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곳들(여행)

기차로 다녀온 산타바바라

rejungna 2022. 5. 4. 08:23

봄이 한창이다. 더 늦기 전에 LA를 하루 떠났다.

 

 

몇 년만에 산타바바라를 다시 찿았다. 산타바바라는 나를 항상 설레게 한다.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미국서 좀처럼 타지않는 기차다. 미국은 자동차 나라다.

유아원 봄방학을 맞은 4살 손주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기 위해 딸이 계획했다. 덕분에 거의 30년 전과 같은

길을 같은 방법으로 다녀온 여행을 되풀이한 행운을 가졌다. 세월은 가고 모든 것이 낡아졌지만 마음만은

여전한 우리들 아닌가! 그 때는 친구와 함께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감행했었다.

 

아마 그 때 가보고 이제야 다시 가보는 LA 기차 정거장, Union Station,에 들어섰다. 뉴스를 통해 얼마 전에

재건된 기차역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 소리가 나왔다. 첫인상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역사적 흔적이 나무람 없이 재탄생됐다. 한가지 흠은 실내 입장하기 전 밖에서 홈레스 사람

몇명이 과도한 관심을 보여서 불편했던 점이다. 하지만 사실 문제도 아닌 것을...

 

 

기차 타는 플랫폼 번호를 알기 위해서 먼저 전광판을 확인했다. 긴 복도에는 무심한 듯이 여러 개의 출구가

있고 위에 트랙 번호가 붙어있다. 우리는 산타바바라 행을 찿아 선로 앞에 섰다. 역에 선 기차를 힐끔거리며

여러 번 우리 열차 도착 시간을 확인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기차는 한 시간 뒤에나 유니온 정거장에

도착한다고 한다. 맙소사! 이래서 기차 여행이 쉽지않구나! 정신이 팍 들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골똘한

생각과 함께 선로 따라 멀리 점점 작아지는 발차한 다른 기차들을 응시하며 떠남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기차는 비지니스석인 덕분인지 아주 안락했다. 타고 내릴 시에 짐을 들고 이층 계단을 오르내린 것을

제외하고는 만점이었다. 이층인 덕분에 창밖을 보는 시야도 넓었다. 오랜만에 낭만을 느껴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2살 짜리 손주가 복병이다. 30분 정도 참하던 손주는 창밖을 보아도 잠시, 먹을 것을 주어도 잠시,

장난감을 주어도 잠시. 계속 성가신 소리를 내었다. 다른 승객들을 의식한 딸의 신경이 점점 올라갔다.

덩달아, 나도! 그렇게 3시간을 지내다 보니 녹초가 되고 손주는 바닥에도 눕는 개고기가 되어버렸다.

자동차로는 두 시간 미만의 거리가 3시간이나 걸렸다. LA 근교에 그렇게 많은 기차 정거장이 있는 줄

미처 몰랐었다.

 

 

드디어 산타바바라 정거장이다. 플랫폼이 하나 뿐인 아주 단순한 정거장이다. 큰 난관을 극복한 듯이 마음은

가벼워지고 기대감이 샘솟았다. 이제 LA가 아닌 여행지에 발을 디뎠다. 먼저 숙소를 찿아야 한다. LA 유니온

정거장에 세워둔 자동차 생각이 모락모락했다. 차없이 낯선 도시에 들어선 기분이 조금 묘했다.

"하지만 도보 여행이 진짜다." 유모차와 가방을 끌고 내비게이션 지시대로 큰 길에서 동네 길로 들어섰다. 

날씨 좋고,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내 키보다 더 자란 선인장들이 낯선 집앞 뜰에서 반겨주었다.

 

 

드디어 찿았다.

이름은 La Playa Inn 이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좋아보인다. 하루 숙소로 적당해 보였다.

한 블락만 더 가면 바닷가이고 직원은 친절했고 엄청 깨끗하다. 입실과 퇴실 시간이 호텔보다 일정과

맞아서 선택했다. 아침 식사도 제공한다. 나란한 3층 방 두개에 각각 침대가 두개씩. 실내 시설도

차분하고 깔끔하다. 하룻밤을 쉬어가는 곳으로 마음에 들었다. 건물 양식은 산타바바라에서 흔한

스패니쉬 스타일로 빨간 기와 지붕과 난간이 있고 아래층에 정원이 있다. 으흠... 기차에 이어서

숙소도 합격이다.  

 

 

가방을 놓고 간단히 씻은 다음에 곧바로 다시 큰 길로 나왔다. 걷다보니 산타바바라 피어 (pier)가 바로

코앞이다. 눈에 띄는 식당을 두어개를 지나 목적지인 Maxie Children Museum 에 도착했다. 기차 정거장

바로 옆에 있다. 나는 이 어린이 뮤지엄을 이미 두번이나 방문했었다. 테크노로지가 듬뿍 담긴 박물관이다.

 

지난 방문 때에는 엘론 머스크가 세운 'the Boring Company' 회사에 관한 특별 전시를 자세히 보았다.

