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다녀온지 일주일이 넘어가고있다.
겨우 7일 전까지 그 곳에서 숨쉬고, 먹고, 일보면서 한국인으로 한달 이상을 지냈건만 한국에서의 생활이 벌~써
저 먼발치에서 벌어진- 나 자신보다는 나의 분신이 경험하고 온 듯한 -무의식 세계에서 찍혀진 활동사진 같은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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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공항 Tom Bladley International Terminal(탐브래들리 국제선 털미널)의 U.S. Customs 과 짐을 찿는 carousels 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계 각국의 비행기들이 거의 동시에 LA 공항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입국신고와 세관을 통과할 때의 긴 줄은 마음을 급하게 만들곤 한다.)
일년만에 본 엄마는 더 늙으셨다. 연세에 비해서 얼굴에 주름이 적고 무척 팽팽하신 덕분에 실제 나이 80으로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몸은 많이 노쇠하셨다. 다리가 불편해서 마음대로 걷지 못하고 원하시는대로 움직이시지 못하는 바람에 배만
뾰죽하게 나오셨다. 자주 나를 향해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시지만 성격은 여전하셔서, 아니 더 심해지셔서, 하시고 싶은 일은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꼭 하셔야 한다. 일하는 도우미 아줌마들을 자주 바꾸시는 통에 그들이 일에 굼뜨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야단치시는 것은 더 심해졌다. 나 보다 늦게 한국에 들어와서 두 주를 함께 지낸 아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하루를
병치례를 해야했다. 할머니가 아줌마들을 참을성 없이 심하게 야단치는 것을 이해못해서 너무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들은 고맙게 외손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언제나 공손하게 말씀을 들어드리고 함께 걸을 때는 꼭 손을 잡았고,
저녁 8시가 되면 할머니 명령대로 불평없이 방에 들어가서 잠자리에 들었고, 할머니 위주로 하루 일과를 잡았다.
물론 도착 일주일 후 부터는 엄마를 믿고 외출을 했다가 할머니가 주무신 후에나 귀가하기는 했지만.
나는 엄마를 보면서 또 다른 나를 찿으려 했고 나의 탄생의 근원을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비록 멀리 LA에 살다가 LA에서 묻힐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과 만든 추억이 있는한 한국은 나의 영원한 고향이란
것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미약하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던 한국방문이 무척 기뻤다.
엄청 운좋게 한국인 유학생을 여자친구로 사귄 아들 덕분에 많은 한국 엄마들처럼 자식을 더 나은 집으로, 더 배운 배우자에게,
미래의 전망이 더 밝은 사람과 혼인을 하려고 애를 쓰지도 않아도 되어서 기쁘다. 낳은 자식들의 학교와 결혼이 마치 본인들의
간판이자 명함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와 연합하지 않아도 되기에 좋다. 아들이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아이는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얻게된다. 내가 오래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의 경우와는 달리 이곳서 중학 2학년
교육부터 받은 아가씨이니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가 오면 날카롭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체류 시에 거의 모든 시간을 엄마와 보냈지만 딱 3일간 친구 둘과 셋이서 진주, 남해, 창원, 구례와 하동을 방문하는 자유도
만끽했다. 여학교 동창 셋이 나눈 신나고 가슴 뛰었던 여행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5월의 한국의 남쪽은 아름답고 가슴을 후비는
정다움이 넘쳤다. 여행 첫날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진주에 도착한 우리를 창원에 사는 친구가 차를 갖고 마중을 나왔다.
진주의 아름다운 남강이 내다보이는 누각인 촉석루와 논개가 외군 적장을 안고 뛰어내렸다는 바위인 의암과 연초록의 풀과
나무 사이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위엄있게 어깨를 길게 펴고있는 진주성의 아름다움은 논개의 용기만큼이나 가슴에 파고들었다.
남해대교를 사이에 두고 갑자기 코앞에 다가온 섬인 남해는 한국에서 세번째로 큰 섬이란다.
한동안 계속되는 쪽빛 바다와 나란한 아름다운 자동차길, 잘 가꾸어진 시골냄새, 유채꽃과 쩔쭉이 인사를 건내는 다정한 섬이었다.
