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던 토요일은 Valentine's Day 였다.
2 월은 "사랑" 과 "마음"을 전하는 달이라고 한다.
아직도 주저주저하는 면이 있지만 세월이 갈수록 이 날을 퍽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쓰디쓴 차를 금방 달큰하게 만들어주는 꿀처럼 메마른 삶을 잠깐 휘저어주는 놀이공원 나들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해를 맞아서 정신없이 한 해의 첫 1/12 인 1월을 보내고나면
2월은 따스한 선전, 감미로운 글과 뉴스로 우리의 마음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다가온다.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남녀의 사진들, Valentine's Day 의 유래, 화살을 당기는 cupid 아기 천사의 모습,
특별한 이 날을 위한 꽃 배달, 초코렛 마켓팅, 식당 예약, 사랑하는 이와 특별하게 보내는 법,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게 보내는 법, 등등...
요즈음 같이 멀쩡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건조하고도 심각한 뉴스들이 넘쳐나는 때에
아름다운 꽃 향기에 취하거나, 연인과 달콤한 감정을 새롭게 나누거나, 멋진 식당에서 기분을 내면서 분위기에 취해 보거나,
정성스런 선물을 주고받는 기회를 갖는다면 무척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발렌타인날은 연인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다.
내 생활 안에, 내 마음 속에 들어있는 소중한 모든 이들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사실, 나의 세대는 초코렛 보다 더 달콤하고 꽃향기 보다 더 은근하게
사랑을 나눈다는 발렌타이날과는 거리가 먼 성장 과정을 지냈다.
그래서 내가 통통튀는 젊은 세대들 처럼 이 날을 특별한 날로 받아들이기 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미국 생활을 하면서 늦게 적응한 미국 문화 중에서
발렌타인날이 제일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둘이 좋아하면 됐지, 유난스럽고 얼굴 따갑게 뭘 어쩌란 것인지...
목에서 잘나오지도 않는 간지러운 말을 하는 것도 얼굴이 뜨겁고,
초코렛이나 사탕도 달아서 싫고, 또 비싼 장미도 부담스럽다.
그냥 편하게 생긴대로 살게 내버려둬.
Please.........................
하지만 이제는 (무서운?) 딸 눈치를 보면서 남편과 무엇이라도 함깨 하면서 하루를 지내려고 애쓴다.
2월이 돌아오면 변함없이 딸의 질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발렌타이날에 무엇을 할거예요?"
"글쎄, 아직 결정을 못했는데.."
"You should do something nice TOGETHER. You can go some place TOGETHER!"
"생각해 볼께.(아이구 또 시작이구나!)"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씩씩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딸은 아주 똑똑하고 예민하고 창조적인 성격을 갖고있다.
고집세고 밋밋한 엄마와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면서도 아주 감상적인 아빠가 자주 다투면서 만들어가는 결혼생활이
무색무취라고 생각해서 답답하고 불안했던지
10대가 되면서 부터 발렌타인 때만 돌아오면 엄마와 아빠도 무엇인가를 하라고 재촉하면서 가르쳤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간지러워서 싫다면서 딸의 제안에 크게 신경을 쓰지않고 버티었다.
급기야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학교의 school psychologist 의 힘까지 빌어서 무덤덤했던 나를 놀라게하고 감동을 주었다.
별 문제 없이 학교 생활을 한다고 믿었던 딸의 학교 심리치료사가 만나자는 전화를 했으니 얼마나 놀랐던가!
가슴이 무너져내리고 입술이 마르고 눈 앞이 노래져서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선생님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얼음장 같이 차가운 지성미를 갖춘 듯한 러시아계 심리학자 선생님은 웃으면서
지나의 부탁으로 이렇게 만남을 주선했다면서 엄마와 아빠가 애들 앞에서 좀 더 애정 표현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주었었다. 이에 딸에게 손을 든 엄마가 되어서 반성을 했던 경험이 생각난다.
딸은 어려서 부터 엄마와 아빠가 뽀뽀하거나, 다정하게 포옹하거나, 함께 희희낙낙하는 것을 못보아서 걱정스럽단다.
자기 친구들 부모들이나 영화 속의 부모들은 자주 애정 표현을 하는데
왜 엄마와 아빠는 소파에 앉아도 멀리 떨어져앉고,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만 하고, 각자 자기 일에 빠져 사는지 신경이 쓰인단다.
감수성이 무척 예민한 사춘기의 딸이 놀래킨 사건은 오래동안 선명하게 내 머리 속에 잘 저장되어 있다.
미국문화에 점점 익숙해가는 딸의 눈에 엄마와 아빠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혹시 엄마와 아빠도...
딸과 긴 이야기를 했다.
미국과 문화가 전혀 다른 한국서 자란 엄마와 아빠가 하는 행동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정상이다.
부모가 애들 앞에서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었고, 지금도 가까운 곳에 사시면서 수시로 방문을 하시고,
너의 사춘들도 주말이면 와서 자주 함께 노는데 어떻게 엄마와 아빠가 영화 속처럼 그렇게 살 수 있겠니?
아빠도 회사 일이 바쁘고 엄마의 일도 그렇게 정신없는데... 지금은 너희들을 위해서 엄마와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할 때잖아!
딸에게 매맞듯이 배운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법 덕분에
사랑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숫한 시인들이 사랑의 뜻을 정의하고 그 뜻을 전달하려고 애썼지만,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에서 소박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 많은 형태를 지닌 사랑만큼 이를 느끼는 우리의 감정도 다양하다.
가슴을 파고드는 뜨거운 열정일 수도 있고, 아쉬움일 수도 있고, 동정심일 수도 있고,
끈끈한 정일 수도 있으며, 감사한 마음일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을 수백만 가지의 형태로 나름대로 표현하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
발렌타이날이 이루고 싶은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따스한 눈빛으로, 작게 소리내는 입술로,
마음이 들어간 카드로, 화려한 보석으로, 함께 나누는 음식으로,
피곤함을 이해하는 손길로...
마음 속 깊이 감추어진 채로만 보관되는 사랑은 차마 치워버리지 못하는 오래되고 유행에 뒤진 옷장 안의 옷과 같다.
차라리 남에게 주어서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하거나,
치워버려서 공간을 넉넉하게 해서 새 옷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일 지도 모르겠다.
대답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도 상대방이라도 원하는 사랑을 갖기를 바란다면 이것 또한 사랑이다.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사랑이다.
그러므로 표현을 않고 감추다보면 잃게 되는 것도 사랑이다. 자꾸 미루다보면 시들해지면서 사그라드는 것도 사랑이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Love doesn't make the world go round, but it sure makes the ride worth while."
(사랑이 세상을 잘 굴러가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사랑은 분명히 세상 살이를 가치있게는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삶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빌렌타인날은 빛난다. 어찌보면 이 모든 것을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던가!
나에게 2009년 발렌타이날은 화끈하거나 짜릿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편안한 날이었다.
부모의 애정 전선에 관심이 지대해서 10년 넘도록 발렌타인날을 챙기는 딸 덕분에 살아가는 법을 하나 더 배웠다.
지나는 발렌타인 날 다음 날인 일요일 낮에 엄마, 아빠, 작은 엄마와 LA 에 머물고 있는 사춘 동생 한명을 초대해서
한인타운 순두부집에서 근사한 점심을 사주면서 말했다.
"Hi all! Happy Valentine's Day!"
행복
By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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