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에 관한 기사를 LA에서 몇달 전에 인터넷으로 우연히 읽었다. 경복궁 근처의 작은 재래시장인데 장사가 신통치 않자
상인 중의 한 사람이 궁리끝에 공생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었다. 도시락 카페를 고안한 것이다. 오천원 정도의 싼 값으로
근처의 직장인들, 여행객들, 동네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한개에 오백원짜리 엽전을 10개 사서
도시락 카페에 가입한 가게들을 돌면서 엽전 한개 또는 두개를 지불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나 반찬을 담으면 된다.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시장 사람들이 만든 도시락! 생각만 해고 정이 가고 궁금했다. 어떤 음식일까! 분식? 비빔밥에 담을만한 나물들?
포장마차에서 흔히 파는 음식들? 시장통에서 파는 순대와 전? 엽전을 이용한다고? 시장의 위치를 알아보니 한국에 가면
찿아갈만 하였다. 그래서 아이폰 메모지에 적은 '한국서 하고 싶은 리스트'에 도시락 카페 방문도 꼬리로 붙였다.
머무는 곳에서 갈 차편을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어렵지 않았다. 전철을 타고 경복궁역의 2번 출구로 나오면 간단하지만 거리를
구경하고 싶어서 버스를 탔다. 노선을 잘못 집었는지 버스는 경복궁쪽으로 돌지않고 종로를 경유해서 광화문을 지나 서대문쪽을
향했다. 재빨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마침 내린 비는 학창시절 우산 아래 친구들과 재잘거리던 추억을
깨워주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광화문이 나왔고, 또 금방 세종문화회관을 지났고, 또 얼마 후에는 경복궁역이 보였다.
통인시장의 위치를 물으니까 조금만 더 위로 가면 된단다. 그 지역은 어린 시절에 걸었던 곳이라는 사실이 기억 뒷편에서
흘러나왔다. 길은 넓어지고 건물들은 깨끗해졌지만 과거의 잔재는 여전히 선명하다. 우연히 눈길을 준 골목길에는 오래된
기와집들이 오손도손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음이 감지되었다. 순간 혹시? 여기가 서촌인가? 라는 의구심이 솟았다.
경복궁의 서쪽 동네를 서촌이라고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북촌은 여러번 방문했지만 서촌은 이름만 들었다. 동네 구경에 멈침
머뭇머뭇 하다가 하마터면 시장을 지나칠 뻔했다. 물건이 놓인 시장 진열대를 본 것 같은데 금방 다른 건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경복궁역에서 가깝다. 직감적으로 고개를 들어서 간판을 찿았다. 통인시장이다!
통인 시장의 첫인상은 여느 시장과 같았다. 카페인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알고보니 반대쪽 입구 부터 시작한다. 그 쪽에서 엽전을
구입하고 도시락 그릇을 받는다.
시장 안을 걸어 들어가자 음식 가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음식을 담은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무리들이 점점 많이 보였다.
그들이 '저쪽에서 카페가 시작한다'는 말을 나누는 소리도 들렸다. 얼마 가지 않아서 시장 끝이 보였고 엽전을 사려고 줄선
손님들도 보였다. 나는 우선 앞에 세워둔 설명판 부터 읽었다.
마침 토요일이어서 손님들은 젊은 커플들, 학생들, 어린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과 일본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상인들은 친절했고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음식을 담아주었다. 바쁜 탓에 서두르는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 정성스레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준다. 좋네!
나는 돌아올 때까지 통인시장이 기름 떡볶이로 아주 유명난 명소인지 몰랐다. 시중에서 파는 가래떡과는 달리 작고 가느다란
가래떡을 기름으로 맵거나 맵지않게 조리한 떡볶이가 손님들에게 최고 인기 음식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이다.
재수좋게 사람들이 제일 길게 줄 선 곳에 끼어들어서 음식을 샀기 때문에 매운 떡볶기와 매운 닭강정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엽전 한개 짜리인 달걀부침도 선택했다. 그런데 어찌나 먹음직스럽게 크고 두꺼운지 깜짝놀랐다.
윗 사진이 내 도시락이었다. 빈 도시락은 떡 한개, 전 한개, 떡볶기, 닭강정, 달걀, 나물, 그리고 만두로 가득 채워졌다. 푸짐해서
오천원 짜리 도시락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밥과 국을 더 구입하지 않았다.
미소를 띤 기름 떡볶기 가게 주인 아저씨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떡을 좋아한다. 시장을 빠져나오기 전에 현미떡, 쑥떡과 콩떡을 구입했다.
도시락이 완성된 후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도 훌륭했다. 두 군데의 식사 공간 중에서 한 곳을 택해서 들어서니 숫갈과 젖가락이
문 앞에 놓여있고 앉을 자리도 넉넉했다. 원하는 사람은 물을 마실 수도 있고 먹은 후에 남은 음식과 식기 처리도 손쉽다.
계획대로 목록 하나를 지울 수 있었다. 음식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먹을만하다. 구수한 시장 상인들의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체험할 가치있는 경험이다. 다 같이 잘 살려고 함께 손을 모은 모습이 보기 좋다. 아무래도 기름 떡볶기 주인이 가장
많은 엽전을 받아서 제일 높은 수입을 올리겠지만 다른 상인들도 더불어 음식을 더 많이 팔 수 있다.
시장을 나와서 다시 역쪽으로 걸으면서 주변을 기웃거렸다. 통인시장서 집어든 서촌의 주변 관광지 지도를 참고 했다. 태조가
즉위하기 전에 세종대왕이 탄생하셨다는 곳과 시인 이상의 집터를 둘러보고 싶었다. 친정 엄마에 의하면 나는 세종대왕의 19대
자손이라고 한다. 하지만 들어가는 골목길을 놓쳤다. 그래서 골목길을 기웃거리다가 다음을 기약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다음에는
친구와 같이 찿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인시장에서 한번은 도시락을 만들어 먹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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