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동안 몸살로 마음과 몸의 수분이 마른 채로 지내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LA 11월의 어느 날의 외출은 황홀하기만 하다.
마침 어제에는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가 엄청 쏟아져서 도시 전체를 목욕시켜 주었다. 아침의 싱그러운 공기와 산뜻한 하늘과
더욱 초록색이 된 잔디는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준다. 내가 왜 사는 지를 몸의 모든 세포가 말해준다. 흐뭇하게 11월의 기운이
오감으로 스며든다. 기왕 나가는 것, 개 멀린과 함께 뛰어야겠다!
이곳의 11월은 멍한 가슴을 갑자기 아래로 떨어뜨리는 아름다움을 갖고있다. 시기적으로 "무엇인가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박차를
가해야 하는 때"라는 의식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달이지만, 11월은 한국의 9월과 같아서 여전히 현란한 꽃들을 피운다. 한편으론,
한국의 10월과도 비슷해서 가을스러운 모습을 보너스로 선사한다. 여름과 가을을 함께 품고있는 LA의11월은 본연적인
시간적 관념을 약화시킨다. 아직도 서두를 필요없이, 여전히 여유롭게 사색을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많은 날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이... "꽃을 봐라. 한결같잖니? 변한 것이 없잖아." 이렇게 11월은 억지 춘향같은 여유로움을
위안처럼 던져주고 싶어한다. 마치, 큰 시험을 앞두고 총정리하는 초조함 속에서 호기를 부려 잠시 드라이브 나가는 느낌을 주는
시간이다.
LA 11월의 높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 가슴이 에이다. 아침과 저녁의 기온은 정신을 바짝 잡아당긴다. 잔디는 11월에 일년 치의
거름을 한꺼번에 먹는다. 집집마다 11월에 잔디 거름을 뿌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비까지 마신 잔디와 나무들은 외양은 아직도
한여름인양 자기 최면을 하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는 순응한 듯이 군데군데 매마른 붉은 낙엽들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일년 12달 동안 한 가지 색깔에 익숙해있는 내 눈에 갑자기 노랗고 붉은 색의 항홀함이 밀쳐오면 나는 거의 숨을 쉬지 못한다.
그 자리에 몽롱한 듯이 오랫 동안 서있게 된다. 마치 먼 타국의 낯선 땅을 밟고 서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호사라고나 할까!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공신은 파란 잔디에 뿌리를 둔 단풍나무가 굳건하게 제 길을 걸어 온 덕이다. 단풍나무 잎들은
절정에 있을 때에 땅 밑으로 소풍온다. 처음에는 여전한 화려함을 입은 채 벗들과 함께 신나게 웃고 떠든다. 이어서 간간히
부는 잔잔한 바람따라 동서남북으로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곤 마침내 벗들과 헤어져 외로와진다. 마치 해마다 조금씩 해질녁에
다가가는 내 인생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안쓰러움 보다는 신의 능력과 자연의 변화가 주는 경이로움이 너무 커서 도리어
내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단 한장의 달력 종이만을 남겨둔 쓸쓸하고 힘없는11월이지만 자신의 고독한을 뒤로두고
남을 위로하는 마음 씀씀이가 감명을 준다. LA의11월은 센티멘탈한 감정의 외투를 벗게 하지는 못해도 숨을 고르고 분주한
연말을 거뜬하게 지낼 수 있는 힘을 준다. 또, 추수감사절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미국의 긴 명절을 적당하게 즐길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11월이 되면 읽을거리들이 눈에 더 들어오고 음악은 더 감미로와지며 내 가슴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더 쉽게 떠오른다.
공연히 심통을 부려서 다른 이들을 곤란하게 했던 기억에 대해서 후회로 가슴을 쓸기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친척들의
생각도 더 간절해진다. 주님의 존재도 더 선명해지는 듯해서 마음을 더 크게 열고 기도를 하게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내가 가볍게 던졌던 모진 말에 대한 반성은 살며시 가슴에 밀려오는 너그러움과 이해심과 만나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혼자 홀짝거리면서 마시던 차는 다른 이와 함께 나누고 싶어지고, 누군가와
긴 밤을 하얗게 세우면서 속내를 보이고 싶어진다. 복잡할 것도 없는 세상을 복잡하게 받아들였던 미련함을 조금씩 깨부수는
시도를 해보는 때도 11월이다.
11월은 마치 우리 집 개 멀린의 삶과도 같다. 만 12살인 진도개 멀린은 산보나가서10분만 걸으면 힘이 빠져서 내 앞으로 걷다가
뒤로 쳐져서 줄을 당긴다. 어쩌자는 것인지... 그러면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끌고 돌아오곤 한다. 동네 사람들 보기 민망하게 말이다.
다음에는 같이 나가지 말아야지 하지만 뒷마당에서 바깥 세상을 염탐하는 것을 좋아하는 멀린이 프렌치 도어 문틈으로 큰 머리통을
들어밀면서 꼭 애원하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다시 마음이 약해져서 비닐봉지를 들고 또 함께 나간다. 내가 보기에 멀린은
생의 11월 말도 지내고 12월 초를 걷고 있는 듯하다. 나는 올 여름이 멀린의 12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침 가족들 모두 서울을
나가야했기 때문에 혹시 혼자서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을까를 무던히도 걱정했었다. 하지만, 여러 달이 지난 지금도 11월 말과
12월 초를 왔다갔다하면서 살고있다. 대변은 아무 곳이나, 소변은 걸어가면서 실례를 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낮시간에는
동상처럼 누워서 잠만 자고, 귀는 들리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가도 모르다가 갑자기 무엇에 크게 놀란 듯 흠짓하며, 어쩌다 낯선
사람을 인식하면 다 된 쉰목소리로 짖어댄다. 다행이 코는 아직도 8월 쯤 되는지 냄새는 열심히 맡는다. 우리가 12월을 맞기 전의
아쉬움을 잠시 11월로 달래려고 하듯이, 멀린은 아직 12월이 오지않은 11월이라고 우기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멀린과 함께 걷는 동네에는 11월의 꽃들이 만발해있다. 키가 작은 장미와 국화에서 부터 키 큰 나무에 매달린 총천연색의 꽃들은
여전히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계절을 햇갈리게 한다. 담을 타고 높이 올라선 담쟁이 덩굴은 마치 미동부에 있는 대학들의
담처럼 11월이 거의 지나고 있는 현재의 시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지만 고개를 15도만 돌리면 활짝 고개를 든 꽃들은 여전하게
웃음을 던진다. 짧고 아름답고 황홀한 시간이다.
내일 모래면 추수감사절이다. 일년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는 날이다. 일 때문에 함께 할 수는 없어도 마음만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날이다. 그런 날이 11월에 있다는 것은 11월의 특별한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부실했던 몸이 흔들리는 마음을
주었고, 그 마음은 정신을 흐리게 했었다. 이제 다시금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또박또박 걸어갈 힘을 준다.
그 힘의 모태가 되어 준 11월에 감사를 전한다. Happy Thanksgiving! To you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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