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면서 사는 우리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과 머리 속에 차곡차곡 말없이 쌓인다.
쌓인 기억들은 지나간 시간을 원활하게 회상할 수 있는 도우미도 되고 삶의 결정체인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모되며,
그 추억들은 모여서 우리 인생 이야기 책의 줄거리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기억 덕분에 우리 인생의 가치는 높아지고 빛난다. 의미를 부여하는 기억의
특수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했던 일이나 만났던 사람들과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덩달아 내 존재의 의미도 약해진다.
그리고, 내가 왜 지난 시절 그렇게 바뻤었는지 알 지도 못한다.
기억이 만든 기쁨, 행복, 고통과 같은 진솔한 감정을 꺼낼 수 없는 사람은
책 속의 텅빈 하얀 페이지와 같은 삶을 살은 것이다. 이 소중한 세상과
소통없이 자기 세계에 갇혀서 그냥 살았다는 뜻인 지도 모르니까...
중심없이 주변에서만 왔다갔다한 인생일 수 있으니까...
기억은 내가 살아온 삶의 길이 만큼 자라나고 새끼친다.
친정 아버지와 어린 시절의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함께 만들었기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머리를 양쪽으로 나누어서 두 갈래로 따고 다녔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미소를 더 짓는 여유로움도 생긴다.
나의 이층 다다미 방에 피웠던 난로에서 라면을 끓여먹던 평범한 기억도
친구들은 학창 시절의 감칠난 추억으로 생각한다.
커다랗게 구멍난 검은 스타킹을 신고 교실로 들어서던 내 모습에
기막힌 표정을 지었던 내 짝의 얼굴을 어제 일 처럼 기억한다.
방과 후 보충 수업을 하던 고3 때에 들고다니던 두 개의 도시락 보따리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친구의 눈흘김도 길게 남는 기억이다.
지난 달 초에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워낭소리"란 영화를 보았다.
긴 비행 시간에 졸다졸다 시간이 넘치고 쳐져서 본 영화였다. 하지만, 그림같은 신록에 잠긴 시골의 아기자기한 풍경과 함께
30년간 쌓아온 할아버지와 40살 난 소와의 눈물나면서도 덤덤한 우정과 애정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였다.
"생의 동반자"란 말 그대로, 할아버지와 소와의 긴 인연은 주름진 할아버지의 얼굴과 지친 듯이 걸어가는 소의 느린 발걸음에
다 녹아있었다. 꽉막히고 무뚝뚝하고 일만하는 할아버지와 이런 할아버지의 모든 것이 되어주는 소가 엮어나가는
삶의 여정의 신비와 고루함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진실함과 소박함은 내 가슴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그 소와 나누었던 할아버지의 기억은 할아버지의 투박한 사랑에서 나왔고,후에는 인생의 훈장이 되어버렸다.
사람 사이가 아닌, 사람과 동물이 질기고도 순박하게 기억,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기억들은 누구인가를 만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안에서 함께한 기억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과는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연은 하늘이 점지해준 사람하고만 만들어 진다고 믿는다.
지구 상의 어디에 살든 무슨 일을 하든 어떻게 생겼든,
이렇게 점지된 인연을 받은 사람들은 때가 되면 서로 우연하게 만나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기억,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인연은 짧거나 혹은 길게 나아간다. 이 인연의 길이는 당사자들 사이의
마음 가짐에 달렸다. 즉, 하늘이 준 인연에도 개인의 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정성으로 잘 가꾸면 어떻게든 끈은 이어질 것이며,
모른 채하고 문을 닫거나 뒷짐을 지면, 끈은 가늘어지다가
결국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일요일 부터 어제까지 여러 번에 걸쳐서 발생한 LA 지진을 겪으면서, 이 전에 경험했던 지진이 공포의 기억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왠지, 인생의 아쉬움을 다시금 느끼면서 나의 기억들이 담긴 내 가슴 속을 들여다 보았다. 다행이 그 속에는 아직 많은 기억들이
쌓여있지만, 희미해진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참, 아쉬웠다...
이제라도 다양하게 여러 곳에서 새로운 기억과 인연을 만들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는 정성을 더 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날들 보다 남은 날들이 더 적은 인생으로써, 홀로 창가에 서있기 보다는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창밖에 보이는 작은 꽃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운 공기와 햇빛의 따스함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이다.
내 인생의 자국을 여럿의 기억 속에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나 자신을 기억 못하는 일이 생긴다고 하여도 나의 존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좋은사람 1
By 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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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한마디, 한 마디의 말에도
따뜻한 배려가 있어/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오래 사귄 친구처럼/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들을/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고
어떤 격식이나 체면 차림없이/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솔직하고 담백함이/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대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 같아
둥지를 잃은 새가/새 둥지를 찾은 것만 같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오랫만에 마음을 함께/맞추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것보다/더 행복했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더 좋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와의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기억으로 바뀌면서 추억을 선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신비다.
그대 눈에 내 모습이 떠있고, 내 이야기는 상대의 귀를 가볍게 파고들고, 마주한 사람의 목소리와 모습은 내 가슴 속에 금을 그어간다...
이렇게 우정이 열리고 다듬어지고 다져지면서 아름다운 기억은 탄생되고, 우리의 인생의 폭은 넗어진다.
함께 있으면 좋은사람 2
By 용혜원 |
그대의 눈빛 익히며/만남이 익숙해져
이제는 서로가/함께 있으면 편안하고/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차가운 /이 거리에서
나, 그대만 있으면/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내 마음에 젖어드는
그대의 향기가 향기로와/내 마음이 따뜻합니다
그대 내 가슴에만/안겨줄 것을 믿고
나도 그대 가슴에만/머물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우리 한가롭게 만나/평화롭게 있으면/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우리 사랑의 배를 탓으니/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가슴에 자리한 기억은 시간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면서 추억을 낳고 걸쭉한 이야기로 익어간다.
곁에 있고 싶은 사람, 함께 길을 걷고 싶은 사람, 속을 보여도 편한 사람, 무작정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사람...
이런 기억들은 새콤한 욕망과 상대를 생긴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아량도 베푼다.
달콤한 기억은 가슴을 애이는 상처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나이 들어 좁아진 가슴에 젊은이와 같은 용기를 선사한다.
아마도, 함께 있으면 좋은 그 누구와 만들었던 기억,추억과 이야기는 인생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Musical "Cats" - Memory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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