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질이나 정체성은 어디서 생성되어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김치 냄새를 진한 커피 향으로 덮고, 현대식 건축 양식으로 화려하게 지은 빌딩의 찻집에서 전통차를 마시는 한국으로의 여행은
자유로움과 여유로움 속에서 나를 뒤집어 보는 기회를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본질은 유전자의 변이처럼 미국화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법치주의, 종교적 색채가 혼합된 미국식의 사고와 다문화 안에서 사는 탓에
복잡하고 경쟁적이며 화끈한 한국 사회의 다세포적인 생활 보다는
건조한 LA 의 날씨처럼 단순하고도 남의 눈을 상관치 않는 단세포적인 생활이 편하고 익숙해져서
가끔은 멍청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자조적인 생각도 하지만
자유스러운 미국과 캘리포니아 날씨를 사랑하는 Korean-American 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한국서 태어난 Korean 으로 부모 덕에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릴 때 부터 엄마 보다는 아버지를 더 따랐다.
친구들과 떡볶기와 냉면을 즐겨 먹고 팝송과 외국 영화의 매력에 빠졌던 평범한 학창 생활을 지냈다.
내 또래와의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루기 위해서 도시락을 두 개씩 싸들고 등교하면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불교 문화와 사상에 매력을 가졌었고, 아주 애국적인 국가관을 갖고 자랐다.
대학에 들어 가서는 남산에 위치한 독일 문화원을 통해서 유럽을 동경했으며, 몇 번의 미팅과 축제 참석도 해 보았다.
"여자라서 불편한 것이 없다"는 주관으로 자신이 특별한 줄로 착각한 20대 초반을 보냈으며, 강단에 서는 꿈을 가졌었다.
대학원 일 년차때 주님을 받아들여 종교관의 커다란 변화를 경험했다.
운명의 화살이 틀어졌는지, 20대의 중반부터 미국 LA 를 제 2 의 고향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가정을 이루었고 미국식 재교육을 받은 결과로 세 종류의 직업 경험을 했다.
애들 학교의 PTA (학부모회) 임원으로 한인 부모를 위한 통역과 학교 행사에 직접 참여하면서 미국 학부모들의
교육 방식에 관한 이해와 미국인들의 넓은 사고 방식을 알게 되었다.
real estate agent 가 되어서 미국 경제의 기본적인 움직임과 부동산 동향의 이해와 높은 수입도 올려 보았다.
small business 를 spanish 사람들과 함께 경영하면서 이 들의 문화, 순박함, 단순함, 느리지만 변함없는 일관성,
가족 중심의 생활, 자유스러운 도덕관 등을 통해 다문화의 경험을 얻었다.
회계를 공부한 탓인지 세법이 흥미로왔다.
작년부터 두 집 건너 사는 이웃인 변호사 아줌마의 뜻밖의 추천으로 재미있게도 주민회의 이사가 되었다.
Korean-American 들의 주민회의 참여를 고무할 목적으로 마련된 자리인데,
덕분에 한 달에 한번씩 미국 토박이들과 LA 시 행정 결정의 영향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주택들의 보존, 치안 문제를 토론한다.
또, 가장 미국적인 특성인 town hall meeting(주민 공청회)에서 주민이 내는 목소리의 힘과 중요성을 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미국서 살기를 원하는 딸과 아들을 둔 엄마이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의 현존은 어디에?
여행은 계속된다. 비행기 안에세 제공하는 쌈밥과 쌈장에 입맛을 다시면서 동쪽으로 계속 날고 있었다.
매일 잠자고 밥을 먹고 일하는 일상이 있는 공간과 시간을 뒤로 하고
저 멀~리 바다를 건너 다른 땅덩어리에 뿌리내린 이질적 문화 속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라가면
야릇한 흥분과 기대감이 영혼을 툭 치는 것 같다.
비록 목적의 땅이 미지의 낯선 대지가 아니라 내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기에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곳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뛰는 가슴을 안고 그리운 이 들이 숨쉬고 있는 한국으로 12 시간 반 후에 인천에 드디어 도착했다 .
아직도 미국의 가족과 집, 일들이 내 뒤통수를 계속 서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지만
"이 멀리서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자조하면서 두고 온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는 진짜 여행이 이제 시작되었다.
