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 어는 날 저녁의 집안은 빨리 어두워지는 겨울 밤의 바깥처럼 고요하고 어둠이 덮고 있었다.
조용함 속에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마 신부님 아시죠? 그 분이 돌아가셔서 내일 오전 11시에 Sierra Madre(시에라 마드레)시에 있는 수도원에서 추모식이 있어요."
뜻밖의 소식에 가슴이 철렁 하면서 깊고도 잔잔한 애잔함이 가슴을 무겁게 채운다.
모두들 가야만 하는구나!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선한 신부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마음 속에 갑자기 순례자의 노래가 생각났다.
그 분에게는 한 세상의 삶이 순례자가 걷는 길이었을 것 같다.
(Road of Santiago 샌티아고로 가는 순례자의 길이다.
신부님은 순례자의 길을 마치고 이제 목적지에 도착하신 셈이다.)
<순례자의 노래>
인생은 언제나 외로움 속의 한 순례자
찬란한 꿈마저 말없이 사라지고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나무잎 바람이 부는대로 가네
잔잔한 바람아 살며시 불어다오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들의 꽃 피었다 사라져가는 것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는 세상을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언제나 주님을 그리는 가보다
영원한 고향을 찿고 있는 사람들 언젠가 만나리라
우리 한국사람들은 마신부님이라고 부르지만 그 분의 이름은 Raymond McDonough(레이몬드 맥도우)로 파란 눈의 미국인 신부님이시다.
미국 Passionist 고난회 수도원 소속으로 한국서 25년간 전도 신부님을 하신 분이시다.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70,80 년대에 한국 역사가 내뿜었던 정치적, 사회적 격동을 한국인들과 함께 겪으셨고,
한국인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대해서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한국을 사랑하셨다.
성직자가 되신 것을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으시다는 강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세상사를 초월하시고
얼굴과 몸 전체에서 우러나오는 말할 수 없는 선함과 인자함을 지니신 신부님을 마주하고 있으면,
인간의 삶을 사는 나는 두렵고 경외스럽고 공연히 죄송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시아버님과 신부님과의 특별한 친분으로 시작되어서 시집 식구들과도 각별한 관계를 지속하신 분이지만,
신부님과 나와의 긴 인연의 끈은 때로는 굵게, 때로는 가늘게 변하면서 세월이 갈 수록 강해졌다.
(수도원 입구이다)
다음 날에 인터넷으로 길을 익힌 후에 아침 일찍 Sierra Madre 고난회 집으로 춥발했다.
프리웨이를 놓치지않고 열심히 따라가다보니,
평화로운 전원 도시 Sierra Madre 주택가 길 막다른 골목 끝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Passionist(고난회) 수도원의 정문이 보였다.
바로 뒤에는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산이 버티고 있어서 더 갈 곳도 없는 곳이었다.
세상과는 무심한 너무도 평화롭고 따스하고 포근한 곳이었다.
신부님이 성직자로 활동하시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셔도 언제나 돌아오셔서 쉬시던 곳이다.
현세의 삶의 집이 영원히 잠드실 영혼의 안식처로 바뀐 곳이다.
88세에 세상의 삶을 마치신 마신부님은 아주 특별한 면을 갖고 계셨다.
세계 어느 곳에 머무르시던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년에 두번씩 안부 편지를 보내시는 습관이었다.
한국에 계실 때도 한국을 떠나오신 후에도 한해도 거르지않고 부활 때와 성탄 때에 안부편지를 보내셨다.
그러다가 2002년에 은퇴를 하신 후로는 성탄절에 한번만 편지를 쓰신 것으로 기억된다.
사십이 넘어서 처음 한국으로 오셨던 때문인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시지는 못하셨다.
그래서 한국의 인연들에게 편지를 보내실 때는 영어로 먼저 쓴 초본을 한국어로 번역을 부탁하셔서 한국말로 쓴 편지를 전하셨다.
그 초본을 번역하는 일은 오랫동안 주로 나의 몫이었다.(다른 분이 하신 때도 있었다.)
나는 이 몫이 참으로 좋았다.
내 나이 줄이 길어질 수록 이 일이 더욱 애착이 가는 값진 것으로 다가왔다.
