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다. LA 에서 북쪽으로 262 마일 떨어져있는 벤톤(Benton)온천으로...
3월 초의 캘리포니아는 마른 사막과 어린 들꽃들이 작은 고개를 내밀지만 여전히 황량한 벌판과 차가운 눈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었다. 목적지인 벤톤은 채 50명도 않되는 인구가 살고있는 문명을 벗어난 정체된 곳이다. 하지만 그곳의 대지는 무기질들이
넘치는 양질의 뜨거운 물을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422 km를 달리는 여정 동안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땅덩어리와 하늘의 색깔은 수많은 생각이 되어서 머리 속을 지나갔다.
초봄의 온화하고 느긋한 기운들이 굳어지고 산만했던 생각과 뻣뻣한 몸을 겨울잠에서 깨워주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버린
광경들이지만 언제 바라보아도 경이롭기만한 캘리포니아 산수는 그리운 얼굴들이 되어서 차창밖으로 무심하게 흘러갔다.
지독히도 파아란 하늘에는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와 한국에 계신 엄마, 그리고 정겨운 이들의 미소가 구름이 되어서 떠다녔다.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 나를 감쌌다. 혼동과 부족함이 넘치던 가슴은 기쁨과 희망으로 서서히 뒤바뀌고 있었다.
사연많은 대지의 고른 숨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아~~ 나는 살아있구나!
캘리포니아의 이런 황량한 길을 달리고 달려야 벤톤에 도착한다.
(그리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같은 창밖의 구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들고있던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기대보다 잘 나왔다.)
벤톤 온천(Benton Hotspring)과는 인연이 특별하다. 피곤하고 정신집중이 어려울 때마다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벤톤은 꼭 봐야만하는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웃하고있다. Sierra Nevada(시에라 네바다)산맥, 요세미트 공원,
Owens Valley(오웬스 밸리), Mammoth ski resort(맘모스 스키장), Mono lake(모노 호수), Bishop(비솝)이 바로 옆이다.
온천물 뿐만 아니라 이곳의 바람, 구름, 햇살, 별빛, 그리고 마른 듯하면서 싱그러운 공기는 자연이 활동을 재개하는 초봄의 에너지를
강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3월은 캘리포니아를 탐사하기에 아주 좋은 시기였다.
LA 를 벗어나서 두 시간만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도시의 소음과 초록 나무들은 사라지고, 대신 사막의 꽃과
나무들, 매마른 광야, 빨간 돌산, 수억년 전의 바닷 속의 소금이 융기된 땅에 그대로 남아있는 허연 벌판, 햇빛에 반짝이는 눈덮인
백색의 산들이 순서를 바꾸면서 자태를 드러낸다. 드디어 벤톤에 도착해서 약간 지친 몸을 온천물에 담그면, 말없는 대지는
밤하늘에 구름옷을 입은 달님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들과 합세해서 온몸의 신경을 이완시켜준다. 양팔을 탕 밖으로 쭉뻗고
내밀어 차가운 공기를 받으면서 고개를 뒤로 제치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 나온다.
"하늘과 지상의 천국은 어디이며, 잠시 소풍을 나왔다는 우리 인생사는 무엇이란 말인지...
낙원은 정작 내 마음과 내 생각 속에 있으며 내가 택한 소풍 길은 황홀하기만 하네!"
벤톤 온천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은 고도 1,700 미터이며 주위의 산은 눈으로 덮혀있었다.
(묶었던 벤톤 The Old House 모습이다. 겉은 많이 낡았지만 집안은 박물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으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캘리포니아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비숍(Bishop)에서 북쪽으로 36 마일 떨어져 있는 벤톤에는
온천을 할 수 있는 Bed and Breakfast 모텔, The Bungalow House, The Old House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의 집 몇채만이 있다.
1800년대 중반에 근처에 있던 탄광에 다다르기 위해서 지나가던 길목 도시로 발전을 했으나, 이 탄광이 문을 닫아버리자
이미 1800년대 후반에 급격히 쇠퇴해버린 버려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온천은 섭씨 57도의 미네랄 온천(mineral hotspring)
이다. 이 온천장의 50대 주인 부부는 이 지역의 땅을 1300 에이커나 소유하고 있지만, 이곳을 크게 개발해서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규정상 방 하나에서는 두 사람 이상 잘 수 없고, The Old House 에서는 6명까지 머물 수 있다.
숙소였던 The Old House는 1880년에 건축되었는데 방 세개와 부엌, 그리고 1.5 화장실을 가진 골동품으로 가득찬 박물관 같은
너무도 멋진 곳이었다. 정말 기대 이상의 잠자리였다. 벽에는 이 집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초상화가 높이 걸려있었고, 1800년도
후반과 1900년도 초반에 미국서 사용했던 생활품들인 라디오, 전축, 축음기, 재봉틀, 다리미, 오르간, 유모차, 저울, 선풍기...
등등이 집 구석구석을 가득채워서 보기만 해도 경이로움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부엌의 식기 조차에도 역사가 배여있어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내가 주인이었다면 절대로 낯선이들에게 빌려줄 수 없는 집이었다. 그리고 광야의 일부인 듯한 뒷마당에는
자연을 벗삼아 온천을 할 수 있는 탕이 하나 버티고 있다. 탕의 바닥 구멍과 물위에 떠있는 호스를 타고 땅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물은 멈춤이 없었다. 물이 어찌나 깨끗하고 좋은지 벤톤을 다녀온후 며칠 동안 피부는 내 손바닥에서 미끄럼을 탔다.
잠시 1800년대 서부에서 사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The Old House 내의 부엌이다. 물론 화장실과 부엌의 시설 일부는 현대식이다.
위는 거실의 한쪽 면이고, 아래 두 사진들은 방의 모습이다.
온천 주인의 친절한 설명에 근처에 위치한 온천이 샘솟아오르는 진원지를 구경했다.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이곳을 찿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철조망으로 입구를 막았기 때문에 들어갈 생각도 않했던 곳인데,
주인은 철조망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을 하였다. 뜨거운 온천물은 지구 속을 빠져나와서는 긴 도랑을 타고
여유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내 몸을 담갔던 물은 이 도랑에 파이프를 연결해서 탕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멀리 보이는 눈덮인 겨울산과 도랑을 흘러가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천물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돌아오는 길에는 근처의 자연을 돌아보았다. 아쉽게도 Sabrina Lake(사브리나 호수)로 가는 길은 눈때문에 차단되어 있었다.
비숍에서 남서쪽으로 20 마일 떨어져있는 사브리나 호수는 2,784미터의 고도에 있는 호수로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아쉬운 마음에 적막한 산기슭에 내려 하얀 세상을 밟고 뛰면서 잠시 옛날 한국의 어린 소녀로 돌아갔었다.
산과 눈, 벌판과 사막 식물,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된 돌과 바위들, 이들의 조화로움과 엇박자...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신비였고, 이 신비를 품고있는 캘리포니아 땅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될 수 없었다.
그 기운에 가슴을 열고 그 축복을 체험한 나는 겸허한 영혼이 되어서 서서히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진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몸이 떨릴 정도로.
무수한 서부영화와 최근의 영화인 Iron Man(철의 사나이), Gladiator(전투사), Transformer 등의 촬영지로
유명한 Alabama Hills(알라바마 힐스)에 끝없이 펼쳐지는 돌들의 나이는 일억 오천 내지는 이억년이다.
어찌 감히 우리 인간을 자연과 비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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