층계 계단식으로 정돈된 다랭이논들에는 벼 대신에 감자와 마늘 같은 먹거리들이 심어져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은빛모래를
자랑하는 상조은모래 바닷가에서는 상큼하고도 굳건하게 서있는 해송들 사이를 비집고 둑을 따라 산보도 했고, 역사적인
이야기가 많은 용문사의 시적이고도 고즈녁한 미에 흠뻑 취해 보기도 했었다. 마침 오후 6시에 발을 들여놓은 덕분에 비구니님의
타종을 보고 듣는 운도 있었고 세월의 흔적에 바랜 단청을 받치고 서있는 대웅전이 뿜는 신비스러운 기운에 한참을 서성이기도 했다.
가느다란 역사지식을 친구와 나누면서 이 평화스러운 모습을 저장하려고 필요이상 길게 머뭇거리기도 하였다.
저녁 느즈막하게 도착한 힐톤 남해 리조트 주변 역시 기대 이상으로 편안하면서도 빛이 나는 곳이었다.
숙소인 리조트 방과 골프장은 호화스러웠고 호텔 로비로 올라가는 길에서 내다보이는 주변의 산수에는 숨이막혔다.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인 때문인지 리조트의 높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아보이는 주위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저 아래 산밑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사이좋은 집들이 만든 작은 마을에서부터 경사높은 산 위로 다랭이논들이 순서대로 열지어선
꼭대기까지... 잊지않고 가끔 꺼내고 싶은 지독히도 예쁜 광경이었다.
하루밤을 묶고 하동으로 향한 길을 동무해준 다음날 아침의 남해의 수평선은 끝없는 운무로 덮혀있었다.
구름과 안개는 나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이 계속 좇아오는 소중한 이같았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남해의 아름다움을 잊지말라는 둣이
내 기억 속에 한 자리를 잡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내 가슴은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저 밑으로 떨어졌다.
굽이굽이 섬진강을 따라서 달리다가 하동 평사리에 위치한 소설 속의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과 지리산의 칠불사를 구경했다.
박경리 평사리문학관을 보면서 한 작가의 소설이 이렇게 길고도 깊은 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감탄스러웠다.
드라마를 찍기 위해서 세워졌다던 세트이지만 잘 보관함으로써 멀리사는 나까지도 소설 속의 인물들이 숨쉬었던 그 모습을 가까이서
상상할 수 있는 행운을 갖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서희의 인생에 참여한 길상, 상현과 효영, 그리고 서희 아버지 최참판과 할머니인
운씨부인... 등등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한국 역사가 가장 낮은 점에 섰을 때에 감당해야만 했던 불행과 고통, 사랑과 꿈의이야기를
대충 떠올려보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마침 하늘서 내리쬐는 강한 햇살에 지친듯한 한옥 칸들은 소설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복잡하게 꼬인 애닯은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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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가의 세희와 길상이 상점에서 LA로 가져갈 물품을 몇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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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뒤로하고 현실인 미국에 돌아오니 당장 나의 문제는 집안 청소와 정돈이었고
미국의 현안은 바다밑에서 the Gulf of Mexico로 45일째 뿜어나는 기름 유출이었다.
미정부와 BP 석유회사가 온갖 신기술을 동원하고, 각분야의 고급 두뇌들이 협공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닷속의 기름은 뿜어올라와서 일부는 바다물에 녹아들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일부는 물위로 올라와서
해변으로 또 양식장으로 번지고 있어서 커다란 재앙을 잉태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 45일째의 날에 바닷속 로버트가 손상된 파이프를 잘라낸 작은 성공이 있었다. 계획대로 깨끗이 자르지는 못하였지만,
이제는 1마일 떨어져있는 바다 표면으로 기름을 끌어올리기 위한 거대한 원통(containment dome)을 기름 분출구에 내려서
자른 파이프를 막을 것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잘 실행이 되어야 8월에 끝나기 때문에 그 때까지 솟아나는 기름의 유출을 막는 길은
없다. 그리고 이 방법이 성공한다고 해도 이것 또한 임시방편으로 지속적이며 효과적인 방안을 계속 찿아야 한다.
왜 지구상에는 과거보다 더 커다란 환경재해가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어떤 측면에서 이해하고 풀어야 여전히 아름다운 땅을 지킬 수 있을 것일까?
천암함 사건으로 가슴이 답답했지만 엄마와 좋은 추억을 쌓았고 남해로의 여행을 했던 한국의 2010년 5월의 날들과
현실로 돌아와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미국을 보면서 6웛 하루의 단상을 이렇게 담아본다.
마치 과거와 현재를 쉽게 넘나드는 사람인 듯이...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