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다녀왔다. 정확하게 말해서 11월 19일 부터 12월 9일까지 머물렀다. 그 사이에 서울은 늦가을 문턱을 넘어서 겨울로
들어섰다. 두번의 비와 두번의 눈을 맞았다. 비가 한번 오면 겨울은 두 걸음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는
예고없이 달려와서 품안에 비집고 들어왔다. 일년 만에 다시 본 한국 가을의 예쁜 끝자락도 가슴 속에 담았고 겨울의 대장군격인
할키는 듯한 매서운 바람도 내 머리카락에 남았다. 이번 방문은 가슴이 아릴만큼 되풀이하고 싶은 기쁜 추억과 냉혹한 현실의
차가움 사이를 여러번 오갔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지나가면 모두 아름답다'는 말 처럼 고마움과 아쉬움이 크다. 집으로 돌아온
내귀에 들려오는 '많이 말랐다'고 걱정해주는 LA 식구들의 목소리는 듣기좋았다.
인천 공항에 11월 19일 아침 6시 30분 도착했다. 한국 11월의 새벽답게 아직 어둡고 캄캄한 세상은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불빛은 따스함 보다 냉냉함을 주었다. 늦가을이니까.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12월 9일 아침 8시 30분에 내려다 본 LA의 아침이다. 사막 위에 세운 도시답게 건조하고 마른 갈색 줄이 반듯반듯하게 그어져있다.
내려가서 건물들 안을 들여다 보면 활기차겠지만 외양은 변화감이 결여된 침묵의 도시같이 보인다. 하지만 햇살은 아주 긍정적이다.
한국서 제일 먼저 만난 가을 모습이다. 친구와 양재천을 걸었다. 산책로를 따라서 걸으면서 작은 손을 가진 새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에 감탄하다가 갑자기 계단을 만났다. 생각없이 아래를 내려다 본 정경이 무척 아름답고 평온했다. 여름이 여전히 잔재한
모습이다.11월의 한국에서 여름과 가을의 동침? 다소 야릇하다.
위와 아래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 리조트이다. 곤지암 빌리지센타 이층에 있는 한식당 '담하' 에서 따끈한 버섯전골을
먹고 등산로로 향했다. 2시간 반 걸린다는 전체 코스 대신에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짧은 코스를 택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서면 원앙 오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물이 흐르고 누구나 쉴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주변은 여전히 가을이었다. 가지에 잎이 아직
매달려 있는 가을이었다.
위 사진은 동숭동의 마로니에 공원이다. 여기도 아직 가을이었다. 앞에 서울대 병원 건물이 보이고 혜화역에서 대학로로 들어서는
발길이 분주한 곳이다. 나는 여기서 이국에서 온 한 명의 나그네가 되어서 혼자서 골목길을 누볐다. 낯선 식당에 들어가서 허기진
배도 채웠다.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뒤의 며칠 후에는 친구들과 다시 이 곳을 찿아서 연극 관람을 하였다.
서울 방문 중에 첫번째의 비를 만났다. 무거운 빗방울과 부딪쳐서 땅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좋았다. 이 길의 건너편은 온통
단풍나무 일색이어서 길이 빨갛다. 어느 쪽을 택해서 가을을 밟을까를 잠시 고민했다. 젖고 밟혀서 우중충해진 단풍길을 택하기
보다 땅에 떨어져도 여전히 밝은 모습을 지닌 은행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담은 한컷을 남겼다.
점점 한국의 가을이 물러서고 있었다. 잎은 다 떨어지고 떨어진 나뭇잎을 덮어줄 눈을 기다린다. 강남 도곡동의 동네 뒷산은 내가
친구집을 찿아갈 때마다 지름길로 넘던 고개이다. 꼭데기에는 운동 시설이 갖추어 있어서 하늘 아래 햇빛을 받으며 온동 기구를
움직여보기도 하였다. 아침이면 동네 노인들이 따스한 햇빛을 등에 지고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친구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이 언덕의 존재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서 시골 친척집을 찿아가던 길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예고없이 일요일 오후에 온도가 급강하했다. 첫눈이 내리고 일 주일 후쯤 두번째 눈도 내렸다. 눈은 높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그늘에
내린 흰꽃의 생명력은 길~다. 누런색 나무들 틈에 흰색을 입은 초록색의 침엽수가 독야청청하다. 나는 녹지않고 버티고 있는 눈 위를
골라서 발걸음을 딛어 보았다. 이 재미가 바로 한국에 온 맛이지!
LA로 돌아오니 포근하고 따뜻했다. 이틀을 잠자고 먹었다. 고국 여행이 좋았건만 몸은 지친 듯하다. 감정 상태의 기복을 몇번
오르락내리락한 탓일 것이다. 그런데 북가주에 폭풍이 와서 피해가 크다고 했다. 그 폭풍이 남가주로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 피해가
클 것이라고 했다. 한 방중에 큰 비가 내렸다. 물이 모자란 곳에 단비가 왔으니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바람이 쎄서 창문은 울고 비에
혼나서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그 것도 감지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졌었다.
큰 비가 쏟아진 이틀 후에 동네를 걸었다. 밤새 내린 폭우는 어제 아침에 이미 잔재 조차 없어졌지만 여파는 컸다. 여행 중 산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쓰러진 나무들이 넘어져있는 것은 무수히 보았지만 폭우로 뿌리채 넘어진 시내의 소나무는 처음 보았다. 물을 충분히
먹지못한 나무는 뿌리가 깊지 않아서 폭풍에 쉽게 넘어간다고 한다. 나무가 도로로 넘어져서 다행이었지 집쪽으로 쓰러졌다면 인명
피해도 만들 뻔했다. 아주 드문 정경에 동네 아이들이 쓰러진 나무 곁에서 놀고 있다. 점차로 개의 산책을 위해서 나온 어른들도
모여들어서 놀라운 상황을 나눈다.
동네 한바퀴 아니 반바퀴만 돌아도 동네 모습이 눈에 다 들어온다. 바람에 의해서 떼어져서 날리는 무수한 열매와 잎들. 바닥에
떨어져 무심하게 뒹군다. 이제 LA는 진짜 가을을 맞았다. 지금까지도 가을이었지만 더운 한낮을 붙들고 있었다. 이제 부터는 종일
가을 같다가 밤이 되면 겨을날 같을 것이다. 난 인상을 피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흐린 날과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차분해지고
차가운 한기가 내 뺨을 만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어느 집 담벽의 담쟁이 잎도 다 떨어져 을씨년스럽다. 오랫동안 초록 잎이 이 집 벽을 감고 있었다. 이제는 가렸던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노출해야만 한다. 그렇게 LA의 짧은 가을과 겨을을 지내고 나면 벽은 겸손해지고 자신을 덤쟁이 잎에 다시 내맡길 준비가
된다. 이렇게 감춤과 노츨을 반복하면서 인생을 배운다.
어는 집의 앞 마당이 떨어진 잎으로 거의 덮였다. 이 코너 집의 주인은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다. 낯선 이들이 자신의 마당에 발을
올리는 것을 싫어해서 경계를 세웠다. ㄷ 자 모양으로 태양열 램프를 마당 경계에 심어서 요새로 만들었다. 그러한 불친절을 낙엽이
감추어 주었다. 그런 목적 때문인지 이 집 마당에 떨어진 잎들은 유난히도 커서 애기 머리만하다.
2014년 서울의 11월과 12월 정경의 한 단면과 돌아온 LA 의 12월 12일과 13일의 일부 정경을 모았다. 사진에 담겨지는 순간들은
눈깜박하는 시간이지만 여기에 포스팅됨으로써 좀 더 길게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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