어쩌다 그 시기에 내가 LA 에 없어서 번역할 때를 놓치면 남편이 대신 해주기도 하였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항상 인사 말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지난 6개월, 혹은 일년을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지내셨는지가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그리고는 항상 기억하고 계신다는 말과 함께 "사랑으로 마신부드림" 이란 인사 말로 끝맺음 하셨다.
신부님이 쓰신 시적인 감각적인 언어와 따뜻하고도 솔찍한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향기나는 편지가 되었다.
번역한 글을 보내드리면
이 작은 일에 크게 감사하시면서 또 고맙다는 카드를 보내신다. 어떤 때는 전화를 하신다.
않그러셔도 괜찮은데...
25년간 몸담으셨던 한국을 떠나신 후에는 인도와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여러 해 지내셨다.
그 곳에서도 가난하지만 선한 현지인들과 어울려 지내시면서 자신의 순례자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다.
미국으로 돌아오신 후에는 Alabama 주의 Birmingham 에서 흑인들과, 또 하와이에서도 생활을 하신 후에 2000년 초에 은퇴를 하셨다.
은퇴를 하신 후에는 북가주의 Sacramento(새크라맨토) 근처에 있는 Citrus Heights(시트러스 하이쯔)의 수도원에 머무시면서
악명높은 죄수가 수감된 감옥으로 유명한 Folsom Prison(폴섬 프리즌)에서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나는 신부님이 세계의 어느 곳에서 생활하시든지 어김없이 년말이면 신부님의 편지 초본이나 완본을 받았으므로
이를 읽거나 번역하는 것으로 인해서 지난 일년간의 지내신 행적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신부님은 나를 the best secretary in the world (세계 최고의 비서) 라고 부르시면서 마음을 표현하셨다.
은퇴를 하신 후로는 일이나 휴식차 여행을 자주 다니셨는데, 남가주에 오시게 되면 일년에 한번 정도는 꼭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80대 노인이 작고 터덜거리는 차를 타고 먼 길을 달려 오시면 너무 고맙고 황공한 마음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 음식을 즐기시는 편도 아니시고, 또 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번거러움이 싫다고 방문을 하시면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오셔서 차와 과자 정도만 드시고 한 시간 이상 머무르시지도 않으셨다.
보통 음식도 하루 한끼만 아주 간단하게 드신다고 하셨다.
작년에도 10월에 잠시 들르셨는데, 그 것이 마지막 방문이 될 줄이야...
그 때에 왠지 몸이 전같지 않음이 느껴졌는지 나는 "신부님! 꼭 오래오래 사셔서 저에게 꼭 일거리를 주셔야해요!" 라고 말했었다.
(추모 미사가 있었던 수도원 성당이다.)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낡아서 페인트가 벗겨지고 옆이 찌그러진 작은 하얀 색깔의 도요타 차를 몰고 오셨는데 차를 보니 심란했다.
원래 키와 몸집이 작으신 분이지만 나이 드시면서 몇년 사이에 허리가 크게 불어나셨는데
어떻게 저 작은 차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시면서 운전을 하실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차로 20일간에 걸쳐서 미국 대륙 횡단을 하고 돌아오시는 길이라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너무도 놀라서 얼굴을 쳐다보니
"무엇이 걱정이에요? 차 열쇠와 저 곳의 하느님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하시면서
아주 큰 미소를 띄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셨다.
이제 신부님은 가시고 수도원 성당 앞의 빈 의자 처럼 그 자리도 비고 내 마음의 한 구석도 비었다.
그리고 매년 년말이면 행하던 작은 일거리도 사라졌다.
더 오래도록 하고 싶었었는데...
이제 마신부님은 수도원 성당 아래 마당의 한 부분에 내가 얼굴도 모르는 다른 신부님들과 함께 나란하게 누우셨다.
시신을 화장을 한 재를 담은 작은 노란 상자는 신부님 답게 조촐하고 소박하지만 여유있고 힘있게 보였다.
그리고 그 상자에는 따스한 해를 머금은 신부님의 환한 미소가 담겨져있는 듯했다.
추모식이 끝난 후에 마련된 점식 식사에서
다른 신부님들과 수사님들은- 조용한 슬픔 속에서- 마신부님이 이제 주님을 만나게 되신 것을 축하하는 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끝내야하는 순례자의 길을 오늘도 걸어간다.
언제쯤 도착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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