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또 청해봐도 벽시계의 바늘은 새벽 1시, 1시 반, 2시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LA 시간으로 바꿔보면 오전 9시, 9시 반, 10 시니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시간으로 불평할 처지도 못된다.
내가 살고있는 LA 가 부수적으로 만들어낸 모든 일상과 주변 문제들을 뒤로 하고 3 일 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 오면 미국의 생활이, 그리고 미국에 돌아가면 한국의 방문이 꼭 꿈만 같은 친숙한 경험을 또 한번 하게 될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내 삶의 주무대인 LA 를 벗어난 한국 방문의 기간은 잠시 접어두는 시간, 즉 나를 찿는 시간이다.
지난 과거를 더듬으며 현재와 미래와의 연결을 찿고, 미래의 원만한 설정을 위해 지나간 시간의 줄을 당겨보는 pause 의 순간들이다.
간혹 정지되어 현실성이 결여된 상실의 느낌을 갖기도하지만, 아직은 과거를 찿아가는 이 여행을 사랑하며 이것을 즐기고 싶다.
예정보다 일찍 이른 새벽에 도착한 비행기는 분주한 하루의 일정을 미처 시작치 못한 어두움이 깔린 공항에 나를 내려주었다.
새벽의 여행자들로 거의 채워진 리무진 버스를 타고 분당으로 들아오는 길은
어둠이 밀려나면서 드러나는 거대한 공룡같이 둔탁하게 대도시의 분주해지는 모습을 정겨우면서도 이질적으로 펼쳐보이고 있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멋지고 예쁜 다리를 몇개나 지나서 달렸는지 모르지만, 다리 아래와 옆으로 흐르는 한강 물은 여유롭고 아름다웠다.
달리는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저 멀리 물 위를 지나서 빌딩 위로, 산 위로 떠오르는 거대한 뻘간 공과 같은 서울의 태양은
가슴이 벅찰만큼 아름다왔다. LA 에서 떠오르던 태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장소와 감정의 변화 때문일까?
나의 목적지인 서현역은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들이 즐겨 애용하는 많은 대중 교통 수단들로 LA와 적이 대조가 되는 모습이다.
LA 에서는 차가 없으면 꼼짝을 못하건만... 한국민들은 편하겠다. 운전을 않해도 목적지에 갈 수 있으니...
방문 때마다 짐에 눌리면서도 역시 보따리가 많은 나는 세상 어디를 가도 한국인의 피가 흐름을 보여준다.
엄마가 필요한 물건들도 있지만,
걸리는 사람들에게 입을 닫지 못하는 탓에 이번에도 가방 세개를 끌고 운전사 아저씨의 눈치를 보면서 택시에 올라탄다.
"죄송하지만, 아저씨 짐좀 실어주세요. 사례를 할께요." 이렇게 말하면서 한국에서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사례를 해도 그 돈이 그 돈이라면서 내심 좋아한다.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새로 개통하고(외국인이라서 본인이 없다고 갖고있던 번호가 취소되었다),
계획을 적은 메모지의 목록들을 훌터보면서 편의대로 순번을 정해본다.
이렇게 며칠 정도 뛰고나면 방문 목적의 반쯤은 채워지고, 갈 때까지의 나머지의 시간을 엄마와 보내면서
짬을 내서 내 욕구도 채우지만, 마음 속으로 부터 다시 LA 에 돌아갈 태세를 갖추려고 할 것이다.
오기 한달 전부터 마음을 이곳에 두고 지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방문 전의 시간들은 가끔 나에게 현실이 결여된
공중에 뜬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틈틈히 한국 체류의 맛을 보기 위해서 사람 많은 길가의 포장마차, 재래 시장, 쇼핑 센타와 식당을 기웃거려 본다.
비싼 명품이나 화려한 쇼 윈도우의 멋들어진 장식과 물품들은 곁눈질로 보는 정도면 충분하고
한국에서 살았을 적에, 그리고 방문을 했을 적에 머릿 속의 필림에 저장된 장면들을 무식식 중에 찿고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가 기억과 연상되는 무엇이 눈에 띄면 갑자기 가슴이 뻐끈해지는 충만감을 느낀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들리는 돌고래 상가이다. 이 곳은 나와 아버지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이 곳서 파는 만두를 처음보고 먹고싶어서 물끄르미 바라보면서도 사먹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던 나에게
아버지가 직접가셔서 만두를 사오셨었다. 먹고 죽지 않는다시면서... ㅎㅎ
또 하나의 방문 목적인 엄마 곁에서 지내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기분좋아하시는 것들은 생각해 본다.
함께 병원을 가는 것, (병원 방문을 자주 하신다),
그리고 의사에게 많은 질문을 해서 이미 알고 계시는 것도 설명해 드리는 것,(여러 의사 분들도 만나신다)
엄마의 계획에 맞추어서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전통 찻집에 가는 것,
엄마의 노래 교실에 동행해서 할머니들 사이에 미국서 온 스타가 되는 것,
성당의 미사를 마친 후에는 되도록이면 많은 엄마의 친구 할머니들에게 인사하기,
힘들다고 신경질부리셔도 대꾸하지않고 기분 좋은 말만 골라하기,
그리고 한국 행정에 어둡지만 아는 척하면서 각종 고지서와 편지들을 읽고 가려드리는 것이다.
거기다가 엄마와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서 예쁜 한식 식당에서 점심 대접까지 하면 편안 마음으로 미국의 내 집으로 돌아가는데
무리가 없다.
사실 나도 나이 들어서 혼자 남겨졌을 때에, 내 아들이나 딸이 찿아와서 이런 일들을 해준다면 기쁠 것이다.
까탈스러운 분이지만,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분이며,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 방문을 준비하는 동기를 주는 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 올 때 마다 방문 목적도 다르고 여건도 변화하고 마음가짐도 다르다는 점이다.
친정서 가까운 판교의 지형이 변하고 그 옆에 이미 존재해있는 기존 아파트 지역들도 영향을 받듯이,
나도 올 때마다 조금은 달라진 분위기를 받아들이면서 적응하려고 애쓴다. 잠자는 시간 부터 적응하려고 애쓰다보면 돌아갈 시간이 된다.
이번에는 전세계가 경제에 관해서 불안해하고 고통을 당하는 탓인지 경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린 나이의 한국 학생도 서브프라임(subprime) 이란 말을 다 쓰고 이해하는 것 같다. 비록 스펠링은 모르더라도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한국 방문은 과거로의 여행이지만, 또 하나의 나의 세계 속에 사는 나의 탐구 여행이다.
미국서 지낼 때는 모르겠는데, 이 곳에 오면 그 뿌리가 이미 만들어진 내 운명같이 내 속에 깊이깊이 뻗어있음을 느낀다.
올 때마다 뿌리의 한가닥 만큼이라도 나와 주변을 재발견을 하고 이해하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
조상 때부터 내려오고, 내 부모님을 통해서 나에게 전해진 나만이 갖는 삶의 혼을 찿고 싶어진다.
멀리에 새로운 뿌리를 내린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탓인지, 나의 기초가 되는 원래 뿌리로 향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이곳서 지내는 동안 원천적인 갈증도 해소하고 재미있는 순간들을 많이 만끽하다가
때가 되면 내 침대가 있는 곳으로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잘 가꾸어진 탄천의 산보길이 부럽다. 아침에나 저녁에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건강과 놀이의 장소인
이곳을 이용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에너지를 느낀다.
인간과 자연과 동물의 어울림이 조화롭다. 자유롭게 하늘과 물을 움직이는 모습에서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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