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놀라웠다: 4시간 연발에 대한 미국인 승객들의 반응

rejungna 2013. 10. 11. 06:25

얼마 전 LA 에서 뉴욕을 왔다. 총비행 시간은 5시간 30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험상 약간 일찍 도착하곤 했었다. 그 날의 출발 예정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10년 전에 볼티모아를 갔다가 막 경기가 끝난 축구장에서 쏟아져나온 차량 때문에 비행기를 놓친 황당한

경험이 있어서 공항에서의 여유 시간을 선호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국내선이지만 8:30 전에 도착했다. 하루 전에 인터넷으로 이미

탑승 수속을 했기 때문에 순서가 되자 금방 수속이 끝나고 가방은 부쳐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안 검사를 통과하고 터미날 안으로

들어섰다. 출발 시간까지 상당한 여유가  있어서 운동 삼아 LAX 터미날 7 안의 모든 gate 를 차례로 훌트면서 끝까지 가보았다. 마침

얼마 전에 새롭게 단장 공사를 마친 뒤이므로 호기심도 발동했다. 그리곤 가장 마음에 드는 커피숍을 골라서 커피 한잔을 사서 들고

United Airlines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고 편한 자세로 아이패드를 열었다.

 

전광판은 3시의 재탑승 시간을 알리고 있다.

 

게이트 앞의 전광판은 예정대로 11시에 출발한다고 적혀있었다. 잠시 후에 다시 올려다 보니 11시가 11시 반으로 바뀌어 있다. '30분

정도 쯤은 비행기 여행에서는 보통이지' 하는 마음이었다. 마이크를 통해서 곧 탑승을 시작한다고 알린다. 승객들은 삼삼오오씩

티켓에 적힌 그룹 번호 사인 아래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도 2번 그룹 맨 뒤에 섰다.

 

 

승객들은 그룹 사인 아래 빽빽이 줄을 섰고 이어서 그룹 번호 순서대로 탑승이 시작됐다. '30분 정도만 늦으니까 뉴욕 시간으로 9시

전에는 들어가겠지' 라는 계산은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게했다. 하지만 비행기는 탑승이 끝난 다음에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궁금하던 차에 기장의 알림이 울려퍼진다. '뉴욕과 동부 지역에 폭풍이 와서 시카고 동쪽 지역으로 향하는 모든 비행기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연발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잠시간의 느긋함은 땅에 박힌 비행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점점 조바심으로 바뀌었다. 

두번째로 기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LA 관제탑의 이륙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서 승객 여러분은 내려주십시요.'라고 말한다. 앞으로

적어도 3시간을 기다려야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단다. 새로운 이륙 시간은 3:30 P.M.이고 탑승 시간은 3시란다. 이륙이 늦어진

비행기들로 활주로의 체증이 심해서 우리 차례가 되려면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잘못 이해했는지 걱정이 되서

옆좌석의 학생에게 확인을 했다.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맙소사!!!! 12시 전에 들어가기는 틀렸다.

 

첫번째의 탑승 후에 비행기 이륙을 기다렸다.

 

그런데 항의하거나 불평하는 승객이 없이 비행기 안은 조용하다. 몇명이 참지 못하고 먼저 튀어 내린 것 외에는. 뒤에서 함께한

자기네 그룹끼리 낮은 소리로 늦어진 도착 시간 때문에 발생되는 계획 차질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난아기를 데리고 탄 승객도

있고, 유치원 다니는 나이의 아이들도 있고, 우락부락한 건장한 남자들도 많고, 노인들도 많은데 믿을 수 없이 조용하다. 자기 성질을

참지 못해서, 억울하고 분해서, 또 정신이 살짝가서 총질을 해대는 사람도 사는 미국이 아닌가. 그래도 대개의 미국인들은 이해를 하면

불편을 조용히 감수하는 것 같다. 자신이 운이 없어서 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히 공적인 일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지친 표정의 승객들이 각양각색의 모양새로 기다린다.

 

갑자기 얻은 터미날 안에서의 세시간! 길다. 세시간 반 후에는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뉴욕으로 전화해본다. 이제는 폭우가 멈추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비행기로의 환승 시간 때문에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승무원들과 이야기 한다. 다른

비행편을 알아보던지 환승 시간을 늦추던지  할 것이다. 나머지 승객들은 편한대로 의자이건 카펫 바닥이건  골라서 무료한 표정으로

시간을 때운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이륙 시간 탓에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들에 합류해서 먹을 것을 찿았다.

