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8월도 다 지나간다.
한달 남짓해서 집에 와있던 아들도 시험을 마치고 토요일 학교로 돌아갔다.
두주 동안 방문했던 친구의 명랑한 딸 셋도 즐거웠다면서 입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서울로 돌아갔다.
왠지 떠난 자리가 빈 것 같아서, 공허함과 허전함이 남아있는 8월의 마지막 날들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었다.
마침, 친구가 한국 농심이 새로 출시하는 둥지 냉면 한 상자를 마켓서 사면 음악회 표 두장을 거저 준다고 하면서 나에게
냉면을 구입하자고 말했다. 시간은 일요일 오후이며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이벨 극장이니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렇게 해서 금난새와 함께하는 오페라 여행 “카르멘” 을 관람하게 되었다.
어제 오후에 운동화를 신고 공원같은 주택가를 지나 공연장인 Wilshire Ebell Theater 로 걷기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의 맥빠지고 나른한 몸을 아무 생각없이 천천히 발걸음을 따라서 움직였다.
20분도 채 않되어서 집에서 남쪽으로 5 블럭 떨어진 이벨 극장에 도착하니 주차장과 동네 길은 차들로 빽빽이 차있었다.
갑자기 정열의 여인 카르멘의 기를 받은 듯이 정신이 가다듬어지면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대부분이 가족들, 부부들과 연인들인 한인들이었으며, 그들의 모습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금난새씨가 지휘하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전날 밤에는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Disney Hall 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무대가 올려지자 금난새씨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음악에 따른 오페라의 내용과 배경을 아주 유머스럽고도 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공연에 점점 빨려들어갔고 그의 리드에 따라 브라보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대충 알았던 내용과 음악을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을 하게되니 이 공짜의 공연은 점점 값진 공연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이 넘는 짧은 공연이었지만 핵심과 욧점이 잘 표현되어서 전체 공연을 듣지 않았어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으며,
음악에 귀를 기울인 나는 마치 시원한 폭포 밑에 서있는 짜릿한 유쾌함에 빠져들었다.
1 막의 전주곡, 3 막의 간주곡과 함께
불려졌던 하바네라(Habanera), 꽃노래(Flower song), 피날레(Finale) 의 아리아들은 아름다웠으며,
노곤한 오후의 지루함을 한꺼번에 날리기에 충분했다.
공짜 무대인 냉면 홍보 공연장이 유난하다고 생각했던 처음의 나의 마음은 활짝 열렸으며,
선전을 위해서 LA 교포들에게 좋은 무대를 마련한 회사 측도 성공을 거둔 행사였다고 생각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의 하나인 비제(George Bizet) 의 카르멘은
열정이 넘치지만 변덕스럽고 조금은 유치한 집시 여인 카르멘의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나 공연을 보면서 본능에 충실하게 살았던 한 여인의 죽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까지 부르는 비극적인 결말은 곤란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한번 쯤은 바보같이 사랑에 목숨을 걸어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아마도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는 화끈한 사랑을 그녀는 했기 때문에
그녀의 정열에 빠져들면서 카르멘 음악에 더욱 더 매료되는 것 같다.
아주 편안하고도 즐거운 오후 한때이었다.
하바네라를 열창하는 메조 소프라노 김정화씨
꽃노래를 열창하는 테너 하석배씨
피날레의 카르멘과 돈호세이다. 카르멘이 돈호세의 칼에 찔려 죽는다.
이부 공연에는 Tchaikovsky 의 1812 Overture 가 연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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