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곳들(여행)

숯굽는 마을-한국여행

rejungna 2008. 9. 26. 16:58

 

 

사방이 툭 터인 공간에서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는 벼이삭들은, 일년을 기다린 겸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 채로, 가을이 짙어짐을 두 팔을 벌리면서 환영하고있다.

9월과 함께 넌짓이 찿아와  저 멀리서, 가까이에서, 바로 옆에서 태양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내밀던 가을은 

이제는 당당하게 내 허리 쯤까지 올라왔다.

 

한국에 와서 지내면서 가을이 강해지는 느낌을  찿아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일년 중의 2/3 정도는 여름 맛을 풍기는 내가 사는 곳과는 달리 감칠맛나는 한국의 계절 향을 맡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다가오는 가을의 냄새와 색깔과, 소리와 맛을 진하게 느끼고 가슴에 담고 싶어서 주어진 기회를 핑계로 떠났다.

산이 많고 나무가 빽빽하고, 물이 맑고 돌이 많은 강원도로 떠났다.

 

산, 나무, 들, 물, 꽃의 향에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그 속에 깊이 들어앉아서 강원도의 정기를 담고있는 참숯마을을 방문했다.

강원 참숯 마을이다.

재수 엄청 좋네...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던져진 행운에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선택했던 목적지가 아니었기에 더욱 묘한 기분이었다.

그 곳에서는 건강한 나무의 타는 소리와 냄새가 무음, 무취의 까만 재로 변하면서 토실토실하고 윤기나는 숯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요즈음에 한국 가정을 방문하면 숯들이 거실이나 방에 소담하게 담아져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미국 집에 숯을 놓고 싶었다. 오래된 집에 사는 탓에 가끔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서 사려니 값도 비싸고 없어도 사는데에 아무 지장이 없고 또 다른 물건들도 많아서 생각만하다가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 숯을, 참숯을 만들어내는 곳을 방문하게 될줄이야... 가져갈 수 있으면 미국으로 가져가야겠다.ㅎㅎ

 

숯공장은 생각보다 볼품없고 지저분하고 목이 칼칼해지고 정신없는 그런 곳이었다.

구어진 숯의 정돈된 아름다움에 취해서 잠시 현실을 무시하고 상상의 나래를 폈던 나를 땅으로 끌어내어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 동안 우리 선조들이 구어냈던 숯과 같은 방법으로 제조되고 있다고 생각하자 겸허한 마음이 되었다.

주변에서 숯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물질도 흔치 않건만, 수요가 크게 늘었건만, 만드는 과정은 옛날과 별반 다름이 없어보였다.

 

자신의 몸을 태워서 남을 따뜻하게 해주고 남들의 아픔을 편하게 해준다는 숯을 바라보면서 숯이 담고있는 기다림과 참을성 떠올랐다.

뜨거운 가마 안에서 며칠을 타면서 서서히 자신의 몸을 변화시켜서 처음 재질과는 다른 모습으로 아주 긴요하게 쓰일 물건으로 변모한다.

 

새 주인을 기다리기 위해서 그나마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진 모습이 왜 처량하면서도 의연하게 느껴지는지...

2,3 분만 차를 달리면 보이는 꽉찬듯한 산의 파~파아란 싱싱한 나무들과 대조가 되기 때문에 처량해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또, 죽으면 한줌의 재로 변해버리는 우리 몸보다 더 쓸모있기 때문에 의연하게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주인인지는 모르지만, 인상좋고 예쁘장한 아주머니 한 분이 아주 열심으로 숯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주셨다.

미국서 왔다는 소리를 들은 그 분은 나를 따라다니며 더 성심껏 설명을 해주셨고, 나는 여러번 질문을 한 끝에야 겨우 이해를 했다.

 

 

강원 참숯 마을에는 숯을 굽는 가마가 7 개 있다.

숯을 만드는 첫째 순서 이 가마를 꽉 채울 상수리 나무(도토리 나무) 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일이다. 

그리고는 이 자른 나무들을 가마 안으로 운반해서 가마 속을 가득 채운 후에, 문 아래 부분에 벽돌을 쌓아서 막는다.

 

 (도끼로 나무를 잘라서 그 무거운 나무들을 가마 안으로 나르는 아저씨들의 수고가 대단해 보였다.)

 

 

둘째 순서 가마 속에 쌓아놓은 나무들 위에 불을 붙인다. 그러면 나무 전체의 윗부분이 타는데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불이 제대로 타기 시작하면 가마 문의 윗 부분도 막아서 가마 안의 공기를 차단시킨다.

문 아래 부분의 벽돌로 막은 부분은 쇠판으로 다시 한번 더 막는다.

 

 

셋째로 가마 안의 쌓아놓은 나무가 완소되도록 7,8 일 정도를 그대로 둔다.

그러면 아래와 같이 가마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역으로 말하면, 그 연기는 가마 안에는 나무들이 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넷째 순서로 7,8 일 이 지나서 나무가 연소되면 막아두었던 문의 아래 벽돌을 허물어서 꺼낼 준비를 한다.

문의 윗 부분은 흙으로 발라졌고, 아래 부분을 막았던 벽돌들이 옆으로 치워져있는 것이 사진에 보인다.

 

 

다섯번 째는 이 뜨거운 가마에서 연소된 나무를 꺼내서 아래의 흙더미 속에 재빨리 묻는 것이다.

이 과정은 백탄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숯을 꺼내서 흙에 묻지 않고 그냥 가마에 두면 불이 점차 꺼지면서 일산화탄소를 많이 함유한 검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문을 부수고 꺼낸 숯이 공기와 닿아서 재로 연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숯들을 꺼내자마자 흙에 뭏으면

우리가 탐내는 토실토실한 약알칼리 성을 지닌 백탄이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흙에 뭏힌 숯들을 꺼내는 작업을 한다.

흙과 검은 숯이 함께 번벅이 된 땅를 삽으로 뒤척이면서 숯들을 골라내는 아저씨의 수고가 특히 느껴지는 과정이다.

숯을 먹기도 하지만, 검은 먼지 속에서 계속적인 호흡을 하면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들은

마치 광부들이 페 건강에 신경을 쓰듯이 자신의 것에도 신경을 쓰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숯 골라내기의 마무리 작업으로 상품 가치가 없는 부셔진 조각들이 쌓인 것이 보인다.)

 

구경 후에 숯을 사가지고 나오는 순간은 어찌나 배가 부르던지...

LA 로 돌아가면 거실의 벽난로 앞에 장식겸 탈취제로 두고두고 써야겠다.

또 하나의 귀중한 추억과 손에 잡힌 자국에 아주 만족스러운 아름다운 가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