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거나 좋은 것들

봄, 봄... 그리고 강아지 두마리, 릴리와 다비

rejungna 2011. 4. 15. 09:31

4월이다. 진짜 봄이다. 봄다운 봄이 되면 시야가 화려해진다. 여인들 몸에 걸친 밝은 패션이 눈을 자극하고 여기저기 피어난 꽃들은

마음을 살짝 들뜨게 한다. 수선한 분위기는 왠지 마음을 바쁘게 만든다. 봄을 집안으로 초대하는 창문은 봄날씨에 유혹당해서

멋진 몸을 만들겠다고 달리는 사람들의 땅을 누르는 소리까지 집안으로 들여보낸다. 컹컹, 캉캉, 킁킁... 강아지들은 답한다.

 

따사함에 생각을 맡기고 Charlotte Bronte(샬롯 브론데)의 소설 주인공 Jane Eyre(제인 에어)가 되어보고 싶어도 쫒아다니는 두 마리 

강아지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 활동적인 녀석들은 딸이 데려온 장기 투숙자이다. 이들은 자기 주인이 작은 원룸

로프트(loft)를 구입할 때까지만 여기에 머물 예정이다. 그래서 너무 정들면 않되는데...  개라면 뒷마당에서 키우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집안 어디에서나 이 녀석들이 툭툭 튀어나와 집안 모양새 까지 달라졌다. 거실과 식당방 사이의 문은 항상 닫혀있고,

손님이 올 경우나 장시간 외출 시에 사용되는 커다란 이동 우리(cage)는 거실 소파 옆에 아주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집안 청소를

해도 잠깐 뿐이고, 목욕을 자주시켜도 개냄새가 나고, 여기저기 뒹구는 개털은 나를 질색하게 했다. 거기다가 종이, 끈과 줄을

보기만 하면 이빨로 찢어버리고 끊어버린다. 하지만, 딸이 너무도 아끼는 강아지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담담한 마음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결과는 나와 강아지들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고, 이 두 투숙객은 내 마음 한 자리를

덥썩 물어버렸다. 마치 봄기운이 내 가슴 한쪽을 차지한 것 처럼. ㅋㅋㅋ

 

 

항상 앞서서 달려드는 녀석인 Doby(다비)는 아주 작은 꼬마다. 이제 9개월 되는데 무엇이든지 이빨로 물어뜯어서 망가뜨린다.

terrier(테리어)와 dachs hund(닥스 헌트) 잡종으로 동물 보호소에서 5달 전에 입양되었다. 테리어 피를 받아서 털이 철사 같이

뻣뻣이 서 있어서 웃긴다. 아주 잽싸고 영악한 놈이다. 자기 몸집은 생각지 않고 겁없이 큰 놈에게 마구 짖으면서 돌진한다.

요주의 녀석이다. 산보 중에 다른 개에게 갑작스러운 공격을 감행해서 개주인에게 미안해 한 적이 많다. 아직 어린 놈이라 봐주지만

계속 그러면 곤란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방방 뛴다. 높이 뛰기 선수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살짝 한다. 잘못하면

소파 밑에 숨는 것도 일등이다. 그래서 붙여준 별명이 "잔머리" "빤질이" 이다. 또 닥스 헌트의 피를 받아서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길다.

토종 한국인 처럼. 그래서 더 웃기고 귀엽다.ㅎㅎㅎ

 

 

Lily(릴리)는 딸의 첫인연이다. 6월이면 두살이 되는 탓인지 점잖고 우아하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귀가 먹고 한쪽 눈만 보인다.

즉, 장애개이다. 개장사를 하던 원래 주인에게 학대를 당했고, 동네 사람의 신고로 동물 보호국이 보호 차원에서 릴리를 구입했다.

딸은 보호국에서 릴리를 입양해서 감탄할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찿기도 하였다. 릴리의 신경을 거슬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않는다. 하지만 릴리는 키 큰 남자에 대한 공포증과 모르는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해서 키우기 대단히 어려운 개다.

나 역시 친해지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가까이 가면 도망가고 더 도망갈 곳이 없으면 너무 불안한 나머지 사람을 문다.

여러번 손도 물려보고 발도 물렸다. 하지만 3달이 지난 지금은 나를 졸졸 쫒아다니는 의리깊은 친구이다. 다비를 입양한 이유도

릴리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한 딸의 배려였다. 사람이라면 무조껀 좋아하는 다비와 함께 지내면 사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 듣지 못하는 릴리를 부르려면 바닥을 치거나 직접 가야하기 때문에 

다비를 부르면 함께 따라 오라는 이유에서 였다. 이 계산에서는 대성공이다.

 

 

릴리와 다비는 아주 대조적으로 생겼다.

하얀 녀석과 누런 녀석. 보통 크기의 릴리에 비해서 다비는 멀리서 콩만하게 보인다. 릴리는 다리가 길어서 사뿐하게 걷지만 다비는

다리가 짧아서 땅에 붙은 것 같이 종종 걸음으로 걷는다. 들지 못하는 릴리는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아하고 도도하게 걷지만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다비는 다른 개들에게 지독한 관심을 보인다. 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보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미국인들은 거의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릴리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을 표현한다.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어떤 종류의 개"냐는 것과 "아직 강아지냐"는 질문이다. 그린곤 너무 멋지다고 한다. 다비에게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

눈에는 특별한 특색이 없나 보다. 나는 다비가 너무 귀엽고 예쁜데... 릴리는 참 착하다. 절대 보채지않고 순진하고 고지 곧대로 한다.

그래서 더욱 않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많이 만져주고 더 쳐다보게 된다. 다비는 이미 말한 대로 "잔머리"이니까 귀여워서 넘어간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공통점도 있다. 자기들 주인인 딸을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따른다. 그래서 나는

더 더욱 이 두 강아지를이 사랑스럽다. 또 둘 사이가 매우 좋다. 부드러운 릴리의 성격때문에 다비가 덤벼봐야 싸움이 않된다.

 

 

나와 강아지는 하루에 두번 밖으로 나간다.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 셋은 동네 한 블럭을 돈다. 걸으면서 땅도 보고 나무도 보고

새도 보고 무심히 하늘도 본다. 녀석들 덕분에 봄을 즐긴다. 작은 보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공원같은 동네에는  냄새 풍기는 것

천지다. 주로 코를 사용하는 릴리 덕에 다비까지 색다른 냄새를 음미하려고 정신없다. 줄을 잡아당겨도 요지부동이다. 잔디 냄새,

나무 냄새, 사람 냄새, 다른 개들의 대소변 냄새, 다람쥐 냄내, 각각 다른 향내를 자아내는 봄꽃들 냄새... 전부 독특한 냄새를 갖고있다. 

봄꽃이 만발한 예쁜 집 앞을 지나가면 봄의 소리도 들린다. 꽃들은 자기들의 인생의 절정을 봐달라고 애원한다. 내 귀에는 들이지

않지만, 땅의 진동으로 미약하나마 알아듣는 릴리와 귀가 예민한 다비는 다 듣는 듯하다. 두 녀석이 머리를 땅에 파묻고 코를

킁킁대다가 갑자기 귀를 쫑긋하면서 무엇을 감지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귀여운 녀석들!!!

 

 

어느 집 마당 구퉁이에 핀 봄꽃에 다비가 짧은 다리를 들어서 소변을 보았다. 녀석! 시원은 하겠지만 꽃들에게는 좀 미안한다.

그래도 다비 덕분에 한 사람이 더, 내가, 너를 봐주었으니 용서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