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아들의 길과 미국의대 진학 (아들아! 행복하니?)

rejungna 2008. 4. 10. 03:38

토요일에 뜨끈한 LA 를 떠나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약 5시간을 날라서 아들이 있는 조금 선선한 곳으로 왔다.

이곳에 오니 생각보다 따뜻하다!

의대생으로 병원 rotation 을 시작한 아들이 엄마가 와서 잠깐 자신을 돌봐주기를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여행이다.

정돈을 잘못하는 습관도 알고 있었고, 바쁘게 지내는 생활이라 짐작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이의 아파트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OH, MY GOD!!!!!!!!!!!!!!!!!!!!!!!!!!!!!!!!!!!!!!!!!!

아파트의 거의 모든 공간이 옷가지, 책, 물건들로 덮혀있었고, 부엌에는 설겆이하지 않은 그릇들과

씻은 후에 제 자리로 가지 못한 그릇들로 난장판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 있니? Shame on you!"

 

목소리를 높인 후에 멋적게 웃는 아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짐도 풀지 못한채로 

설겆이를 시작했고, 거실을 정돈하고 화장실을 닦은 후에 잠자리를 펼 수 있었다.

어쩌면... 생각이 비약했다.

이런 아이를... 도체 어떤 여자가 진심으로 사랑해줄까? 엄마도 깔끔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미안한 아들은 엄마가 와주셔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내일 저녁은 친구들과 함깨 저녁을 먹자고 한다.(물론, 돈은 내가 내야하지만),

아침에 병원에 갈 때는 엄마는 산보로 같이 걸어 갔다가 돌아오라고 했고, 내가 쓸 수 있게 자신의 컴퓨터도 개방하고,

먹고싶은 설렁탕을 얼려서 많이 가져온 엄마가 예쁘단다.

애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기도 막히지만, 내리사랑이라고 아들이 믿음직하고 좋으니 어떡하냐!

누런 변기 속을 솔질하면서도 아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기쁘니, 역시 나는 변함없는 바보 엄마인가보다.

 

아들의 병원으로 산보를 다녀온 후에, 혼자서 잠시 지금까지의 아들의 길을 생각해본다. 

 

아이의 미국 이름은 어거스틴이고 의대 이년차이다.

엄마로서 augustine 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머리좋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한다.(미국서 자라서 정말 때뭏지 않고 순진하다.)

그리고 내 눈에는 handsome 하기도하다... :)

키우면서 자랑스러운 일들이 많았다고 기억되는 아이다.

 

대학부터 동부에서 공부를 하고있으니 벌써 여러 해를 LA 의 집을 떠나 살고있다.

하지만 나중의 의사 생활은 LA 지역에서 하고, 그 곳서 자리를 잡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있다.

나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의대를 가기를 희망했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특히 여자 아이들의 인기와 어른들의 기대치가 높았던 아들에게

한국서 성장한 보통의 엄마가 별로 아는 것 없이 맹목적인 마음으로 품었던 절음발이 같은 희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국서도 의대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수고 후에 입학한 대학에서부터 다시 오랜 시간의 준비와 경험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의대 입학 평균 연령은 상당히 높으며, 박사학위를 갖고 입학하는 학생도 여럿있을 정도다.

의대에 들어가서는

2,3,4 학년을 마칠 때마다 세번에 걸쳐서 의사 국가고시를 치고 붙어야 졸업 후에 자격증을 받는다.

그 후에는 3년 정도의 residency 훈련과 전공분야를 튼튼히하기 위해서 fellowship 을 여러 해 하기도한다.

 

영어와 수학을 거의 같은 수준으로 잘했던 아이는,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의대를 목표로 대학도 결정했다.

그러나 2 학년 부터 아들은 흔들렸었다. 철학에 심취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늦은 사춘기의 방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이 엄마는 사십이 넘어서 사춘기를 치른 것 같았으니까...

결국은 철학과 뇌의학 (philosophy and neuroscience) 를 전공으로 선택했고, 자신이 철학 교수가 되면 어떠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현실적인 이 엄마는 "하필이면 철학교수이냐!" 하며 난감했었다.

풀수 없는 인생과 인간의 존재의 난해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살고 싶은 아들의 뜻에 가슴이 철렁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의대에 입학하려면,

대학 2 학년이 끝나는 여름이나 3 학년 초에 MCAT(의대 입학자격시험)을 치러야한다.

3,4 학년에는 의대 진학 필수 과목들을 이수해야하고, 학교 성적, MCAT 시험 성적, 추천서, 에세이를 토대로 

4 학년이 시작되기 전 여름방학부터 원하는 적합한 여러 대학에 지원서를 낸다.

학교는 우선 서류심사를 하고, 원하면 학생에게 interview 를 하라고 연락을 보낸다.

학생은 연락을 받는대로 학기 중에 인터뷰를 위해서  교수의 허락을 얻고 넓은 나라에 펴져있는 여기저기에 원서를 낸 댓가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주어진 날짜에 interview 를 해야하는 고된 과정을 감내해야한다.

 

입학 경쟁이 심하다보니 대학 사년간의 학점 관리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해야하고,

방학이면 연구소에서 research 도 해야하며,

병원 봉사로 병원 일도 경험해야하고 지도 교수에게 자기를 알리는 기회도 갖어야한다.