도시 간에 터널을 뚫어서 주행 시간을 크게 줄이는 목적을 가진 회사이다. LA에서 라스베가스 까지 직행

터널 공사를 한다고 했는데 착공하지 못했다. 대신 라스베가스에 두 개의 짧은 터널을 뚫었고, LA 근처의

SpaceX 회사 호손(Hawthone) 사무실에 시험용 터널을 1마일 뚫어서 속도 시험을 했다. 하지만 기대치보다

너무 느려서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됐다. 머스크는 최근에 이 회사를 다시 살리고 싶다고 했다.

 

 

박물관에서 시간 반을 훌쩍 보내고 폐장 시간이어서 나왔다. 큰 길을 직진해서 길을 건너 바다 반대쪽 

식당가로 향했다. 오른편의 산타바바라 바다를 눈에 담으면서 여전히 실내보다 실외 패디오에 사람이

많은 식당 몇 개를 지나 걸었다. 태평양 바다가 잠자듯이 얌전하다. 바람이 불지 않나보다. 저녁은

멕시칸 음식이다.

 

 

딸이 인터넷의 후기를 보고 선택한 'Flor De Maiz' 식당에 도착했다. 우리는 실내 좌석을 택했다. 들어서는

순간 예쁘고 운치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딱 내 스타일이다. LA에 살면 멕시칸 음식을 먹을 기회가 많아도

즐기지 않는다. 타코, 엔칠라다, 칩스, 엠빠나다, 파히타, 과카몰리, 살사, 마가리타.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이 식당은 바다 가재 타코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는 퀘사디아를 주문했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맛있다. 퀘사디아는 세 가지로 나온다. 또띠아는

옥수수, 펌킨, 파란 콩으로 만들어서 3가지 색깔이다. 이 안에다 고기, 해산물과 야채를 듬뿜 채웠다.

특히 버섯과 가지가 들어간 야채 퀘사디아가 일품이었다. 손자가 남긴 새우와 문어 타코를 먹다가

순간 멍해졌다. 너무 맛있어서! 기대없이 한입 배어문 탓인가??? 아주 특별한 식당에 왔음을 알아챘다. 

갑자기 '직접 해보지 않고 불평하지 말라'는 격언이 떠올랐다.

 

 

이렇게 기분좋게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 날 일찍 바닷가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성게알 음식을 먹기로 했다. 잠도 푹 잤다. 먼저 아이 둘을

앞에 태우고 4명이 동시에 자전거 패달을 밣는 6인용 마차 자전거를 'Wheel Fun Rental' 에서 빌렸다.

비치가 도보따라 자전거 길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그 길로만 운전해야 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따라서 페달을 돌리는 기분은 최고였다. 드넓은 바다는 해방감을 준다.

주중 화요일 아침의 바닷가는 한산했고 운동하는 사람들 몇 명만이 길 따라서 달리고 있었다. 손목에 찬

애플 시계는 내가 처음으로 저전거를 탄다며 내 발움직임의 인식함을 문자로 알렸다. 신기한 세상이다!

하늘에는 양떼 그름이 환영해주고 길 양쪽으로 나란히 같이 달리는 야자수 나무들은 친밀하다. 야자수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사는 것을 일깨워준다. 나는 가끔 한국이 그리워지면 야자수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면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누가 말했다. "내가 사는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을 때에 가장 상식적으로 살수있다"고.

 

 

자전거를 돌려주고 위 사진의 산타바바라 피어 다리에 올랐다. 가고싶은 식당이 그 곳에 있다.

미국식 성게알 음식을 궁금해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모래사장을 지나 바다 위 다리를 걸었다. 아뿔사!

11시에나 문을 연다고 한다. 기다리면 12시 퇴실 시간에 늦는다. 섭섭한 마음으로 숙소로 가는

길가의 브런치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자리는 다 차고 줄을 선

사람들이 길게 패디오를 돌면서 여유롭게 서있었다. 급한 계획 변경으로 11시 전에 숙소로 돌아가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 빨리 가자!

 

아쉬운 마음을 잡고 로비에서 먹은 아침은 편안했다. 크로샹, 머핀, 바나나, 요플레, 물과 커피다.

요플레는 블루베리와 딸기, 치즈가 들은 크로샹과 커피! 여행와서 이 보다 더 좋고 빠른 아침 식사는

허례허식이다! 12시 전에 퇴실해야 하는데 딸의 회사서 급한 연락이 오는 바람에 늦어졌다. 하지만

매니저는 미소로 문제삼지 않았다.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시간이 많아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으으~~ 차다!

 

이제는 다시 2살 손주를 생각할 때다. 3시간을 어떻게? 가방에 책을 잔뜩 챙겼다. 바나나도 있다.

너트도 있다. 그런데 하하. 출발 30분 후에 의자에 길게 누워 잠든 손주는 도착할 때까지 깨지않았다.

신통한 녀석은 마지막에 강하다!

 

즐거운 짧은 여행이었다. 산타바바라는 언제 찿아도 기쁨을 주는 도시다. 적당히 클래식하고, 적당히

보수적이고, 적당히 부유하며, 적당히 다양성이 있고, 또 로맨틱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많이 친절하다!