써 찿은 4월의
잔재미는 시들해졌다. 지금까지 걱정은 했지만 "괜찰을거야"라는 씩씩한 무심함으로 편히 지냈던 것 같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게 큰 소리치고 최상의 경제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미국이 아까운 의료진들을 보호할 장비 조차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염을 무릅쓰고 사력을 다하는 의료진들의
보호장비 부족을 보고받은 순간 Defense Production Act (방위생산법)을 써서 국가 주도로 대량 구입을 명령하고
거시적 분배를 지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로비스트들의 말을 더 중요시해서 주정부, 시정부, 병원들이 직접
매입에 뛰어들고 부족한 물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입찰하도록 만들었다. 다급한 정부와 병원 실무진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간 브로커들의 농간에 말려들어서 엄청난 돈을 손해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행히 UCLA 병원은
보호장비가 부족하지 않다고 들었다.
5월을 코앞에 두고 경제 재가동 문제로 대통령과 주지사들이 의견을 달리하고, 코로나 확진자의 정점이라는 반가운
소식은 증폭한 사망자 뉴스와 뒤섞인다. 하지만 미국은 점점 경제 재가동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재선을 염두에 둔
트럼프는 이를 부채질한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는 주지사가 사람들이 집에 머물기를 강력하게 권하지만 다른 지역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어서 5월 중순 부터 닫힌 사회를 열 것 같다. 이미 벌써 차도에는 차가 많아지고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오랜 집에 머물기에 지친 사람들이 기회만 엿보다가 빈틈 사이로 빠져나오는 것 같다.
관념과 실제가 뒤죽박죽이고 희망과 현실이 부딪친다. 머리는 이성적인데 발은 여전히 탁한 물에 잠겨 서있다. 담담한
아들의 무사함을 간구하는 기도는 저절로 절실해졌다. e스포츠 회사에 근무하는 딸은 한가한 유명 스포츠인들이
앞다투어 벌리는 프로게임머들과의 컴퓨타 게임으로 더 바빠졌고 잘나간다. 다른 병원의 의료진인 사위는 비뇨기과
전공 덕분인지 코로나 환자 치료 교육을 받았지만 수술 환자가 없어서 여유롭게 재택근무하면서 원격진료와 처방한다.
하지만 이 병원도 이번 주부터 긴급 환자들의 수술을 시작으로 문을 조금 더 크게 열고있다.
“이제 오빠네 식구는 우리 집에 못오지?” 딸의 말이 내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오빠보고 오지말라는 뜻인가? 가뜩이나
사회적 거리 지키기에 열심인 아들이 더 멀리 서있는 것이 보인다. 창밖의 알로에 선인장 4개에 벌써 긴 꽃대들이
하늘 높이 쭉쭉 뻗어났다. 3주만의 놀라운 생명력이다. 잔인한 4월은 가고 희망이 선명하게 보여서 많은 이들의 상처가
조금은 아무는 5월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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