 

미국에서는 2003년 부터  The Bureau of Transportation Statistics (교통기관 통계부)에서 모든 항공사의 모든 비행의 연발과 연착

통계를 매년 발표한다. 연방 비행국은 15분 이상 늦게 출발하거나 도착하면 연발이나 연착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연발과 연착이

하루를 넘길 경우에는 필요에 따라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내가 여러 해 전에 마이애미에서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로

여행할 때였다. 엘에이에서 마이애미 까지는 미국 비행기를, 마이애미에서 목적지 까지는 스페인 비행기를 이용했다. 그 때에 환승했던

스페인의 리비에라 항공은 마이애미를 이륙하던 중에 갑자기 기수를 터미날로 되돌려서 승객을 내리도록 했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가슴을 쓸면서 내렸었다. 기체 결함이라고 했다. 무작정 기다리라던 한두 시간이 결국 하룻 밤을 지새야 하는 형편으로 바뀌었고,

승객들은 다음 날 오후 3시 항공편으로 바르셀로나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항공사는 승객들에게 묶을 호텔과 그 날 저녁,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제공했고 점심을 위해서 마이애미 공항에서만 쓸 수 있는 $50  상당의 voucher (교환권 또는 큐폰)을 나누어 주었었다.

 

 

미국 비행기들의 연발이나 연착은 대략 20% 정도라고 한다. 정시 출발을 항공사 언어로 D-zero (delayal 이 제로) 라고 한다. 2010년의

D-zero 률은 79.7%, 2011년에는 78.6% 이며 작년에는 83%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최근들어 정시 출발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러 이유로 승객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지루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3시간을 보내고 체념한 마음으로 승무원의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도착하면 밤 12시가 넘지만

짐을 찿아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면 맨하탄까지 1시 전에는 들어갈 듯하다. 다행히 밤이라서 교통은 막히지 않을 터이니까. 조용하게

집에 들어서는 방도를 생각해보는데 승객들은 다시 지정된 그룹 번호 앞에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몇명의 승객들이 다른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떠났는지 궁금했다. 신기하게도 전원이 재탑승했다. 빈좌석이 전혀 없었으니까. 출발이 늦어진 비행기들은

예정 출발 순서 대로 이륙할 수 있다는 규칙 때문에 다른 비행기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였을 것 같다.

 

정말 같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몇시간의 운명을 같이한다. 잠시간의 공동 운명체다. 늦어도, 빨라도, 사고나도, 승객들은 생사를

같이한다. 그래서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을 하면 환호하면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꼭 있다. 물론 나 역시 긴 안도의 숨을 내 쉰다.

감사한 마음으로. 예민하면 불편하고 무서워진다. 오래 전에 생명보험의 가입을 위해서 보험사의 긴 설문 조사에 답한 적이 있다.

수 많은 질문 중에서 가끔 생각나는 문항이 하나 있다. '당신은 일년에 대략 몇 번 정도 비행기를 타십니까?' 당시에는 우스운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다. 보험 설계사의 설명에 따르면 자주 탑승한다고 하면 보험료가 올라간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여행다니시지 않지요?' 라고 질문하면서 내 대답을 회피하려는 듯이 듣지도 않고 내가 비행기를 전혀 타지 않는다고 마크를 했었다.

 

 

재탑승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비행기는 활주로에 오래 서있지 않았다. 아마 승객 모두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에 적어도

내일의 계획에는 차질이 없을 것임에 대해서 감사했을 것이다. 특히 뉴욕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벌써 도착한 듯이 조금은

느긋했을 지도 모른다. 5시간 15분 후에 드디어 비행기의 바퀴가 뉴욕의 케네디 공항을 터치했을 때는 잠에서 깬 많은 승객들이

큰 박수로 환호했다. 그리곤 파일럿 케빈 앞에 도열해서 인사를 하는 파일럿들과 승무원들에게 환한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면서

내린다. 드디어 왔구나! 무사하게. 오늘 하루를 온전히 다쓴 여행이지만 감사함이 내 등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4시간 연착을 조용히 수용하고 지친 환한 얼굴로 어둠 속으로 재빠르게 사라지던 승객들. 그들의 DNA 는 우리와 조금 다른 듯했다.

달리는 택시 밖의 수많은 전등불이 켜진 뉴욕시는 늦은 밤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했다.

 

재탑승 시에 승객들이 다시 비행기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