좁은 길에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넘쳐나는 사람들, 건물 앞과 옆에 무수히 붙어있는 총천연 색의 간판들,
날이 기울수록 더 대담하게 펼쳐지는 길가의 노점들,
곳곳에 세워진 포장마차 안에서 손님을 유혹하는 먹음직한 음식에서 삐져나와 하늘로 올라가는 따뜻한 김들,
목도리로 얼굴을 거의 가리고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의 튼 손,
커다란 상자를 들어서 앞이 안보이는 것 같은데도 용케 흔들림 없이 잘 걸어가는 젊은 총각,
보도에서 요리조리 보행자를 피하면서 물건 실은 자전거를 방력있게 운전하는 아저씨,
지나가는 차량에는 아랑곳 없이 좁은 골목 길을 막고 버티면서 비켜달라는 소리에 되래 큰 소리를 치는 수레를 끄는 아저씨,
교통 질서란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내 마음대로의 주차를 한 꽉 막힌 골목 길,
음식점들과 카페와 옷가게로 채워진 큰 길 뒤의 부산한 뒷 길, 화려하다!
이 길들을 채운 멋쟁이 아가씨와 아줌마 그리고 검은 색 양복 일색의 아저씨들,
아파트 주위의 운동터와 산보 길을 열심히 보행하는 건강에 신경을 쓰는 남녀노소,
한국인들은 한국의 시내 어느 길에서나 넘친다, 바쁘다, 부딪친다, 웃는다, 큰 소리로 떠든다, 무표정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서 사람 냄새가 배어 나온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 숨이 차고 목이 마르기도 한다.
생활의 힘듬과 노고가 스며 나와서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도 각박한 것 속에서 훈훈하게 즐기는 인생이 보인다!
바로 이런 것들이 그리워서, 그리고 모자란 듯하지만 넘쳐서 나까지도 채워즐 수 있기에
한국에 오면 전기에 갑자기 감전된 듯이 재충전을 할 수 있나보다.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별명답게 다양한 디자인, 위치, 가격의 아파트의 숲 속에서 작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 친정 집이
있는 분당의 한 아파트이다.
그리고 정성들여서 월동 준비를 시켜준 아파트 속의 나무들 겨울 옷이 내가 다니던 대학 교정의 나무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정겨웠다.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탄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운동 공간이 어찌나 잘 가꾸어져 있는지 내심 부럽다.
운동하는 시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물 가에서 떼를 지어 시끄럽게 꽥꽥 거리는 오리들이
자연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수준 높은 한국의 힘을 실감나게 했다.
여러 개의 광고판을 붙이고 동네를 달리는 노란 색의 마을 버스가 인상적이다.
학생 때에 많이 다녔던 길 중의 하나인 종로 거리이다. 그 때는 명동과 종로가 복잡함의 상징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국에 익숙해진 눈으로 옛 길들을 바라보니 좁고 답답하고 복잡하며 모든 것들이 작게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색다른 화려함들과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나는 쥬스를 급하게 마시듯이 이 것들을 들이키면서 서있었다.
종로의 뒷골목을 걸어가면 온갖 냄새들이 공기에 다 떠다닌다.
음식, 매연, 화학 약품, 먼지 냄새들... 퀴퀴하다!
그런데 바로 이 냄새가 조국의 냄새이고,한국 역사의 냄새이며,사람 사는 냄새인 것이다.
거리에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타서 자신들의 목적지로 달려 가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넘친다.
이 들이 바로 지금의 한국이 있게한 원동력이며 나라의 부를 창조한 한국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 많은 이 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들의 본질과 정체성은 변하지 않고 제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매년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으로 뿌리 여행을 하는 세계 각국에 사는 한국의 피를 가진 한인 교포들!
이 들은 진정 세계화의 주역으로 한국의 근면, 두뇌, 적응력을 보여준 사람들이기도 하며,
멀리서 조국의 발전을 열열하게 응원한 사람들이다.
나도 그러한 한 사람으로 나의 과거로 향한 여행의 첫 발걸음을 떼었다.
가슴을 과거의 추억으로만 채우지 말고 현실감이 넘치는 생생한 꿈으로 채운 후에
LA 삶으로, 현실로 comeback 하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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