결국 즐겁게 보내야할 대학 사년간을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데에만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성격이 느긋한 아들은 많이 놀고 마음이 흔들리다가

3 학년이 끝난 후의 여름방학에 또 한번의 마음의 변화를 거쳐서 MCAT을 보았고,

결과가 그런대로 만족스럽다며  그것으로 의대 지원서를 내기로 결정했다.

MCAT 의 결과는 3 년간 유효하며, 보통은 2,3 번을 보고 높은 점수를 고르는 것이 통례이다.

 

아이는 대학에 들어 갈 때도 11학년이 끝난 여름 방학 때에 학원에서 10 주간 SAT 공부를 한 후에 딱 한번의 SAT 를 보고

그 성적으로 대학 지원서를 낸 경력이 있는 단순한(?) 아이다. 욕심이 있던 나와 학원 선생은 몹씨 섭섭하였지만

고집을 꺾지 못하였었다.

물론 고등학교의 미국 counselor 는 이만하면 충분하니 아들이 하고 싶은대로 결정해야 한다고 훈수를 했다.

이곳은 미국이니까...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니까...

 

어거스틴은 대학 졸업 후에 바로 들어가고 싶어도 일년을 기다려야했다. MCAT을 3 학년이 끝난 여름방학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년 짜리 대학원 코스를 택했다.

마침, 다니던 대학에는 의대 진학 학생이 많아서 2 년 대학원 과정의 60 학점을 일년만에 이수해야 하지만

눈문을 쓰지 않아도 석사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학비가 더 들은 것이다.)

 

biology (생물학)을 또 하나의 전공으로 택하고, 짬을 내어서 뇌신경에 대한 research를 했기에

그야말로 날라가듯이 일년을 보내야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친구들과 노래방도 가고, Washington D.C. 에서 있었던 한국 학생들 모임에도 차를 빌려서 참석했고,

미약하나마 동아리(fraternity) 활동도 했다고 한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이렇게 편안한 성격이어서 항상 최고는 못되고 바로 그 밑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어쨋든 좋은 대학으로부터 2006년에 의대 입학 허가서를 받아서 많은 축하를 받으면서 그 해 7월에 의대 생활을 시작했다.

의대 1,2 학년은 의대서 가르치는 모든 기본 학습 과정을 배우는 것이며,

의대 3,4 학년은 병원서 rotation 을 하면서 모든 department (과) 을 4 - 6주 씩 rotate 하면서 실습을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벌써 어거스틴은 인턴(레지던시 일년차) 한명, 레지던트 2명, 의사 한명, 이렇게 5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의사 실습을 시작한 것이다.

아들의 학교는 3 학년이 되면 3개월의 research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므로,

2 학년을 마치기 전에 3개월 미리 rotation 을 시작하게해서 3,4 학년의 실습기간을 채우도록 하고있다.

그래서 아이는 5 주간의 Internal Medicine(내과)를 시작으로 3월 마지막 주부터 병원 생활을 맛보고 있다.

 

어거스틴에게 물었다.

"Do you like what you are doing now?"

"Are you enjoying your work at hospital?"

"Do you think you made a right choice?"

물론이란다. 아주 재미있단다. 어제 생전 처음으로 환자의 작은 상처를 바늘로 꼬맺다고 흥분한다.

그러면서 엄마는 꼬맬 곳이 없느냐고 묻는다.

 

ㅎㅎㅎ

아들아! 네 나이의 인생은 길단다.

지금의 흥분이 오랫동안 지속될수 있기를 엄마는 바래.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에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실컷하렴. 배운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잖아.

물론, 우리의 삶 자체가 배우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병원 일이 재미있다니 엄마는 아주 기뻐.

 

나는 네가 더 이상 Immanuel Kant, Friedrich Hegel, Bertrand Russel, Ludwig Wittgenstein 을 논의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여.

그들은 나중에 네가 삶에 지쳤을 때에, 내가 아직 철학을 논할 능력이 있을 때에 다시 논하도록 하자.

설마 그 때도 나에게 Rousseau(루소) 의 교육론 책을 읽으라고 들고오지는 않겠지?

하지만 나는 너의 그러한 지적 능력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단다!

너의 길을 find 것 같은 네가 고맙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일을 배우러 가기에 아직 날이 어둡다.

 

 의대생은 긴 하얀 가운을 입지 못하고 짧은 가운을 입는다. 그러나 환자들에게는 의사 대접을 받는다.

 

걸어가는 모습이 뒤에서 보기 좋아서 몰래 살짝! 

 

병원의 복도인데 미술품들이 걸려있고 아름답다.

 

병원의 cafeteria 와 atrium 이 함께한 이 휴식의 공간이 좋아보였다.

 

 아이가 사는 아파트의 모습이다. 병원과 관계된 직업인들과 학생들이 주로 살고있다.

 

 LA 를 떠나 살아도 LA의 농구팀 Lakers, 야구팀 Dodgers, 미식축구팀인 USC Trojans 에 환호하며

이들의 게임을 꿰뚫고 있다.

 

친하다는 친구들에게 비싼 스시를 사먹였다. 그것도 아들이 엄마를 생각해주는 듯한 배려로 말이다.

But, I had a good time with them. 

 

동네 마켓에 가기 위해서 내가 걸어가는 길이다. 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많다. 

 

 산보 길에  반갑게도 어느 집 앞에 서있는 개나리를 만났다. 아직도 피지않은 꽃들이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