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의 오감을 녹아내리고 신경을 부드럽게 이완시키는 봄은 쉽게 오지않고 있다. 벌써 내 코 앞에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쉽게 해답을 찿을 수없는 엉클어진 문제들이 난무한 우리들 삶처럼 봄의 마음도 복잡한 지 모르겠다.
아니면 자신의 존재의 고마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곁에 오기 전에 크게 용트림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봄보다 봄비가 먼저 방문했다. 와서는 좀처럼 가지 않고있다.
너무 춥다. 코끝이 시리다. 자꾸 외투 깃을 올리고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싶다.
꽃샘 추위가 상당히 맵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검다.
책상 위에 길게 걸쳐지는 그림자도 뿌옇게 검은 색이다.
커다란 보자기로 세상을 덮어 씌워 버린 양 해말간 빛은 간데없고 어두움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곤 그 보자기를 지탱하기가 힘겨운지 순식간에 그 속에 담겨진 물을 아래로 흘려보낸다.
하염없이 흘리고 또 흘려버린다.
이렇게 LA 의 하늘은 지난 주 목요일 부터 거의 일 주일 동안, 잠깐씩 휴식을 취하면서, 줄기차게 울고있다.
(다람쥐도 검은 하늘이 마음에 걸리는지 야자수 나무 위로 자꾸만 높이높이 올라간다.
올라가야 아무 것도 없는데... 애만썼지.)
워낙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되었고
또 물도 부족한 지역이어서 마시는 물을 비롯한 모든 수분을 멀리 북가주의 Mono lake 에서 끌어오는터라
우기인 겨울에 비가 오면 내 마음은 배부르고 촉촉해진다.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목을 공짜로 축여주는 자연의 은혜에 겸허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시작은 마음 속의 그리운 이의 낮은 목소리같이 고마운 아량으로 대지를 차분하게 적셔주었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슬픈 영혼의 울음소리 같이 변해버렸다.
땅을 거세게 치는 그 울음 소리는 내 마음 속까지 아프게 파고든다. 기어이 내 눈까지 후벼판다.
(비의 슬픔은 금요일마다 길 앞에 내놓는 쓰레기통 까지도 넘어뜨리는 위력을 갖고있다.)
LA 에서 내리는 비답지 않다는 비난이 두려워서인지, 내 마음을 거칠게 흔들어놓는 것이 미안해서인지,
하늘은 금방 시치미를 뚝 떼고 맑고 고운 파랑색으로 탈바꿈을 한다.
천지가 환하고 따스해지고 주위에는 온통 희망이라는 단어가 굴러다니는 것 같다.
언제 울었는지 위를 올려다 보면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목마름을 채우고 나날이 푸르게 변하는 초목들이 배부르다고 증인으로 서주지 않는다면 내가 헛말을 한 것 같다.
말초신경에 따스함이 퍼지고 숨을 크게 내쉴만하면 하늘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다시 큰 소리로 창문을 두들겨댄다.
또 다시 슬프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너무 깜쪽같이 시치미를 떼는 것이 미안한지 이 번에는 기온마저 푹 떨어뜨려 버렸다.
자연과 인간은 이미 봄을 만났다는 확신을 갖고 있건만 하늘의 시샘 속에서 하늘의 변덕스러운 심술에 갇쳐버렸다.
하루에도 4,5 번씩 변하는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아!!! 어쩌면...
봄비와 꽃샘 추위는 맑고 고운 세상이 오기 전의 역동적인 몸부림일 것이다.
지난 겨울의 업적과 수고를 그냥 밀쳐버리지 않으려는 속깊은 마지막 예우인가 보다.
빗소리는 많은 이들을 환생의 봄으로 초대하는 인사 말이다.
큰 소리로 창문과 지붕을 두들이며 자신의 초대 소리에 응답하라고 저토록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더 빨리 비의 메세지를 이해한 자연은 더 힘있고 아름답게 반응을 하고 있지만,
눈치없는 나는 슬픈 울부짖음으로 들었던가 보다.
봄비는 남루해지고 시들어져가는 인생이 꿈꾸는 사랑의 꿈과 같이 희망을 가져온다.
빗소리는 밋밋한 일상에서 갈구하는 영롱한 꿈으로 내 영혼을 깨워준다.
탁탁탁....
꿈 속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사랑을 품은 마음은 빗소리와 함께 완성 된다.
봄비는 나의 애잔한 슬픔을 씻어주고 꿈을 키워주며 자연의 먹이가 되어서 모두가 도약을 준비하게끔 도와준다.
집밖으로 나가서 봄의 화려한 유혹에 성급하게 넘어간 자연을 만난다.
아직도 꿈 속인 듯이 빗방울을 제 몸에 담고있는 자연과 함께
내 마음은 보이지않는 자양분으로 채워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봄의 환희에 빠져본다.
삶은 바로 이런 것인가!
어둠을 갑자기 엄습하는 신비와 희망같은...
(목련, water lily, 동백꽃, 낑깡 열매... 이 모든 것들은 희망을 갖고 새 봄에 잉태된다.
이들은 이렇게 꽃이 피기까지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하다고 소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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